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모방망이'부터 '흰머리 세가닥'까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페이스북은 연일 화제다.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젊은 당대표의 패기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6월 한 달간 이 대표가 작성한 페이스북 게시글은 약 55건이다. <더팩트>는 화제의 글을 톺아봤다.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국회=곽현서 기자] 정치권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페이스북에 대한 관심은 항상 뜨겁다. 일직선으로 쏟아내는 과감한 발언과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젊은 당대표의 패기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성 상납 증거인멸교사 의혹', 친윤계(윤석열 대통령 측근)와의 갈등까지. 지난 한 달 그를 관철하는 단어는 '반박'과 '저격'일 것이다. 그는 친윤계 인사들과 '개소리' 등의 거친 단어를 주고받는가 하면, 자신에 대한 의혹에는 '증거를 가져오라'며 일일이 짚고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가 이용한 소통 창구는 바로 '페이스북'이다. '사면초가'에 처한 상황에서 공식 석상의 발언과 행동이 다양한 해석을 낳는 만큼 SNS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사안에도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이 대표가 6월 한 달 동안 작성한 게시물은 약 55건이다. 그중 <더팩트>는 화제의 게시물을 톺아봤다.
이 대표는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지난달 2일 "오늘로 총선이 678일 남았다"며 당 혁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혁신위원회'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
◆李, 지방선거 승리 직후 띄운 '혁신위원회'
지난달 1일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에 '압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초유의 '여소야대' 정국에서 여당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셈이다. 하지만 선거 직후 이 대표는 '2년 뒤 총선을 대비하겠다'며 '혁신위원회'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일 "오늘로 총선이 678일 남았다"며 최재형 의원을 위원장으로 세운 혁신위 출범을 예고했다. 정당혁신과 개혁을 통해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취지다. 여기에 "지방선거가 끝났으니 다시 당원모집에 박차를 가하겠다"며 온라인 당원 가입을 독려하는가 하면 "내년 4월 전주을 보궐선거에서 1차적인 평가를 받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선거 승리를 책임져야 할 '당대표'로서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면서도 당의 진열을 가다듬는 모양새가 돋보였다. 하지만 당시 이 대표가 띄운 '혁신위'는 앞으로 당을 갈등의 소용돌이로 이끌었다.
이 대표는 지난달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크라이나에서 답례품으로 받은 철퇴 사진을 게시한 뒤 '육모방망이 같다'고 적었다. 당시 이 대표 우크라이나 행을 '자기 정치'라고 비난한 정진석 의원을 저격한 것이다./이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
◆'우크라이나' 달려간 이준석…'육모방망이'로 정진석 '저격'
이 대표는 지난달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평화를 되찾기 위한 노력을 응원한다"며 직접 우크라이나를 찾았다. 하지만 대표적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관계자)으로 불리는 5선 중진 정진석 의원은 이 대표의 행보를 두고 '자기 정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공개 비판했다.
당시 출국 시간도 비공개로 했을 만큼 신변노출 위험 등을 고려해 SNS 이용을 자제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이 대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국가에서 활발한 SNS 활동을 통해 반박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6일 "어차피 기차는 갑니다"라는 짧은 메시지로 응수했다.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진 않았지만 자신을 공개 비판한 정 의원을 겨냥한 것으로 읽힌다. 특히,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라는 유명한 표현에서 앞의 일부 문구만 생략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가장 뜨거운 화제를 불러 모았던 게시글은 우크라이나에서 답례품으로 받은 '육모방망이' 사진이다. 그는 "코자크 족 지도자가 들고 사용하는 불라바라는 철퇴라고 설명 들었다"며 "자유와 영원한 존립을 위해 잘 간직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이 대표가 정 의원의 과거 발언을 역이용해 정 의원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 의원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전신) 의원 시절이던 2017년, 대선 참패와 관련해 "보수 존립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은 육모 방망이를 들고 뒤통수를 빠개버려야 한다"며 "적으로 간주해서 무참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이 대표는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 의원을 겨냥한 것이냐'는 질문에 "당연히 겨냥했다"고 밝혔다.
지난 달 20일에는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에서 자신을 조롱한 만평을 링크하며 "북한 만화에까지 등장하다니 영광"이라고 적었다. 최근 자신을 둘러싼 갈등 배경에 당권 다툼이 있다는 점을 조롱한 의도로 풀이된다./이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
◆安과의 갈등, 북한 만화까지 등장한 '준스톤'
이 대표는 지난달 20일 북한 대외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에서 자신을 조롱한 만평을 링크하며 "북한 만화에까지 등장하다니 영광"이라며 "북한은 신경 꺼라"라고 적었다.
공개된 만평은 당시 국민의힘 내에서 벌어지는 당권싸움을 빗대고 있다. '쟁탈전'이라는 제목의 만화에는 늑대로 표현된 윤핵관과 하이에나로 표현된 안 의원 사이에서, 고양이로 표현된 이 대표가 눈치를 보며 생선(당권)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고양이 위에 "흥 어림없다"라고 적힌 말풍선이 눈에 띈다.
이는 이 대표가 최근 정 의원과 우크라이나 방문, 혁신위원회 등으로 설전을 벌이고 안철수 의원과 국민의당 몫 최고위원 추천을 두고 공개적으로 충돌한 배경에 당권 다툼이 있다는 점을 조롱한 의도로 풀이된다.
윤리위원회 전체 회의를 하루 앞둔 21일 밤, 그는 '포에니 전쟁'을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비유했다. 답답함 내지 억울함을 토로한 것으로 읽힌다. /이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
◆ '포에니 전쟁' 거론한 李, '억울함' 토로?
이 대표 글의 특징은 여러 해석을 낳게 하는 다양한 표현들이다. 그는 자신을 향한 압박의 부당함을 서술하듯, 현 상황을 '포에니 전쟁'을 통해 비유했다.
윤리위 회의를 하루 앞둔 21일 밤, 그는 페이스북에 "결국 그에게도 포에니 전쟁보다 어려운 게 원로원 내의 정치싸움이었던 것 아니었나"며 "망치와 모루도 전장에서나 쓰이는 것이지 안에 들어오면 뒤에서 찌르고 머리채 잡는 거 아니겠나"라는 글을 올렸다.
여기서 언급한 '그'는 고대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인 '스키피오 아푸리카누스'를 뜻한다. 스키피오는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를 꺾고 로마의 영웅이 된다. 37세의 젊은 나이로 공화정 로마의 감찰관 자리에 오르지만, 후임 감찰관 마르쿠스 카토가 꾸민 음모로 공금 횡령 혐의를 받아 정치 일선에서 쫓기듯 물러났다. '37세 여당 수장'인 이 대표가 본인이 처한 상황을 이에 대입해 답답함 내지 억울함을 토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는 지난 달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동시에 흰머리 세 가닥은 처음 뽑아본다"고 적었다. 이를 두고 자신과 갈등을 가진 배현진·안철수·장제원 의원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
◆ 흰머리 '세가닥'은 진간장?(배현진·간철수·장제원)
22일 열린 윤리위는 긴 회의 끝에 결국, 이 대표 징계 심의를 오는 7일로 연기했다. 이를 두고 이 대표는 '기우제식 징계'라며 강하게 비판했고, 앞서 예고한 혁신위 출범을 띄우며 '자기 정치'에 박차를 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권 쟁탈전을 향한 친윤계와의 갈등은 더 뚜렷해졌다. 23일 '윤핵관' 장제원 의원이 이 대표와 배현진 최고위원의 공개 충돌을 두고 언론에 "이게 대통령을 돕는 정당이냐"며 쓴소리를 하자 이 대표는 "디코이(미끼)를 안 물었더니 드디어 직접 쏘기 시작한다"며 "이제 다음 주 내내 간장 한 사발 할 것 같다"고 썼다.
정황상 '디코이'는 배 최고위원, '간장'은 안 의원과 장 의원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후 26일, 그는 "동시에 흰머리 세 가닥은 처음 뽑아본다"며 본인의 새치 사진을 업로드했다. 최근 당내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함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이지만 흰머리 '세 개'를 강조한 것은 이 대표가 앞서 '디코이와 간장'이라 비꼰 세 의원(배현진, 장제원, 안철수 의원)을 또 한 번 저격한 것으로 읽힌다.
이와 관련, SNS로 거침없는 '메시지 정치'를 이어가는 이 대표를 향해 '여당 대표로서 메시지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온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이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전투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정치는 꼭 이겨야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백의 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이 대표의 SNS 정치가 지난 선거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취약점이 될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부드럽게 보완해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