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패싱 방지법' 충돌…"尹정부 흔들기" vs "행정입법 견제 강화"
입력: 2022.06.15 05:00 / 수정: 2022.06.15 05:00

'분점정부'에서 나타난 현상…전문가 "정치적으로 해결할 문제"

여소야대 정국으로 국회가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발의돼 갈등이 한층 심화되고 있다. /이선화 기자
여소야대 정국으로 국회가 대치를 이어가는 가운데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이 발의돼 갈등이 한층 심화되고 있다. /이선화 기자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여소야대 정국에서 자연스러운 수순인 걸까. 대통령이 시행령을 함부로 추진하지 못하게 견제하는 이른바 '국회 패싱 방지법'을 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개별 의원의 일'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입법 추진 여지를 남겼다. 국민의힘은 '정부 흔들기'를 위한 거대야당의 폭주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이 법안을 당론으로 밀어붙일 경우 국회 원 구성 협상, 인사청문회 등을 두고 진행 중인 여야 갈등이 한층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14일 '국회 패싱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종민·김영진 의원 등 13명이 공동발의에 이름을 올렸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 시행령을 통해 법무부 내 '인사정보관리단' 설치를 추진하자, 야당이 제동을 걸면서 법안을 마련했다.

해당 개정안은 정부의 시행령 개정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부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소관 상임위가 해당 기관장에게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고, 기관장은 요청받은 사항을 처리해 결과를 보고토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즉 행정입법은 법률에 종속되는 만큼 행정부가 법 취지를 왜곡하거나, 위임 범위를 일탈하거나, 과도하게 규율할 경우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 통제권을 강화한다는 게 핵심이다. 현행법은 행정입법 개정에 대해 상임위에서 단순히 처리 의견을 권고하는 수준에 불과해 정부가 수용하지 않거나 회피하는 경우 구속 수단이 없어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응천 의원은 모법 취지에 어긋나는 행정입법에 대해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14일 대표발의했다.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발언하는 조 의원. /이선화 기자
조응천 의원은 모법 취지에 어긋나는 행정입법에 대해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14일 대표발의했다.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위 전체회의에서 발언하는 조 의원. /이선화 기자

야당 지도부는 현재 "당론이 아닌 개별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국회 원 구성 협상과 인사청문회 등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이를 새로운 협상 카드로 내세울 가능성도 있다.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입법 취지와 다른 시행령 등이 만들어질 때 국회는 어떤 의견을 낼 것인지 '절차'의 문제"라며 "원 구성이 되면 (시행령 개정 통보를) 본회의를 거쳐서 하는 게 좋을지, 상임위 차원에서 할지 더 간소화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는 문제"라고 입법 추진 여지를 남겼다.

여당은 이번 개정안이 삼권분립 정신을 훼손하고 윤석열 정부를 발목잡기 하려는 다수당의 폭거라고 반발하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했다면 국회법 개정하자는 얘기를 했겠나. 아마도 대통령만 바라보며 '눈치게임' 하듯 민망한 기립표결을 반복했을 것"이라며 "대선과 지방선거에 패배해 남은 권력 국회에서 다수당 권력을 극대화해 행정부를 흔들겠다는 것이 국회법 개정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헌법에서 행정입법권을 부여해 구체적인 실행 방식을 행정부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했는데 국회가 시행령에 대해 수정 요구권을 갖게 되면 행정부 입법권 침해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170석의 민주당이 국회법 개정안 처리를 강행한다면 국민의힘이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최후의 수단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13일 민주당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 요구권을 갖는 것은 위헌 소지가 좀 많다고 본다"며 강한 수위로 비판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한 라디오에서 "만약 민주당의 강행에 의해 법이 통과가 된다면 대통령 거부권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국민의힘은 야당의 국회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윤석열 정부 흔들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선화 기자
국민의힘은 야당의 '국회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윤석열 정부 흔들기"라며 반발하고 있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는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이선화 기자

민주당 내에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명확해 보이므로 강행 추진으로 또 '입법 독주' 프레임에 갇혀선 안 된다는 입장과 강력한 대여투쟁의 수단으로 야당의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공존한다.

'국회의 행정입법 통제'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는 국회가 아닌 행정부 자체 또는 사법적 통제가 주를 이뤄오다 1997년 1월 국회법 개정으로 제98조 2항이 신설(행정입법 개정 시 7일 이내 국회에 송부)된 것을 시작으로 '상임위 심사', '위법 소지 등이 있을 시 소관 행정기관장에게 내용 통보' 등으로 국회 입법 통제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 여당이 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감시와 견제 역할을 못 하는 상황에서 주로 야당이 문제를 제기하고 법안을 발의하는 식이었다. 행정입법 통제에 대한 한국 정치의 당파적 특성을 보여준다. 여당이 들고 나선 적도 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시절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가 관련법을 추진했다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유 의원이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사례는 유명하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관련 입법이 추진됐지만, 상임위가 수정·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행정부의 재량과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정부 측 입장을 상당히 수용하면서, 문제 소지가 있는 대통령령과 총리령에 대해 검토결과보고서를 제출하고 본회의 의결로 처리하도록 하는 데 그쳤다.

(사)한국정당학회는 국회 입법조사처 정책연구용역에 따라 작성한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 통제 방안'에서 "지금처럼 정부의 '모든' 행정입법안에 대해 국회가 '사후적으로' 통제하는 방식은 통제의 효율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국회 안팎으로 불필요한 정치 갈등을 지속해서 유발할 수 있다"며 상임위별로 행정입법 심사를 전담하는 상설특별위원회 설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행정입법 심사 기능 부여 등을 제안했다.

정치권이 정략적 목적을 떠나 행정부 견제와 균형 기능 차원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바라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건 정권교체가 돼서 분점정부(分占政府, 여소야대)가 심하게 형성됐기 때문"이라며 "당정 합의 등 입법부와 행정부 간에 협의가 잘 될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같이 분점정부가 심각한 상태에선 (당정 협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 쪽에선 행정부를 더 적극적으로 틀기 위해 그런 걸(국회법 개정안 추진을)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지금까지 입법부는 통법부라고, 행정부가 하는 대로 따라갔던 경향성이 있다. (이번에 발의된 국회법 개정안은) 어떻게 보면 본연의 행정부 견제와 균형 기능을 제대로 하게 되니 좋은 면도 있다. 다만 지금까지 시행령에 대해 관행적으로 (해왔고) 얘기하는 게 별로 없었다. 정파적, 정략적 목적으로 도입된다면 그것도 문제다. 그래서 (관련 입법을) 입법부 내에서 어떻게 볼 건지 조율이 필요해 보인다. 정치 과정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입법한다면) 국민의힘도 입법부 구성원이니 원칙에 맞게 합의해서 입법부가 행정부를 정정당당하게 견제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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