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100주년…어린이가 본 '정치인'은? '싸움꾼·솔로몬'
입력: 2022.05.05 05:00 / 수정: 2022.05.06 12:11

안전·환경·동물보호 등 입법에 관심…"약속 잘 지켜달라"

어린이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더팩트>는 대한민국청소년의회 소속 어린이의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더팩트 DB
어린이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더팩트>는 대한민국청소년의회 소속 어린이의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어린이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이했다. 선거 투표권이 없는 어린이들은 사실상 정치인의 관심에서 제외된 '미래의 유권자'다. 반면 어린이들은 앞으로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정치권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더팩트>는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대한민국청소년의회 소속 어린이의원들에게 정치인에 대한 인식과, 바라는 입법, 그리고 당부를 물어봤다. 어린이의원들은 인권, 환경, 자유, 참정권 등 어른 못지않은 답을 내놓았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 중 일부는 정치인이 대단하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지난달 20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가운데)이 삭발을 하고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인터뷰에 응한 이들 중 일부는 정치인이 '대단하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지난달 20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가운데)이 삭발을 하고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정치인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진지·헌신·싸움꾼

대한민국청소년의회 소속 어린이의원 8명에게 '정치인하면 어떤 이미지나 생각이 떠오르나'라고 물은 결과, 4명은 긍정적으로, 4명은 부정적으로 답했다. 어린이들에게 정치인은 복잡한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솔로몬 왕'이자 자기 의견만 고집하는 '싸움꾼'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로 인식되는 모습이다.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고 토론을 잘하는 것 같아요."(11세, 이도하)

"정치인들은 일단 다 뛰어난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정치인 중에 좋은 사람이 없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들어봤는데 정치인이라는 자리에 가기까지 노력을 했을 거라서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요. 무례한 정치인들은 자연스럽게 비교가 돼요. 싸우는 건 나라를 위한 자기만의 의견이 있을 거라서 싸우는 거라서 가끔 이해가 안 되기도 하지만 자기 의견을 더 어필하기 위해 그러는 것 같아요."(12세, 조민석)

"저번에 부모님과 대통령 후보 TV토론하는 걸 봤어요. 내용은 다 이해가 가진 않았는데 우리나라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주는 것 같았어요. 아빠에게 들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 신하가 되겠다'고 말했다고 했대요.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고마웠어요. 또 정치인하면 진지한 이미지가 생각나긴 하는데 무섭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은 복잡한 정치문제에 대해 생각을 많이 안 하는데 그런 걸 해주는 게 고마워요."(12세, 윤지완)

"정치인들이 회의나 토론하는 모습을 봤는데 국민을 위해서 열심히 힘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저도 저렇게 나라에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다만 정치인들이 토론할 때 목소리를 높이면 무서워요. 토론할 때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차분하게 말하면 좋겠어요."(12세, 최여원)

일부는 거짓말한다 싸운다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달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안전조정위원회에서 김진표 안건조정위원장,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유상범 법사위 간사와 언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취재단
일부는 '거짓말한다' '싸운다' 등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지난달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안전조정위원회에서 김진표 안건조정위원장,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유상범 법사위 간사와 언쟁을 벌이고 있는 모습. /국회사진취재단

"정치인하면 뭔가 안에서 비밀이나 숨기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통령 선거할 때 윤석열 후보나 이재명 후보가 대장동 비밀 이런 걸 말해서. 또 정치인들끼리 국회에서 싸우는 장면을 많이 봤는데 부적절한 거 같아요. 어린이들도 그렇게 크게 싸우지 않는데 정치인들이 그러면 어린이들도 따라 배울 거 같고, '정치인'이라는 단어의 뜻이 바뀔 거 같아요."(13세, 박승후)

"뉴스를 자주 보는 편인데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너무 싸우는 거 같아요. 자기편은 못 해도 감싸고 상대편은 잘해도 욕하는 걸 보면서 정치인에 대해 안 좋은 이미지가 있어요. 저도 예전에 국회의원이 꿈이었는데 꿈을 접었어요."(13세, 이준원)

"우리나라 정치인은 법을 잘 알고, 정직하게 지킬 것 같았어요. 하지만 최근 뉴스에서 입시 비리나 공약 불이행 같은 기사들을 보면 그런 생각과 믿음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11세, 장주하)

"거짓말하는 정치인은 양치기 소년 같고, 일을 지혜롭게 하는 정치인은 솔로몬 왕 같아서 동화 속 인물 같아요. 서로 다른 말을 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서 둘 중 한 명은 거짓말하는 거 같아요."(12세, 최시안)

◆아동 및 동물보호·환경·참정권 확대 입법에 관심

정치권에서 아동 관련 입법 성과는 부진하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현재(4일 기준)까지 발의된 아동·청소년 관련 법안은 438건(아동 312건, 청소년 126건)으로 전체 발의 법안(1만5081건)의 2.9%에 불과하다.

특히 아동학대와 관련해 정치권의 움직임은 더디다. 지난해 민법상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징계권' 조항이 삭제되는 입법 보완이 이뤄졌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 보호 조치도 꼼꼼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아동의 놀 권리와 생활 안전 등 어린이들의 인권 확대에도 정치권이 귀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 윤석열 정부는 최근 국정과제를 통해 아동학대 사건을 신속히 사법처리하기 위해 통합가정법원 설치를 약속했다. 또 보호아동 탈시설 로드맵을 마련해 가정형 보호 확대를 추진하는 등 아동학대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아동학대 발견율을 높이고 취약계층 아동을 가정과 유사한 환경에서 보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당사자인 어린이들도 '아동학대 금지'에 관심이 높았다.

어린이의원들은 아동학대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의 결심 공판이 열린 지난해 4월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검찰이 양모 장 모 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하자, 법원 앞에 모여 있던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어린이의원들은 '아동학대'가 끊이지 않는 이유로 '아이들을 존중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16개월 된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의 결심 공판이 열린 지난해 4월 14일 오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검찰이 양모 장 모 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하자, 법원 앞에 모여 있던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는 모습. /이새롬 기자

"아동학대는 어린이들의 능력을 무시한다든가 어린이에 대한 사랑과 마음이 전혀 없을 때 일어나는 거 같아요. 가끔 어른들이 아이들은 경험이 없다, 구체적으로 생각을 못한다고 하면서 무시하는데 그러지 말도록 하는 법이 있으면 좋겠어요.(조민석)"

"어른들은 자기가 가진 힘을 멋대로 사용해요. 부모는 선택할 순 없지만, 아동학대에서 벗어날 권리는 있다고 생각해요.(최시안)"

"아동학대는 어린이들을 존중하지 못해서 생기는 거 같아요. 주변에선 모를 수 있지만 학대받는 아이는 커다란 고통이기 때문에 정치하는 분들이 이런 부분을 더 보완해주는 법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최여원)"

"예전보다 아동 인권 보호나 아동학대 금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정인이 사건 등 심각한 아동 학대 사건이 여전히 많아요. 처벌도 너무 약해요.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라고 말만 하지 말고, 아동의 인권을 보호해서 더 밝은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해요.(장주하)"

눈에 보이지 않는 '인권 침해'에도 쓴소리했다. '노키즈존'이 아동의 권리를 제약한다고 지적했다.

"최근에 가족들하고 커피숍을 갔어요. 2층에 가서 풍경 보고 싶었는데 2층에 갔더니 어린이는 위험해서 안 된다는 걸 들었어요.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서 혼자서 안전을 지킬 수 있으니까 그런 걸 없애도 될 거 같아요.(이준원)"

"노키즈존이 없어지면 좋겠어요. 예전에 친구하고 음식점에 갔는데 노키즈존이어서 거기는 잘 구경을 못했어요.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어요. 아이들이 꼭 사고만 치는 게 아니니까 아이들 인권을 보호하는 법이 많아지면 좋겠어요. 어른들도 반대로 입장을 못하는 곳이 있으면 그 기분을 알 거에요.(최시안)"

이들은 또 환경과 자유, 안전, 동물보호, 청소년 참정권 확대와 같은 입법이 추진되기를 바랐다.

"옛날에 쓰레기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몰랐는데 유치원에서 환경문제에 대한 과제가 나오고 충격받아서 그 후로 관심을 갖게 됐어요. 사람들이 쓰레기를 너무 많이 버리니까 쓰레기 배출량을 한정하면 좋을 거 같아요. 어려울 거 같긴 한데 지구가 병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라면 과감한 거라도 시도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윤지완)"

"배달 때문에 오토바이가 많이 다녀요. 인도로 다니거나 번호판 가리고 다니는 오토바이들이 많아요. 아파트 내에서도 되게 생생 달려요. 이런 걸 꼬집은 법은 없는 거 같아서 그런 법이 생기면 좋겠어요.(박승후)"

"지하철에 손잡이가 있잖아요. 그런데 지하철이 많이 흔들리다 보면 손잡이를 잡게 되는데 손잡이가 너무 높은 곳에 있다 보니까 잡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걸 좀 고쳐주면 좋겠어요.(최여원)"

"인터넷이나 유튜브 같은 곳, 광고에서 아이들에게 유해한 내용이 많아요. 키즈 유튜브로 차단할 수도 있지만 인터넷 검색할 때나 게임 앱 중간 광고에서 유해한 게 너무 많이 보여요. 유해한 광고를 확실하게 차단하는 강력한 법을 만들면 좋겠어요.(장주하)"

"동물학대 금지가 강화됐으면 좋겠어요. 동물도 우리와 모습이 다를 뿐 똑같은 생명이니 똑같이 존중받으면 좋겠어요. 저는 물고기와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키우고 있어요. 또 아파트 분리수거할 때 지키지 않는 사람들 벌주는 법도 있으면 좋겠어요. 학교에서 분리수거하는 법을 배웠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최시안)"

"어린이도 시의원이나 대통령 선거를 뽑고 싶어요. (후보에 대해 잘 모르는 건) 부모님 의견도 구해서 뽑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잘 되면 좋겠고 또 도장 찍는 게 재밌을 거 같아서요.(이도하)"

이색적인 입법도 제안했다.

"예전에는 무궁화가 우리나라 국화인줄 알았는데 5학년이 되고 국화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법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안 됐다고 해요. 무궁화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라고 알고 있고 애국가에서도 무궁화가 나오니까 무궁화가 국화가 되는 법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최여원)"

◆ "어린이들 의견에 더 귀 기울여주길"

오는 10일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 인터뷰에 응한 8명의 청소년의원들은 입을 모아 "좋은 나라를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다.

"학교에서 배웠는데 저출산이나 고령화가 심하다고 해요. 그러면 세대 간 갈등이 심해질 게 뻔한데 그런 거에 대해서 정치권이 어떤 해결책이 있는지 궁금해요.(윤지완)"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공부 더해라'라고 압박감을 주는 거 같아서 이런 환경이 계속되면 아이들도 더 참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거 같아요. 또 일자리가 AI(인공지능)와 로봇으로 대체되면서 나중에 정말 좋은 인재들만 뽑아가서 딱 몇 명만 배치하고 다른 사람들은 백수로 살 수 있다는 거에 대해 약간 걱정이 들긴 해요. 또 지방의회에서 어린이청소년의회를 많이 만들어서 어린이들 의견에 더 귀 기울여줬으면 좋겠어요.(박승후)"

"어른들은 아직 좋은 대통령 안 나왔다는 말을 많이 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할 수 있는, 모두가 다 좋아하는 정치인이 됐으면 좋겠어요. 일자리도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조민석)"

"기본 규칙인 약속을 정치인들이 잘 지켰으면 좋겠어요. 저희 아파트 기부체납지에 어린이 도서관을 짓기로 약속했는데 그 자리에 자원봉사센터가 들어온 것을 보고 어린이로서 너무 실망했던 적이 있어요. 정치인들이 더더욱 기본인 약속을 잘 지켰으면 좋겠어요.(장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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