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피살' 2년 만에 뒤집힌 '사실'…신·구 정권 충돌?
입력: 2022.06.17 00:00 / 수정: 2022.06.17 00:00

대통령실 "'서해 피살 공무원' 유족들의 진상 규명 요구에 '文정부 불응'"

野 윤건영 "尹정부, 특정 정보 왜곡 단정 못 지어…해경, 사실관계 호도"

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이 16일 오후 연수구 옥련동 인천해양경찰서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해 피격 공무원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약 2년 전 중간 수사 결과를 뒤집는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이 16일 오후 연수구 옥련동 인천해양경찰서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해 피격 공무원 수사 결과' 브리핑에서 약 2년 전 중간 수사 결과를 뒤집는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표류하던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사망 당시 47세)가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한 뒤 시신이 불태워진 충격적인 사건과 관련한 핵심 '사실'이 약 2년 만에 달라졌다. 이 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해양경찰의 중간 수사 결과가 '단정 못 한다'로 바뀐 것이다. 정권이 바뀌니 사실이 달라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를 둘러싸고 '신·구 정권'은 충돌할 조짐이다. 그러는 사이 가족을 잃은 유족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진상 규명'은 조금 더 미뤄지게 됐다.

16일 오전 국가안보실은 2020년 9월 22일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후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 1등 항해사 이 씨의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항소를 취하했다고 밝혔다. 이에 국가안보실에 '정보를 일부 공개하라'고 결정한 1심 판결이 확정됐지만, 해당 자료는 이미 '비공개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돼 실질적인 정보 공개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국방부와 해경이 보유한 관련 자료 외에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이 보유한 이 사건 관련 자료는 모두 '봉인'됐다.

이에 윤석열 정부 국가안보실 측은 이날 "진실 규명을 포함해 유가족 및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충분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오늘 오전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윤석열 대통령을 대신해 유족인 고인의 형(소송 당사자 이래진 씨)과 통화해 국가안보실의 항소 취하 결정을 비롯한 관련 부처의 검토 내용을 설명했다. 국가안보실에서는 앞으로도 유가족이 바라는 고인의 명예 회복과 국민의 알 권리 실현을 위해 노력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 31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공무원의 유가족을 면담하고 있다. /국민의힘 선대본 제공
지난 1월 31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공무원의 유가족을 면담하고 있다. /국민의힘 선대본 제공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제16조에 따르면 대통령기록관장은 비공개로 분류된 대통령기록물에 대해 이관될 날부터 5년이 경과한 후 1년 내에 '공개' 여부를 재분류하고, 그 첫 번째 재분류 시행 후 매 2년마다 전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공개 여부를 재분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에 대한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 자료도 최소 5년 이상은 공개가 불가능한 셈이다.

다만 '해당 기록물을 작성한 전직 대통령이 봉인 해제를 요청한 경우', '국회 재적의원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 의결이 이뤄진 경우', '관할 고등법원장이 해당 대통령기록물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발부한 영장이 제시된 경우' 등 세 가지 요건 중 하나 이상을 충족하면 비공개 대통령기록물도 공개나 열람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세 가지 다 쉬운 경우가 아니다"라며 "그런 차원에서 자체 열람이 (지금은) 안 되지만,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본 후 정부 차원에서 (공개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이 있으면 추가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 당시에 왜 그런 조치(자진 월북 시도라고 판단)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는가'라는 질문엔 "오늘 해경·국방부에서 나름의 판단 속에서 기자회견이 이뤄졌다고 알고 있는데, 저희는 아직 전체 기록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여러 차례 '유가족들의 억울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유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거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해 피살 공무원의 형 이래진 씨(오른쪽)가 지난 2020년 9월 21일 인천광역시 여객터미널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더팩트 DB
'서해 피살 공무원'의 형 이래진 씨(오른쪽)가 지난 2020년 9월 21일 인천광역시 여객터미널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더팩트 DB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만약에라도 민간인이 북한군에 의해서 무자비하게 피살되고 시신이 불태워진 그런 비인권적인 만행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이 '자진 월북'이라는 뚜렷한 근거 없이 (만들어진) 프레임 때문에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그렇게 규정됐다면, 거기에 어떤 의도가 있다면 그것을 밝혀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 저희의 생각"이라며 "그것을 규명하는 차원에서 오늘 (국방부와 해경이 보유한 자료) 일부가 공개된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자진 월북 의도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게 오늘 발표의 핵심"이라며 "국가의 가장 큰 의무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권을 지키는 것인데, 당시 유가족들의 여러 차례 진상 규명 요청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국가가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관계자의 설명에 앞서 국방부와 해경은 "김 씨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며 "유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공식 사과했다. 이는 "자진 월북을 시도했을 것으로 판단된다"는 2020년 9월 중간 수사 결과를 뒤집은 것이다.

이 사이 달라진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교체됐다는 것뿐이다. 과거 사실이 바뀌고, 현 정권 대통령실이 "전 정부가 유족의 진상 규명 요청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구 정권 측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반박 입장문'을 내고 "문재인 정부가 이 씨의 월북 시도를 단정했다고 주장하지만, 해경을 포함한 우리 정부는 당시 다각도로 첩보를 분석하고 수사를 벌인 결과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던 것"이라며 "이 판단은 사건 발생 지역이 북측 수역이었다는 물리적 한계 속에서 군과 해경, 정보기관의 다양한 첩보와 수사를 근거로 한 종합적 판단이었다"고 주장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문재인 정부는 해경을 포함한 다각도로 첩보를 분석하고 수사를 벌인 결과 이 씨의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던 것이라며 이 판단은 사건 발생 지역이 북측 수역이었다는 물리적 한계 속에서 군과 해경, 정보기관의 다양한 첩보와 수사를 근거로 한 종합적 판단이었다고 반박했다. 윤 의원이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김규현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6일 "문재인 정부는 해경을 포함한 다각도로 첩보를 분석하고 수사를 벌인 결과 이 씨의 '월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던 것"이라며 "이 판단은 사건 발생 지역이 북측 수역이었다는 물리적 한계 속에서 군과 해경, 정보기관의 다양한 첩보와 수사를 근거로 한 종합적 판단이었다"고 반박했다. 윤 의원이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김규현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질의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특히 윤 의원은 "당시 문재인 정부가 이러한 판단을 내리게 된 데에는 비공개 자산인 軍 특수정보(SI)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이 특수정보는 윤석열 정부가 오늘 항소를 취하한 정보공개청구 소송 과정에서 법원이 이미 비공개로 결정했던 것이다. 오늘 윤석열 정부의 발표 역시, 당시 문재인 정부가 특정 정보를 왜곡하거나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누락해 그와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이라 단정 짓지는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오늘 해경의 발표는 월북 의도가 아니라는 명확한 증거도 내놓지 못한 채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어정쩡한 결론을 내려, 오히려 교묘하게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있다"며 "보안이 생명인 안보 관련 정보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왜곡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되며, 이는 국가적 자해 행위다. 아울러 SI는 공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악용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신구 정권이 충돌하는 모습에 대통령실 측은 '신구 갈등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신구 갈등이 아니라 유족들의 진상 규명에 대해서 정부가 응답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자진 월북의 의도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당시에 자진 월북 가능성이 높다, 정황이 높다고 발표한 것에 어떤 의도가 있는지 밝히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아직까지 그 의도는 저희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진상 규명을 계속해 나갈 의지를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록을 비공개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한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만큼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은 신구 정권 갈등의 새 뇌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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