법 재개정 부담 속 여론전 집중…정쟁 장기화할 듯
법무부가 '검수완박법' 시행령을 통해 검찰 수사권 확대를 예고하면서 정치권이 검수완박 논쟁 연장전에 돌입한 모습이다. 검수완박 법률안 처리를 위한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린 지난 4월 26일 손 피켓을 들고 항의하는 국민의힘 의원들. /국회사진취재단 |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정치권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늪에 다시 빠졌다.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검찰청법·형소사송법에 대해 법무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찰 수사권을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다. 법률 개정 취지에 역행하는 법무부 행보에 민주당은 "시행령 쿠데타"라고 맹렬히 비난하면서 총력 대응을 예고했지만, 이를 막기 위한 법 재개정 등 실질적 방안은 부담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악의 경우 한동훈 법무부 장관 탄핵 추진까지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윤석열 정부와 거대 야당이 충돌하면서 검수완박이 새로운 정쟁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지도부는 법무부의 수사권 확대 시도를 '국회와의 전면전'이라고 규정하고 당 차원의 강경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2일 비대위회의에서 "겸손한 자세로 국민 여론을 따라야 할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서 만든 법을 무력화시키면서 (검찰) 수사 범위를 확대하는 무리수를 범하고 있다"며 "한 장관의 무소불위 행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1일 법무부는 '검사의 수사개시 범죄 범위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다음 달 10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검찰청법 및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검찰의 직접수사 대상에서 제외되는 공직자·선거 등의 범죄 중 일부를 검찰 직접수사가 가능한 부패·경제범죄에 포함한다는 내용이다. 지난 5월 문재인 정부 임기 종료 직전 국회를 통과한 검수완박법(검찰청법·형사소송법) 시행을 한 달 앞두고 발표한 조치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법무부가 국회 입법권을 무력화시킨 것이라고 규탄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기득권 지키기'라며 모든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러나 시행령을 막을 뚜렷한 방안은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은 당장 이번 주 긴급 현안질의를 위한 법사위 소집을 요구하고, 국회법에 명시돼 있는 국회의 시행령 검토 조항을 활용해 법무부를 압박하겠다는 방침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법무부는 입법예고안을 10일 이내 법사위에 제출해야 하고, 법사위는 모법(母法)에 저촉되지 않는지 심사해 법무부에 수정 요구를 권고할 수 있다.
민주당은 법무부의 시행령 개정안이 모법을 훼손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해당 법안 본회의 처리 당시 제안 설명과 가결 후 국회의장 발언을 통해 입법 취지를 명확하게 언급해 시행령 해석의 폭을 좁혔다는 입장이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등'이라는 조문은 여야 합의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대로 남겼지만, 개정안의 입법 취지가 검찰의 직접 수사권 범위를 2개로 한정함으로써 향후 정부가 자의적인 확대 해석을 못 하도록 국회가 분명히 미리 못 박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시행령과 관련해 국회에서 부르시면 언제든 나가 국민들께 성실하게 설명할 것"이라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한동훈 장관을 국회에 출석시켜 시행령의 부당성을 국민들에게 알리겠다며 벼르고 있다. 한 장관은 얼마든지 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한 장관이 출석해 업무보고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
수정을 요구하더라도 강제력이 없다는 점이 민주당으로선 가장 난감한 대목이다. 과반 의석을 무기로 정부에 '시정'을 강제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지만, '다수당의 횡포'라는 프레임에 갇힐 우려가 있다. 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지방선거 패배 요인 분석 보고서에서 검수완박법 강행 처리를 지적한 바 있다. 개정안을 추진하더라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어 상임위 통과도 쉽지 않다.
또 하나는 검찰청법을 재개정하는 방안이다. 법무부는 지난 4월 민주당이 추진한 검찰청법에 따라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인데, 이를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법무부는 '부패·경제범죄 등'이라는 문구를 근거로 상위법 위임 범위 내에서 시행령을 정비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부패·경제범죄 중'으로 바꾼다면 해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이 역시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사위원장을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이 맡고 있다는 점, 이미 '위장 탈당' 등 비판을 감수하고, 또 문제의 소지를 인지하고도 통과시켰던 법안을 재수정할 경우 여론 후폭풍도 고려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법사위 민주당 간사인 기동민 민주당 의원도 검찰청법 재개정에 대해 "검토는 해보겠으나, 법을 어떻게 만들어도 모법 정신을 훼손하고 부정하는 처사들이 횡행하고 있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민주당은 법무부 시행령 저지를 위해 부담이 큰 법 재개정 대신 당분간 여론전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검수완박법 관련 국회의장 중재안에 합의한 후 합의문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는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민주당 박홍근(왼쪽),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 /국회사진취재단 |
민주당은 법사위 현안보고, 법무부 및 대통령실 항의방문, 전국민서명운동 등 여론전에 우선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법사위 소속인 김남국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우선은 이 시행령 개정의 위법성을 따지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법무부 장관을 국회 상임위에 출석시켜서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이 부분에 대한 여러 문제점을 짚으면서 국민들께 행정부가 법률에서 위임된 범위를 벗어나 시행령으로 개정한 문제점을 잘 알리는 일들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어 "그다음에 입법 개정안도 충분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보인다"면서 법 개정이 쉽지 않다는 시각에 대해선 "충분하게 논의하고 설득해야 한다. 여론의 압력과 국민 비판이 있다면 (여당도) 함께 해줄 수밖에 없다고 본다"고 했다.
강경 조치로는 한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 탄핵도 거론된다. 기 의원은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도 그렇고, 한 장관도 차곡차곡 (탄핵) 근거가 쌓이고 있다"며 "어떤 정치적, 법적 절차를 밟아나갈 것인지 충분하게 열어놓고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오히려 '한 장관 띄워주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앞서 지난 인사청문회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 의원들은 한 장관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지만, 그의 존재감만 키워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대해 21대 국회 전반기 법사위원이었던 한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띄워주기'든 뭐든 쿠데타인데,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며 "해임 건의도 하고 여러 가지 다 동원해야 한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실효성이 없더라도) 정치적으로 계속 문제 제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