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단일화' 사실상 무산…본선 이후 친명·비명 세 결집 관건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친문' 강병원 의원의 공식 제안으로 단일화 논의를 시작했다.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재선의원 모임 주최 민주당 대표 후보자 토론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는 재선 민주당 당대표 후보자. 왼쪽부터 박주민, 강병원, 강훈식, 박용진 의원. /국회사진취재단 |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8·28 전당대회 당대표 후보 단일화 논의가 공론화되자마자 삐걱거렸다. 97그룹(90년대 학번·70년대생)이 주도해 예비경선(컷오프) 전 유력 당권 주자인 이재명 의원을 제외한 단일화를 제안했지만 반대에 부딪혔다. 단일화가 주목받으면 당 혁신과 개혁 목소리는 묻힐 수밖에 없다는 '반(反)이재명' 딜레마에 빠진 모습이다. 컷오프 이후 단일화 논의가 탄력 받게 되면 친명계와 비명계는 세 결집 경쟁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컷오프를 일주일 앞둔 21일 당대표 후보 단일화가 공식 석상에서 논의됐다. 재선의원 모임이 주최한 '재선의원 당 대표 후보 토론회'에 97그룹 후보인 박용진·강훈식·강병원·박주민 의원(기호순)이 참여해 격론을 벌였다. '친문(친문재인)' 성향의 강병원 의원은 이재명 의원을 제외한 당권주자들에게 '컷오프 전 단일화'를 공개 제안했다. 강 의원은 "오로지 한 사람에 의존하는 것이 전부인, 그래서 한 사람의 정치적 진로에 따라 당이 뿌리째 흔들리는 '리더십의 위기'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의원 다음으로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박용진 의원도 이에 호응했다. 그는 "정치공학적 단일화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번 전당대회 특성은 쇄신과 변화의 핸들을 세울 수 있느냐다. 그 점에서 단일화가 주요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토론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예비경선 이전의 단일화를 최대한 노력하고 정 안 되면 최소한의 합의까진 이뤄내자, 그런 다음 본선에서 빠른 단일화를 준비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조기 단일화'를 주장한 이유는 시너지 효과 극대화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중앙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후보 단일화 등으로 중도 사퇴하는 후보가 나올 경우 해당 후보의 모든 득표는 무효로 처리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 의원의 컷오프 통과가 유력한 상황에서 나머지 2명의 후보가 서둘러 단일화해 한 표라도 더 모아야 승산이 있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셈이다.
이재명 의원을 제외한 단일화 논의는 당 혁신과 쇄신 목소리가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21일 민주당 혁신을 위한 공동 제안서를 발표한 더불어민주당 이동학 당대표 예비후보(가운데)와 권지웅·김지수 최고위원 예비후보. /남윤호 기자 |
강훈식·박주민 의원도 단일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시점과 방식에 대해선 확연한 온도 차를 보였다. 박주민 의원은 "단일화가 논의되려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가치나 당의 혁신 방안에 대해 접점이 필요하고 이를 찾기 위한 대화 과정을 가져야 한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강 의원은 "지금은 비전을 낼 시간"이라면서 컷오프 이후 단일화 논의에 무게를 뒀다.
원외 당권주자인 이동학 전 최고위원은 더 나아가 '비이재명 단일화' 자체에 제동을 걸었다. 그는 입장문을 통해 "이념 또는 정책의 방향성이 같은 경우, 이를 실현하기 위해 후보 간 단일화는 가능하지만 단지 누군가를 반대할 목적의 단일화는 당원들과 국민께 어떤 감동과 희망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오히려 후보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지고 민주당의 획일화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단일화) 구조 자체가 반이재명이 전제로 돼 있기 때문에 아무리 다른 걸(비전 단일화 등) 갖다 붙인다고 하더라도 '이재명 빼고 하자'고 하는 거면 반명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라며 "선배들이 짜놓은 프레임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일 김민석 의원도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단일화라는 공학적인 것이 먼저 앞서는 것은 좋지 않다"면서 컷오프 이후 단일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는 '반명' 프레임에 갇히면 이번 전대에서 주요 의제인 혁신과 쇄신이 부각되지 못한다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모두가 동의하는 방식을 마련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점도 조기 단일화가 쉽지 않은 이유로 꼽힌다. 강훈식 의원은 "현실적인 방법도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취재진에 "방법이 뭐 있나. 있으면 알려달라"고 반문했다.
이에 따라 본선 이후에야 단일화 논의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설훈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취지에는 100% 동의하지만 컷오프 이전 단일화는 물리적으로 잘 안될 것이다. 일주일 사이에 7명이 의견을 다 맞추기 만만치 않다"며 "다만 오는 28일 자동으로 단일화가 되는데 이 의원을 제외하고 두 사람이 담판하면 되니 (더) 쉬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일화 논의는 당내 세력이 약한 97세대 후보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친문과 586세대의 주도 하에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당권 주자로 꼽혔던 홍영표·전해철·이인영 의원 등은 '이재명 불출마'를 압박하고 세대교체론을 띄우면서 2선으로 물러난 바 있다. 당내에선 이미 단일화를 위한 물밑 지원사격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홍 의원과 박광온·도종환 의원 등 친문 중진은 이날 토론회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또 지난 대선에서 SK(정세균)계로 분류됐던 이원욱 의원이 단일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 의원은 지난 18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후보 간 단일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면서 "만일 이재명과 다른 후보의 일대일 구도로 당대표 선거가 이뤄지면 '어재명'이 '어차피 이재명'이 아니고 '어쩌면 이재명'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이번 8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 후보에 97세대가 주축이 됐지만 사실상 친문과 86세대가 이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충남 예산군 덕산 리솜리조트에서 열린 국회의원 워크숍을 마친 후 인사 나누는 이재명(오른쪽) 의원과 홍영표 의원. /국회사진취재단 |
단일화가 성사될 경우 친명계 대 비명계 구도는 더욱 뚜렷해지면서 계파 간 세 결집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3자 구도로 치러진 직전 전당대회에서 '비주류'로 꼽혔던 송영길 전 대표는 '친문 주류'인 홍영표 의원에게 0.59%포인트 차이로 신승한 바 있다. 당시 송 전 대표는 대의원과 당원 여론조사에서 홍 의원을 각각 0.5%, 8.97%포인트 차로 앞섰고, 권리당원과 국민여론조사에선 각각 0.67%, 2.66%포인트 차로 밀렸다. 이번 전대부터는 대의원의 반영 비율을 줄이고 국민 여론조사 비율을 높인 새 선거인단 반영 기준(대의원 30%, 권리당원 30%, 국민 여론조사 25%, 일반당원 5%)이 도입되면서 선거 결과 예측은 더 어려워졌다.
비명계에 맞서 송 전 대표가 지선 패배 후 이어간 휴식기를 마치고 이 의원을 물밑 지원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송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여의도를 벗어나 광야에 선 저에게 많은 분께서 '모든 걸 내려놓은 이제부터가 송영길 정치 시즌2'라고 말씀해주신다. 백팩 하나 둘러매고 길을 걸으며 그 '시즌2'를 열어가고 있다"며 근황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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