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활발한 文, 사저로 집결한 친문…'반윤' 구심점 될까
입력: 2022.06.23 00:00 / 수정: 2022.06.23 00:00

文, 퇴임 이후 SNS로 일상 공유…"지속하면 현 정권과 알력 갈등 소지"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40일이 지난 현재 SNS 등으로 일상을 활발하게 공유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갈무리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40일이 지난 현재 SNS 등으로 일상을 활발하게 공유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갈무리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자연으로 돌아가 잊혀진(잊힌)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존재감이 퇴임 후 40여일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SNS를 통해 근황이 공개되고, 청와대 참모 등 측근들의 사저 방문이 이어지면서다. 현 정부의 문재인 정부를 향한 칼날이 매서워지고, 야권은 리더십 부재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문 전 대통령이 자연스레 反尹(반윤석열)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전임 대통령의 공개 행보는 사소하더라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어 자제해야 한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문 전 대통령은 SNS로 활발한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퇴임 이틀 만인 지난 5월 12일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인사드리고 통도사에도 인사 다녀왔다"고 근황을 전한 것을 시작으로 22일 현재 페이스북에 총 11차례의 글을 직접 올렸다. 대부분은 양산에서의 일상을 전하고 있다. '농부'로 변신한 문 전 대통령은 수확한 상추 바구니를 들고 있는 모습, 텃밭을 가꾸는 모습, 작물에 물 주는 모습, 주말에 성당 미사를 가거나 서재를 정리하는 모습, 마을 주민과 막걸리 마시는 모습 등 소탈한 모습들을 공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2일 현재 페이스북에 11건의 글을 직접 올렸다. 다수는 경남 양산 사저에서의 일상에 관한 것이지만, 정치적 해석을 가져올 만한 글도 올려 눈길을 끌었다. /문 전 대통령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갈무리
문재인 전 대통령은 22일 현재 페이스북에 11건의 글을 직접 올렸다. 다수는 경남 양산 사저에서의 일상에 관한 것이지만, 정치적 해석을 가져올 만한 글도 올려 눈길을 끌었다. /문 전 대통령 페이스북·인스타그램 갈무리

다만 정치적으로 해석될 법한 글들도 종종 올라왔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9일 김희교 광운대 교수의 책 '짱깨주의의 탄생'을 추천했다. 그는 "이념에 진실과 국익과 실용을 조화시키는 균형된 시각이 필요하다"며 "언론의 눈이 아닌 스스로 판단하는 눈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했다. 책을 추천한 시기는 공교롭게도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강조하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참가 뜻을 시사하던 때였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을 친중 성향이라며 비판했던 일부 언론을 지적하는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에 대한 불편함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해당 책은 주요 서점에서 역사 분야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며 문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건재함을 보여줬다. 8회 지방선거 결과가 나온 지난 2일에는 문 전 대통령 트위터 계정으로 이재명 민주당 의원을 비판하는 트위터 글에 '좋아요'를 표시해 정치적 해석을 불렀다. 지난 21일에는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에 윤 대통령보다 먼저 축하 메시지를 내기도 했다.

오프라인에서도 뚜렷한 존재감을 보였다. 지난달에는 방한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남을 조율했다가 최종적으로 약 10분간 전화 통화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에도 참석했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이재명 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혹시 쓸 데가 있을지 모르니 사진을 찍자"고 말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6·1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 진보 진영 결집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에는 문 전 대통령 사저에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전 대표와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었던 윤영찬 의원을 시작으로, 박광온 의원, 한덕수 국무총리, 지난 19일 주말에는 청와대 출신 민주당 의원 8명이 평산마을을 찾았다. 문 전 대통령을 만나고 온 A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정원이라든지 텃밭이라든지 정비할 게 많다고 해서 장마를 앞두고 퇴임 후 인사드릴 겸 방문했다"며 문 전 대통령이 사저 앞 시위에도 의연한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최근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공세를 펼치고 있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이나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 관련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A 의원은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고 (다만 문 전 대통령이) 박상혁 의원에게 '무슨 잘못을 해서 소환을 당했나'라며 농담 삼아 한마디 했다"고 말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퇴임 이후는 어땠을까.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각각 사저가 있는 상도동과 동교동에서 계보가 형성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선거철만 되면 전·현직 정치인들이 사저로 모여들고 이들 전 대통령이 한마디를 남기면 파장이 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7년 무렵 17대 대선을 앞두고 정치 현안에 대해 언론에 입장을 밝히면서 '훈수정치'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62살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퇴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귀향했다. 시골이었지만 봉하마을은 '친노'의 집결지가 됐고, 시민들과의 활발한 소통 행보를 보이면서 사저 인근이 관광지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직에서 물러난 후 수사선상에 오르면서 정치 현안에 대한 입장 표명 없이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근무했던 인사들이 문 전 대통령 사저를 연이어 찾고 있다. /전해철·이낙연·고민정·박상혁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문재인 정부에서 근무했던 인사들이 문 전 대통령 사저를 연이어 찾고 있다. /전해철·이낙연·고민정·박상혁 의원 페이스북 갈무리

정치권 일각에선 선거 연패 이후 야권에 뚜렷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임기 직전 40%대의 지지율을 기록한 문 전 대통령에 일부 정치인들이 기대고 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최근 윤석열 정부의 '이전 정부 지우기'로 신구 권력 구도가 되면서 야권이 '문재인 정부 지키기'로 대야 투쟁 전선을 형성한 분위기다. 아울러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문심’(文心)'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청와대 출신으로 구성된 민주당 의원 모임인 '초금회'는 최근 활동을 재개했다. '매월 첫 주 금요일 식사하는 모임'으로 시작해 20여 명이 몸담고 있다. A 의원은 "공식적인 활동을 하는 건 아니고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친목 모임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모이지 못하다가 이제 때때로 차 한 잔씩 하고 있다. 정치성을 띤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행보에 대해서도 "지지자분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지, 특별한 정치적 메시지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지지자들이 강력하지만 한편으론 (문재인 정부에 대해) 냉정한 비판 여론도 있는 게 사실이다. 대통령은 퇴임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한다고 친문 세력이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 출신 등 친문 의원들은 최근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 등에 강경한 목소리를 내며 계파성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퇴임 대통령의 언행은 사소하더라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한국적 정치 상황 속에서는 퇴임한 대통령이 본인 의도와는 무관하게 일단 외부 노출되고 정치인을 접촉하게 되면 그 자체로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면서 활발한 활동을 지속한다면 윤석열 대통령 측이 견제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전망했다. 이어 "(문 전 대통령이) 반윤 구심점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민주당에는 컨트롤타워가 문 전 대통령과 이재명 의원인데, 한쪽 기둥을 살리려고 (친문 의원들이 양산 사저에) 자꾸 가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논란의 여지는 커지고 현 정권과의 알력 갈등 여지가 확산할수록 어려워질 수 있다"고 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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