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협치', 실제론 '적대'
발목잡기만 해도 정권교체?
지방선거 후 갈등 심화 전망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임 후 첫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더팩트ㅣ허주열 기자]윤석열 대통령이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첫 시정연설에서 '의회주의자'를 자처했다. 국회와의 협력을 강조한 대통령의 메시지에, 실질적인 국회 운영권을 가진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윤 대통령을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실질적인 협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의회주의'라는 말을 네 차례 사용했다. 먼저 윤 대통령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의회주의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라며 "의회주의는 국정 운영의 중심이 의회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법률안, 예산안뿐 아니라 국정의 주요 사안에 관해 의회 지도자와 의원 여러분과 긴밀하게 논의하겠다"라며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울러 코로나19 손실보상을 위한 추경안과 관련해 "우리 앞에 놓인 도전을 의회주의 원리에 따라 풀어가는 첫걸음으로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라며 추경안의 상세한 내용을 설명한 뒤 "오늘 이 자리가 우리의 빛나는 의회주의 역사에 자랑스러운 한 페이지로 기록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에 앞서 이뤄진 박병석 국회의장과의 사전환담에서도 "저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의회가 국정의 중심이 되는 의회주의가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추진할 정책이 있으면 의회 지도자들과 사전에 상의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쳐서 국민적인 공감대를 만들어서 추진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윤석열 대통령의 첫 시정연설을 여야 의원들이 경청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이에 대해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의회를 존중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역력히 드러난 하루가 아니었나 생각한다"며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 환담을 나눴고, 의원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태도, 단상에서 끝난 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의당까지 구석구석 인사를 하는 모습은 의회주의자, 의회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고용진 민주당 선대위 공보단장은 이날 오후 국회 브리핑에서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강조한 '우리가 직면한 위기와 도전의 엄중함은 진영이나 정파를 초월한 초당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라면서도 "윤 대통령이 취임 일주일 동안 보여준 모습은 '초당적 협력'의 토대를 만드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고 단장은 이어 "윤 대통령은 특정 학교, 특정 지역, 특정 경력자 위주로 역대급 '지인 내각'을 구성해놓고 이를 밀어붙이고 있다"라며 "연설에서 예를 든 협치의 기본 전제부터 어불성설이다. 협치는 협상 정치의 줄임말로, 역지사지의 자세가 필요하다. 야당을 존중하고 국민 통합의 국정 운영을 펼칠 때 협치의 길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고 단장은 "윤 대통령이 진정으로 협치를 추구한다면, 먼저 내각과 비서실에 부적절한 인물들을 발탁한 것에 유감을 표명해야 한다"라며 "그리고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임명을 강행하려는 장관 후보자들을 사퇴시켜 여야 협치의 장애를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성비위 논란'이 제기된 윤재순 총무비서관, 검사 시절 '간첩조작 사건'으로 징계받은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박근혜 정부 시절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에서 '여론 조작'을 한 권성연 교육비서관 등 부적절한 대통령실 비서관 인사들과 국회 인사청문회 후 민주당이 '부적격'으로 지목한 한덕수 국무총리, 한동훈 법무부 장관,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등에 대한 인사를 철회해야 협치가 가능하다는 조건을 단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시정연설에 앞서 국회의장 및 여야 지도부와 사전 환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하지만 취임 후 윤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논란의 비서관 인사나, 민주당이 동의하지 않는 장관 후보자 인사에 대해 사과할 뜻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여러 의혹으로 물러난 김성회 전 종교다문화비서관, 김인철 전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모두 '자진 사퇴' 형식으로 물러났고, 이들이 사퇴 과정에서 윤 대통령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현재의 우리 정치 구조에서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지난 5년 국민의힘은 사사건건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아,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라며 "상대 진영이 죽어야 우리가 사는 (선거에서 이기는) 구조에서 민주당은 앞으로 5년 내내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데 열을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평론가는 이어 "윤 대통령도 말로는 협치를 말하지만, 실질적인 협치는 안 하고 있다"라며 "민주당이 주장하는 논란의 비서관 인사에 대한 사과나, 반대하는 장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하고 있다. 그것이 무슨 의회주의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 정치에서 협치는 이미 실종됐고, 공존의 정치는 점점 더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라며 "지금은 (윤 대통령 집권 초) 허니문 기간으로 여야 갈등이 극심하게 드러나지는 않고 있는데, 6·1 지방선거가 끝나면 다음 전국구 선거인 2024년 22대 국회의원 선거 때까지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한 여야의 다툼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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