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리스크보다 당헌 개정 '소모적 논쟁' 우려 커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선 이재명 의원의 '사법 리스크'가 전당대회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와 맞물린 '당헌 80조 개정' 논쟁이 뜨겁다. 민주당 국민통합 정치교체 추진위원회 당 대표 후보자 초청 공개토론회에서 대화하는 이재명(오른쪽), 박용진 후보. /국회사진취재단 |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이재명 의원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 현실화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전당대회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분위기 속에서 '당헌 80조' 개정 논쟁이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모적 논란을 종식하고 제1야당으로서 비전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전당대회가 반환점을 향해 가는 가운데 야권에선 최대 변수로 간주돼온 이 의원 사법 리스크가 곧 현실화할 분위기다.
이 의원 측은 지난 9일 이 의원 부인 김혜경 씨가 '법인카드 사적 유용' 혐의로 경찰로부터 출석을 요청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찰은 김 씨가 지난해 8월 당 관련 인사 3명과 점심 식사 후 경기도 업무추진비 카드로 결제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경찰은 이달 중순께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이 의원 측은 이같은 혐의를 부인하면서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각종 의혹에 '야당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박해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선제적 대응을 한 셈이다. 수사 결과에 관계없이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이 다시 주목받는 것 자체가 전당대회에 부담이 될 것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사건은 경기도청 사무관인 배모 씨가 7급 공무원이었던 A 씨에게 지시를 내려 법인카드로 소고기·초밥 등을 사서 김 씨에게 배달하거나 약을 대리 처방받아 전달토록 했다는 의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불거지면서 논란이 됐다. 검찰과 경찰은 이외에도 △성남FC 후원 △변호사비 대납 의혹 △백현동 개발 사업 특혜 △경기주택도시공사 비선 캠프 의혹 등을 수사 중이다.
이중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다음 달 9일 사건 공소시효 만료를 앞두고 검찰이 쌍방울그룹 등을 상대로 3차례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성남FC 후원 의혹과 관련해서도 경찰은 이 의원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내에선 사법 리스크 현실화 우려가 전당대회에 당장 미칠 영향은 미미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수사 결과에서 타격을 줄 만한 결론이 나오지 않는 이상 '이재명 대세론'을 흔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 민주당 의원은 "어떤 내용이든 사실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면 그 자체로 존중될 것이고, 사실이 왜곡된 거나 정치 공세라면 문제 제기를 (당내에서도) 같이 할 것으로 보인다. 사법 리스크는 언론에서 문제 제기를 충분히 하고 있는데, 그것 자체가 당내 선거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 것 같다. 지금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를 한다고 해서 전당대회 결과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이어 "지금 나오는 사법 리스크가 업무상 정지가 될 만한 사안까지 갈 건지 아직 드러난 게 없다. (수사 결과가 나온다면) 어떤 내용인지 보고 당이 토론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A 민주당 의원도 "명확하게 드러난 사법 리스크는 없다. 의혹만 있고 무혐의가 된 것도 재수사하는 성향이 있다. 검찰이나 경찰도 압수수색을 했다는 건 있지만 정확한 혐의에 대한 입증은 제대로 나오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당헌 80조 개정'에 '개인 의견'을 전제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 11일 기자간담회 하는 우 위원장. /남윤호 기자 |
차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선 사법 리스크 공방이 한창이다. 이와 맞물려 '당헌 80조 개정' 논쟁도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당헌 80조는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 관련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면 직무를 정지한다는 내용인데, 이를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당원 청원 1호로 채택돼 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서 논의에 착수한 상태다.
여기에 이 의원이 "여당과 정부의 야당 침탈 루트가 될 수 있다"며 사실상 당헌 개정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마녀사냥' 논쟁으로까지 불이 붙었다. 지난 10일 당 대표 경선 5차 토론회에서 박 의원이 당헌 80조 개정의 부적절성을 주장하면서 정치 탄압의 근거를 제시해달라고 제안하자, 이 의원은 "마녀가 아닌 증거가 어딨나. 마녀인 증거를 본인이 내셔야 한다. 조심해주면 좋겠다"라며 발끈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긁어 부스럼'이라며 당헌 80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당헌에 따르면 지도부 재량에 달려 있어 현 조항만으로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11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이 의원은) 야당 탄압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하는데 (당현 80조가 만들어질 때는) 문재인 대표 시절 야당이었다. 우리 스스로 옭아매는 그런 결정을 했단 건지. 문재인 대표의 혁신안에 대한 반대인 건지 잘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왜 야당 탄압일까 하는지에 대한 입장을 당사자가 내놓아야 하는 건 분명하다. 그게 마녀사냥 이야기가 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당헌 80조 개정' 논쟁에 비명계도 가세했다. 친문 핵심인 전해철 의원은 지난 10일 당헌 취지를 고려해 개정을 위해선 충분한 공론화와 의견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해당 당헌이 2015년 당시 문재인 대표 시절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고 부정부패와 단호하게 결별하겠다는 다짐으로 만든 혁신안'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 출신이자 최고위원 후보인 고민정 의원도 '당헌 80조 개정' 논쟁이 불필요하고 소모적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날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개정을 하겠다고 하면 '이 후보를 위한 방탄용'이라고 공격이 들어올 것이고, 만약에 개정을 안 하겠다 하면 '이 후보를 버릴 것이냐'라고 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이 이슈 자체가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후보의 입지를 굉장히 좁아지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장파' 조응천 의원은 "하필이면 지금 오얏나무에서 갓을 고쳐 쓰는 일을 하는 것은 민심에 반하는 일이고 내로남불의 계보를 하나 더 잇는 것"이라고 맹비판했다.
전준위는 오는 16일 관련 개정 논의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비대위는 이를 토대로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당 지도부는 개정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우상호 비대위원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처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정치보복 수사에 노출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라며 "정치인들이 정치보복 수사에 노출돼 기소됐을 때 우리 당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의 문제와도 연동돼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단순히 기소됐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줄 거냐 하는 문제는 신중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당헌 개정이 이 의원만을 위한 특혜가 아닌 소속 정치인 보호를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당헌 80조 개정'을 두고 비명계는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내고 있다. 2015년 8월 31일 당시 민주당 김상곤 혁신위원장과 문재인 대표. /더팩트 DB |
당내 일각에선 당을 깎아내리는 소모적 논쟁 대신 대안과 미래 비전 제시에 집중할 때라는 쓴소리가 나온다. A 의원은 "(사법 리스크 우려가) 생각보다 굉장히 과도하게 쟁점화돼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헌 개정과 연계돼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이 의원도 당헌 개정에 지나치게 집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사법 리스크에) 자신 있으면 굳이 당헌 개정 논란으로 더 확대할 필요는 없다"면서 "집권여당의 복합적인 위기와 리더십 한계 속에서 우리 당이 야당으로서 충실한 역할과 비전을 국민에 제시해야지 지금 이런 지엽적인 문제로 과도한 논란에 빠질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2015년 당시 혁신위원이자, 이번 당 대표 예비경선에 출마했던 이동학 전 최고위원도 "개정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전술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면서 당헌 개정에 반대했다. 이어 "당헌 개정 논쟁보다 선거제 개혁 등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당이 실기하고 있다고 본다. 민주당이 시대를 어떻게 바꿀지 이런 쪽으로 에너지가 가야 하는데 (당헌 개정 논쟁 과열은) 소모적"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