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주 3선 의원 제명…일부 지지자들 "지선 망치려 작정했나"
박지현(오른쪽)·윤호중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저녁 국회 당대표실에서 성 비위 의혹으로 제명된 박완주 의원과 관련해 사과했다. /국회사진취재단 |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6·1지방선거를 20여 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 비상등이 켜졌다. '당내 성비위 논란'이 연이어 터진 것이다. 지도부는 3선 의원 제명을 결정하는 등 신속히 진화에 나섰지만,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일각에선 '오거돈·박원순 악몽'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성비위 무관용 원칙'을 밝혀온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의 영입 이후 '엄중 징계'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겪는 '성장통'이란 해석도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지방선거를 망친다"라며 박 위원장을 비난하는 격정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어 당내 혼선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민주당은 12일 오전 긴급 비상대책위원회를 열고 3선의 박완주 의원(충남 천안시을) 제명을 의결했다. 박 의원 본인의 혐의 인정 여부와 상관없이 비대위원들이 만장일치로 결정한 조치였다. 최고 수준의 당내 징계가 이뤄진 셈이다. 민주당은 국회 윤리특위에도 당 차원의 강력한 징계를 요청할 계획이다.
당 지도부는 박 의원 제명 결정과 관련해 하루에만 세 차례 사과했다. 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불꽃추적단' 출신인 박 위원장은 비대위 직후 페이스북을 통해 "당내 반복되는 성비위 사건이 진심으로 고통스럽다"며 사과했다. 이어 양승조 충남도지사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서도 지도부는 고개를 숙였다. 공교롭게도 충남은 논란이 된 박 의원 지역구가 있는 곳이다.
당 정책위의장 등 요직을 지낸 박완주 민주당 의원에 대한 제명이 12일 당 비대위에서 결정됐다. /이선화 기자 |
오후 7시, 박 위원장과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직접 카메라 앞에서 대국민 사과했다. 이 자리에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성비위 사건 예방을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했다.
박 위원장은 "앞으로 당내 젠더폭력에 더욱 철저하게 대응하겠다. 현재 의혹이 제기되어 조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진상을 밝히고 예외 없이 최고 수준의 징계를 하겠다"며 "지방선거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젠더폭력상담신고센터를 통한 성비위 제보와 조사, 징계를 이어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성범죄를 뿌리뽑고 성평등 조직문화 정착을 위해 당헌·당규 개정과 제도개선도 적극 추진하고, 당내 젠더폭력신소상담센터 기능 강화, 피해자 인권 보호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정착시키겠다"고 밝혔다.
비대위가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박 의원 사건 외에도 '성비위 의혹'이 연이어 터져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이상헌 의원(울산 북구)에 대해서도 '성비위 혐의' 언론 보도가 나왔다. 당 공보국은 당내 관련 조사나 신고 접수가 없다는 점에서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의혹 자체에 대해선 당사자인 이 의원 확인도 거치지 않은 상태다.
김원이 의원(전남 목포)에 대한 2차 가해 논란도 불거졌다. 지난해 12월 김 의원 지역사무소 보좌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당 목포지역위 인사와 의원실 직원들에게 합의 종용 및 비난을 받고, 경찰 조사에 도움을 준 지인까지 협박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김 의원은 2차 가해 사실을 전달받고도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 당내 기구인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에 신고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와 관련 민주당은 윤리감찰단 조사에 착수했다. 이에 앞서 불거진 최강욱 의원의 성희롱 발언과 은폐 의혹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민주당보좌진협의회는 "최강욱 의원의 발언 문제가 불거진 이후, 많은 제보가 들어왔다. 차마 공개적으로 올리기 민망한 성희롱성 발언들을 확인했다"며 "어쩌다 우리 당이 이 정도로 되었나 싶을 정도로 민망하고 또 실망이 크다"고 성토했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오거돈 전 부산시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故 박원순 서울시장 등 지자체장의 권력형 성폭력 문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그럼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어 그동안 당내에 제도 개선 노력이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당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재발방지를 위한 교육이나 여러 규정을 강화하는 건데, 더 중요한 건 이런 일에 대해 숨기지 않고 신속하게 징계 조치를 취하고 그에 따른 책임지는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감한 성희롱 사건의 특성상 당 차원에선 예방 방지보다 사후 조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선 이번 사태로 '오거돈(왼쪽), 안희정(오른쪽)'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남용희·이선화 기자 |
당내 성비위 문제가 연이어 드러나는 배경으로, 박 위원장 영입 이후 달라진 분위기가 반영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성비위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전이라면 억눌렸을 문제를 신속히 조사, 징계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멱살이라도 잡아야 하나"라고 발언할 정도로 당내 권력형 성범죄 무관용 원칙을 강조해왔다.
이와 관련 고 수석대변인은 "비대위 출범 이후 (성폭력 사건 관련) 시스템이 달라진 건 없다. 다만 접수되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엄중하게 징계하겠다는 입장이라 신속하게 윤리감찰단 조사를 지시하고 결과가 나오면 여러 정치적 고려 없이 거기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4월 말 당 젠더신고센터에 신고된 박 의원의 성비위 사건이 10여 일 후 당 제명 결정 후에야 공론화된 점도 달라진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란 말이 나온다. 지도부는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 철저안 보안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그만큼 피해자 보호를 위해 만전을 기했다. 알려지게 되면 특정 인물에 대한 추측성 보도가 굉장히 많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게 진행했다. (박 위원장이) 불꽃답게 한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후보 일부 지지자들은 박 위원장을 '사과 중독자'등으로 비하하며 반복되는 사과는 그만하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 갈무리 |
일각에선 이번 파장으로 6·1 지방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지난해 4·7 재보선 때 '성비위 사건'이 발단이 돼 패배한 것처럼 이번에도 과거 성비위 사건까지 재소환되면서 선거에 미칠 악영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일부 강성 지지자들은 거듭 '사과' 입장을 표명한 박 위원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모습도 보인다.
SNS에 올라온 영상에 따르면 이날 양 후보 개소식 후 차량에 탑승하는 박 위원장과 윤 위원장을 향해 "사과 좀 그만해"라며 욕설과 함께 고성을 지르는 지지자들이 보였다. 당원게시판과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 팬카페인 '재명이네마을'에도 "사과만 하면 지방선거를 진다는 것 모르냐" "지선에 집중해야 하는데 비대위가 계속 선거 방해하면 어쩌자는 건가" "박 위원장은 사과 말고 할 줄 아는 게 뭔가" 등 고개 숙인 지도부 태도를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박 위원장을 향해선 '사과 중독자' '낙지현' 등 비하 발언도 적지 않았다. 박 위원장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그는 입장문에서 "피해자께서, 국민들께서 됐다고 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사과드릴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