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자승자박' 민주당, 또 남 탓하면 미래 없다
입력: 2022.06.01 00:00 / 수정: 2022.06.01 00:00

대선 패배에도 자정 기능 상실…미래 가치 탐색,·인적 쇄신 대두

더불어민주당은 지방선거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4~5곳이면 선전이라며 참패를 예고했다. 어려운 상황에 대해선 정부 여당을 탓하고 있다. 지난 2020년 4월 15일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압승을 자축하며 종합상황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당 지도부. /국회사진취재단
더불어민주당은 지방선거 선거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4~5곳이면 선전'이라며 참패를 예고했다. 어려운 상황에 대해선 정부 여당을 탓하고 있다. 지난 2020년 4월 15일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압승을 자축하며 종합상황판 당선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당 지도부. /국회사진취재단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능력 있는 남편과 사랑스러운 아들을 두며 모두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가 외도로 서서히 무너져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소설은 일견 단순해 보이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선 모든 요건이 들어맞아야 하고, 하나라도 어긋날 경우 불행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성공을 위해선 여러 요소가 모두 충족돼야 한다는 일명 '안나 카레니나 법칙'은 정치권에도 적용할 수 있다. 패색이 짙은 정당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다양하게 제기되는 이유들 중 선거에서 승리하는 정당의 필요조건을 골라 개선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그런 점에서 패배 분석은 매우 중요하다. 잘못된 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향후 쇄신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번 8회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벌써 백기를 준비를 하고 있다. 선거 전략을 총괄하는 김민석 민주당 통합선대위 공동 총괄본부장은 지난달 30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현 판세에 대해 "4곳조차 아차 하면 흔들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2주 전만 해도 민주당 텃밭인 호남과 제주 등을 포함해 '6~7곳 승리하면 선전'이라고 한 데 비해 목표치를 대폭 낮춘 것이다. '간판 정치인'인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마저도 '무명' 후보와 박빙 대결하는 지경이다.

이처럼 사실상 판세가 기울었다고 인정한 민주당은 무엇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을까. '고군분투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김 본부장은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요약하자면 민주당은 이번 지선이 '정치 선거'가 되지 않도록 한덕수 국무총리 인준과 추가경정예산안 등에 협조했는데, 오히려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협치를 파괴하면서 야당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또 긴급 성명을 통해 법무부의 인사검증단 설치, 감찰관 임명 백지화 시도 등을 비판하면서 "윤석열 정부 내의 섭정음모·국정농단 시도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듣다 보니 이상했다. 김 본부장의 말대로라면 상대당의 반민주주의와 협치 파괴 행위는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어 오히려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할 요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초반 민주당이 헛발질하는 '야당 덕'에 7회 지방선거와 21대 총선에서 압승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도 여야가 바뀌었을 뿐, 지난 5년 전에 비해 국민의힘이 압도적으로 잘하기 때문에 지지한다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들어보지 못했다.

지난 5년을 거쳐 패배하는 정당으로 체질을 바꾼 건 그 누구의 탓도 아닌 민주당 스스로다. 지난해 4·7재보궐 선거 참패와 20대 대선 이후 혁신할 소중한 기회를 날려 버리고 '안전한 길'을 택했다.

쇄신할 시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2021년 4월 재보궐 선거 후 일부 젊은 초선 의원들이 '조국 사태 사과문'을 냈다. 그러나 이들은 '초선 5적'이라 불리며 강성 지지층의 문자폭탄과 비난이 쏟아지자 반성문을 슬그머니 철회했고, "이름 빼고 다 바꾸겠다"던 당대표의 다짐도 빛이 바랬다. 민주당 주류 세력은 패배 요인을 '기울어진 언론' 탓으로 돌렸다. 잘못된 진단은 '언론개혁' 바람을 불어넣었고 언론중재법을 강행 시도하는 등 강경 노선에 빠졌다. 지난 3월 대선 패배 이후에도 '검찰공화국'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 질책을 엄중히 받아들이고, 더욱 낮은 자세로 국정에 임하겠다'는 다짐은 말뿐, 쇄신의 몸부림을 치다가 용수철처럼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다.

조국 사태로 집약되는 '내로남불'과 '팬덤 정치', 협치 없는 일방적 국정운영 등이 패배 원인으로 지목은 됐지만, 자정기능은 마비된 지 오래였다. 대선 패배 후 부랴부랴 꾸려진 비상대책위원회는 윤석열 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명분만으로 '대선 패장' 이재명·송영길 두 후보를 선거에 다시 내보내는 '묻지마'식 공천을 하기에 이른다. 민주 진보 진영의 행태를 바로잡으라는 국민의 꾸준한 요구를 무시하고 선거 승리에만 몰두한 것이다. 선거 막판에 가서야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문제제기하고 우여곡절 끝에 5대 혁신안(△더 젊은 민주당 △더 엄격한 민주당 △약속을 지키는 민주당 △폭력적 팬덤과 결별한 민주당 △미래를 준비하는 민주당)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이미 늦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방선거 이후 혁신의 길로 갈지, 내홍을 수습하는 정도에 그칠지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30일 합동 기자회견하는 이재명(오른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과 박지현, 윤호중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 /국회사진취재단
더불어민주당은 지방선거 이후 혁신의 길로 갈지, 내홍을 수습하는 정도에 그칠지 갈림길에 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30일 합동 기자회견하는 이재명(오른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과 박지현, 윤호중 공동상임선거대책위원장. /국회사진취재단

'탄핵의 강'을 건넜다고 평가받는 국민의힘은 어떻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을까. 국민의힘은 '국정농단 사태'로 전국단위 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하고 대통령 탄핵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친박 등 내부 기득권층이 사라졌다. 그러면서 '30대 0선' 당대표를 배출할 정도로 신진 세력이 유입될 환경을 마련했다.

반면 민주당 내에선 86세력의 벽이 공고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으로 제도권 정치에 들어온 이들은 자신들이 외쳤던 빈부 격차 등 사회 모순을 해결하기는커녕 자리 챙기기에 급급했다. 서로 챙기면서 패거리 문화가 조성되고 내부 비판은 금기시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청년 정치인들이 들어갈 자리는 자연스레 차단됐다.

이제는 임무를 완수한 '민주주의 수호' 외에 추구해야 할 민주 진영의 새로운 가치가 무엇인지도 분명치 않다. 보수정당의 '분노 프레임'에 그대로 분노로 맞대응하면서 민주·진보 정당의 가치를 잃었다. 분노를 이용해 갈등·분열 구조를 만들면서 양 진영의 유권자들은 '응징 투표'하는 성향이 강해졌다. 그러다 보니 민주당은 '저쪽 찍으면 망한다'는 호소·협박 전략에만 의존하고 있다.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은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에도 "국민이 정치에서 고개를 돌리면, 윤석열 정권은 오만과 불통, 독선의 국정운영으로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갈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한국 정치사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큰 줄기는 이제 막을 내렸다. 새로운 가치를 찾아야 한다. 박 위원장은 "2022년 대한민국의 정치는 586 정치인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격차와 차별, 불평등을 극복하는 것이 목표"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양극화 해소 △기후위기 △국민연금 △인구소멸 △지방청년 일자리 등의 문제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2030 세대 특성에 맞게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고 '실용주의 정치'를 해나가야 한다고 제시한 것이다. 공감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과거에 얽매여 있지 않은 새로운 세대에게 기회를 주는 환경도 마련돼야 한다.

6월 1일이 지나면 민주당은 대선 패배 후 3개월간의 정치 행보에 대한 성적표를 받게 된다. '참패가 예고된 선거였다'며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고 책임론이 약해지면 당을 혁신할 기회는 또 사라질 것이다. '내부 총질'은 안 된다며 쇄신 모양새만 갖추고 말지, 뼈를 깎는 노력을 보일지 선택은 오롯이 민주당 몫이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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