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차라리 '민생'이란 말을 하지 마라...네 탓 정치의 '고통'
입력: 2022.07.15 00:00 / 수정: 2022.07.15 00:00

당권 경쟁에 매몰된 여야, 민생은 뒷전

여야는 14일 원 구성 협상 중 이견을 보였던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에 대해 잠정 합의했다. 사진은 권성동(왼쪽)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날 국회의장실에서 비공개 원 구성 협상을 마친 뒤 의장실을 나서는 모습. /남윤호 기자
여야는 14일 원 구성 협상 중 이견을 보였던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구성에 대해 잠정 합의했다. 사진은 권성동(왼쪽)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날 국회의장실에서 비공개 원 구성 협상을 마친 뒤 의장실을 나서는 모습.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최근 서울 노원구의 한 식당을 찾았다. 간판과 달리 분식집에 가까웠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바로 가격. 김밥 한 줄에 1500원이었다. 요즘 웬만한 분식집에서 파는 김밥 가격보다 훨씬 쌌다. 다른 메뉴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장님은 "10년 전 가격"이라고 했다. 최근 식재료 값이 많이 올라 가게 운영이 힘들 것 같다는 말에 "죽겠다"라면서도 애써 웃음을 보이며 이렇게 답했다. "저보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버티는 거지 뭐."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복합 위기가 겹치면서 민생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진 게 별로 없는 서민부터 민생 한파를 체감하고 있다. 점심 식사 비용을 아끼기 위해 비교적 저렴한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장인들, 외식을 줄이는 가정들, 등록금 인상 가능성에 긴장하는 대학생들, 신혼집 마련에 큰 부담을 느끼는 (예비)부부들, 경영난에 허덕이는 자영업자들, 저마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취약계층은 오죽할까.

여야는 민생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연일 민생을 챙기겠다는 메시지는 빠지지 않는다. 문제는 민심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상대 당만 탓하고 있다. 원 구성 협상의 난항으로 국회가 공전하는 것을 두고 서로 '네 탓'이라고만 떠든다. 민생입법은 산더미처럼 쌓였는데, 볼썽사나운 자리 다툼은 40일이 넘게 지속됐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중징계 이후 당 내부에서 당권 경쟁에 불이 붙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권 원내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중징계 이후 당 내부에서 당권 경쟁에 불이 붙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권 원내대표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특히 여당은 내부 권력다툼이 격화할 조짐까지 보인다. 이준석 대표가 지난 8일 당 윤리위원회로부터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를 받은 이후 당내 권력 투쟁은 서서히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다. 소위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 권 원내대표와 장제원 의원은 당 지도체제에 대한 생각이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불화설을 일축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차기 당권 다툼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여권 내 다른 당권 주자들도 공부모임을 개최하며 세를 과시하고 있다. 김기현 의원이 주도하는 당내 공부모임 '혁신24 새로운 미래'는 13일 열렸고, 안철수 의원도 12일 '위기를 넘어 미래로' 민·당·정 토론회를 개최했다. 각 모임에는 40~50여 명의 의원들이 참석했다. 의원총회급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우리나라가 처한 경제 위기 상황을 진단하고 극복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런 모임에서 나온 대책이 실제 법안 통과나 정부 정책으로 연결됐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런저런 '포장'을 뜯어 보면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주도권 다툼이라는 지적이 많다. 2024년 치러질 총선 공천권 싸움이라고 보는 것이다. 여당을 향한 비판 여론이 더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당의 진로와 연관된 당권 다툼이 꼭 나쁘다고 할 수만 없다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국회의원으로서 해야 할 책무를 다하지 않는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자기 정치'가 민생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선거 유세 때 "제발 일 할 기회를 달라"는 게 정치인들의 단골 멘트 아닌가.

왜 국민만 고통을 분담하며 참아야 하는 건가. 말로만 민생을 외치며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는 현실 정치인들의 행태를 언제까지 봐야 하는 건가. 선거 때마다 국민에게 희망을 줄 듯하면서 실망만 키우는 구태 정치는 이 나라 정계의 근본인 건가. 여러 생각에 심란하다. '그 나물에 그 밥'을 벅벅 비벼 한입에 삼켜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차라리 그 입에 '민생'이란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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