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국민 품으로' 돌아간 청와대 개방 현장 가보니
입력: 2022.05.13 00:00 / 수정: 2022.05.13 00:00

'내부 미개방' 아쉬움에도 좋은 추억 쌓는 남녀노소 눈길

청와대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4년만인 지난 10일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전면 개방됐다. 개방 이틀째인 지난 11일 오후 청와대 본관 앞에는 기념사진을 촬영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종로=허주열 기자
청와대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4년만인 지난 10일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전면 개방됐다. 개방 이틀째인 지난 11일 오후 청와대 본관 앞에는 기념사진을 촬영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종로=허주열 기자

[더팩트ㅣ종로=허주열 기자] 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시작일 맞춰 청와대가 개방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4년간 대통령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된 '최고 권력자를 위한 공간'이 국민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개방 첫날 74년 만에 국민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지역주민, 학생, 소외계층 등 국민대표 74명이 '봄의 약속'을 상징하는 매화꽃다발을 들고 입장한 것을 시작으로 사전에 관람 신청을 해서 당첨된 대상자 2만6000여 명이 차례대로 청와대 내부를 관람했다.

때아닌 '무속 논란'도 일었다. 청와대에 첫 입장한 74명의 국민대표가 든 매화꽃다발을 두고 "귀신 쫓는 복숭아나무"라는 주장이 SNS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제기된 탓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매화꽃이 맞다"고 분명히 하면서 해프닝으로 마무리가 됐다.

개방 첫날 관람 신청을 했다가 떨어진 기자는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와대이전 태스크포스(TF)가 취재진을 대상으로 1일 최대 80명(국내 언론인) 취재신청을 받자, 지원해 11일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청와대 개방 행사가 열린 지난 10일 청와대 대정원에서 시민들이 본관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청와대 개방 행사가 열린 지난 10일 청와대 대정원에서 시민들이 본관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이날 오후 서울역 인근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마을버스(종로 11)를 타고 이동하던 중 광화문에 위치한 정류장에선 평소보다 많은 승객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서 만난 60대 한 여성은 "청와대 관람을 위해 가는 길"이라며 "청와대 개방은 윤석열이 정말 잘한 것 같다. 오늘 (공개된) 사진을 보니 수석 (비서관) 회의도 동그랗게 둘러앉아 하는 모습을 보니 보기가 좋았다"고 말했다.

오후 3시 20분께 춘추문을 통과해 입장한 직후 보이는 춘추관 앞 헬기장 잔디밭에는 햇빛을 가리는 그늘막이 수십 동 세워져 있었다. 그늘막 대부분은 노부모와 함께 온 자녀들, 연인들, 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부 등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편안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잔디밭 한쪽에선 풍물놀이와 전통줄타기 공연이 진행 중이었다. 그 앞에 마련된 수십 개의 대형 빈백 소파도 이미 주인이 다 있었다. 자리를 찾지 못해 서서 공연을 관람하려던 이들에게는 진행 요인이 다가와 "그늘막 쪽에 있는 분들이 안 보이니 앉아서 관람해 달라"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헬기장 잔디밭을 지나 녹지원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30대 부부는 "기회가 닿아 아이와 함께 청와대 관람을 하게 됐다"며 "영상으로도 접하기 힘들었던 곳을 이렇게 방문하게 되어 뜻깊다.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녹지원에 도착했을 때는 두번째달이라는 팀이 판소리 공연을 하고 있었다. 녹지원 주변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면서 공연을 보고 있었다. 녹지원을 한 바퀴 돌아 바로 뒤편에 위치한 상춘재를 찾았다.

12일 오후 춘추관 앞 헬기장에 마련된 그늘막과 빈백에는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 공연을 관람하려는 시민들이 가득했다. /허주열 기자
12일 오후 춘추관 앞 헬기장에 마련된 그늘막과 빈백에는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 공연을 관람하려는 시민들이 가득했다. /허주열 기자

국내외 귀빈에게 우리나라의 전통 가옥 양식을 소개하거나 의전 행사, 비공식회의 등을 진행하는 장소인 상춘재는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친구들과 함께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던 한 30대 남성은 "청와대 개방은 정말 잘한 것 같다"며 "말로만 듣던 곳을 직접 와보니 너무 아름답고, 기분이 묘하다"고 말했다.

나무가 우거진 상춘재 옆길을 지나 대통령과 그 가족이 거주하는 공간인 관저로 향하는 길어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관저 입구, 앞마당, 관저에서 춘추관 방향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볼 수 있는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03호 침류각 쪽도 마찬가지였다.

관저에서 본관으로 향하는 내리막길 중간쯤에 마련된 벤치에는 너무 넓은 청와대 관람에 지친 관람객이 잠시 쉬어가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관람을 온 한 50대 남성은 "운 좋게 관람 신청이 당첨돼 오후 반차를 쓰고 가족과 함께 왔다"라며 "내부를 못 봐서 아쉽지만, 뉴스로만 접하던 청와대 곳곳을 이렇게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니 너무 좋다. 나중에 내부 개방도 하면 다시 와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내부 개방 시기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현장에서 취재를 지원하던 한 관계자는 "기존에 계시던 분들이 완전 다 철수한 게 아니다"라며 "내부를 개방하기 위해선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정확한 개방 시기에 대해선 전달받은 게 없다"고 설명했다.

관람객이 사진을 찍기 위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본관 앞이었다. 청와대의 중심 건물인 본관은 대통령 집무와 외빈 접견 등을 위한 공간으로 1991년 전통 궁궐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신축한 곳이다. 다만 문재인 전 대통령은 외빈 접견 등을 위해서만 이 공간을 사용하고, 평소에는 참모들이 일하는 여민관에 마련한 집무실에서 업무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정상 등의 국빈 방문 시 공연과 만찬 등의 공식 행사나, 100명 이상의 대규모 회의 등을 진행하던 장소인 영빈관 앞에도 상당한 수의 관람객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1시간 30분가량 25만㎡가 넘는 청와대 곳곳을 다니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남녀노소가 대한민국 권력의 역사가 담긴 공간을 별다른 제지 없이 자유롭게 다니는 점이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대통령 관저, 침류각, 영빈관, 상춘재. /허주열 기자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대통령 관저, 침류각, 영빈관, 상춘재. /허주열 기자

문재인 정부 말 1년 5개월가량 청와대를 출입했던 기자는 코로나19 등을 이유로 기자들이 머무는 공간인 춘추관에만 있다가 지난달 25일 문 대통령 퇴임 전 마지막으로 녹지원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초청 행사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춘추관 외 청와대의 모습을 직접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당시에는 문 대통령과 참모들이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 속 녹지원, 상춘재, 본관 정도만 둘러볼 수 있었다.

출입기자에게도 멀게만 느껴졌던 청와대 내부 곳곳을 국민들이 자유롭게 다니는 모습, 그리고 현장에 있는 직원들이 방문객의 요청을 받고 흔쾌히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대신 찍어주는 모습은 낯설기도 하면서, 신기한 경험이었다.

한편 12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청와대 관람 신청 인원은 이날 0시 기준으로 231만 명을 돌파했다. 이에 정부는 오는 21일까지만 예약할 수 있었던 것을 연장해 6월 11일 관람분까지 관람 신청을 받기로 했다.

일별 관람 시간과 관람 인원은 청와대 개방에 대해 여전히 높은 국민 관심도와 관람객의 쾌적한 관람 환경, 불편 초래 최소화 등을 위해 기존과 같이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2시간 단위로 입장을 구분하고, 각 시간단위별 6500명씩 하루 총 3만9000명씩 입장하도록 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청와대 개방 행사 시즌1의 대미를 장식하는 'KBS 열린음악회'가 오는 22일 오후 7시부터 90분간 청와대 대정원에서 열린다. 이 행사 참석 희망자 접수는 지난 10~13일 받았으며,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선정된 당첨자 1500명에게는 16일 오전 개별 문자로 당첨 사실을 안내할 예정이다. 이외에 국가유공자, 보건 의료진, 한부모 다문화 가정, 인근 주민 등 500여 명을 별도로 초청할 계획이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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