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혈세' 20대 대선, 비용 내역 열람 무제한…깜깜이는 여전
입력: 2022.04.29 00:00 / 수정: 2022.04.29 08:12

'위헌' 결정 후에야 '3개월 제한' 해지…'정치권은 '뒷전'

20대 대선에서는 1000억 원이 넘는 혈세가 선거비용으로 지원됐다. 하지만 정작 돈을 낸 국민은 지출내역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지난 3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이선화 기자
20대 대선에서는 1000억 원이 넘는 혈세가 선거비용으로 지원됐다. 하지만 정작 돈을 낸 국민은 지출내역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 지난 3월 24일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이선화 기자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20대 대선이 끝나고 50일이 지났다. 한 가정의 가계부도 10원짜리 한 장 꼼꼼히 적는 법. 1000억 넘는 혈세를 지원받은 정치권은 선거비용 지출내역을 제대로 보고 했을까. '정치자금 회계보고 열람 3개월 제한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앞으로는 기간에 관계없이 정치자금 내역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인터넷 게시 등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정치권이 조속히 추가 입법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25일부터 누리집을 통해 20 대선 선거비용에 관한 수입과 지출명세서를 공개하고 있다. 이전 선거까지는 '3개월간'만 열람할 수 있었지만 이번 대선부터 무기한 공개된다.

지난해 5월 27일 헌법재판소가 '단순위헌' 결정을 내리면서다. 헌재는 '정치자금의 수입·지출내역과 첨부 서류를 선관위 사무소에 비치하고 공고일부터 3개월간 공개한다. 다만 선거비용에 한해 선관위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수 있되, 열람 기간이 아닌 때에는 이를 공개해선 안 된다'는 정치자금법 조항(42조 2항)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2010년 12월에는 같은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었지만 이를 뒤집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열람 기간 제한이) 위헌 판결로 효력 상실돼서 앞으로 계속 열람이 가능하다. 역대 대선(정당 회계보고서 등 전체 정치자금 수입·지출내역서 포함)도 요청하면 정보 열람이 된다"라고 했다.

헌법불합치나 한정위헌은 법률 개정 시간이 주어지지만 단순위헌은 그 즉시 법률이 없어지게 되므로 추가 입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법률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3개월 간 열람' 부분은 위헌 결정으로 사라지게 됐지만, 역대 선거비용 내역을 인터넷에 공표할지 여부는 법적 근거가 없어 해석 논란의 여지가 생긴다.

선관위도 역대 선거비용 내역 무기한 인터넷 공개 여부를 실무적으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20대 대선 비용은 계속 공개하기로 했다. 다만 공개한다는 건 정보 열람이나 정보 공개 청구 등 행정상의 운영을 의미하는 것이고, 인터넷 공개는 그동안 편의를 위해 제공했는데 (역대 선거자금 인터넷 게시 여부는) 실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20대 대선 정치자금 내역은 이전과 달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서 기간 제한 없이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
20대 대선 정치자금 내역은 이전과 달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에서 기간 제한 없이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

그동안 정치자금 공개 확대에 대한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앞서 지난 2016년 중앙선관위는 정치자금의 수입·지출이 있는 경우 각각 48시간 이내에 선거관리위원회 누리집을 통해 공개하도록 하는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정치자금 수입 지출 발생으로부터 48시간 이내(김세연 의원 소개 청원) 또는 7일 이내(우원식 의원안)에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기간 제한 없이 공개하도록 하는 제도 도입 논의가 있었다.

당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검토보고서에는 "현행 정치자금 공개제도는 정치자금 정보를 정해진 기간(3개월)에만 열람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중 선거비용 내용만 인터넷에 공개하는 등 제한적으로 운영됨으로써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낮아 공개의 실질적 효과를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며 "허위·누락 보고를 예방하고, 국민, 시민·사회단체, 언론기관 등이 상호 검증함으로써 정치자금 수입·지출의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국민의 알 권리, 정치자금의 투명성 등의 측면에서 긍정적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관련법은 줄곧 계류돼 있다가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끝내 자동 폐기됐다. 결국 정치권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이 관련 조항이 '위헌' 결정이 난 셈이다.

위헌 결정과 선관위의 실무 조치로 앞으로 정치자금 내역은 무기한으로 열람할 수 있게 됐지만, 입법 보완이 절실하다.

선거비용 외 정당 재산현황 등 정치자금 내역은 여전히 관할 선관위 사무소를 직접 찾아 열람해야 하고, 사본을 출력할 때 비용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선거비용'은 그나마 중앙선관위 누리집에 공개돼 있지만 정당이 제출한 사본 형태로 올라와 있어 검색이 불가능해 사실상 있으나 마나다. 전자문서 형식으로 다운로드도 할 수 없다.

이에 반해 주요 국가에서는 선거비용을 포함해 정치자금을 실시간 공개하고 기간 제한 없이 일반인이 자료를 출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자료 접근성도 용이하게 돼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선거위원회(Federal Election Commission)는 정당과 PAC(정치활동위원회 Political Action Committee)로부터 매회 4회 분기별로 회계보고를 받고, 제출받은 모든 보고를 48시간 이내(전자파일로 수령한 경우 24시간 이내)에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기한 상관없이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선거일 후 20일까지 수입·지출내역을 보고해야 한다. 지출 총액이 200달러(약 25만 원)가 초과하는 경우는 지출 대상의 성명과 주소도 적어야 한다. 또 모든 회계보고서는 세부항목으로 분류된 전자파일 형태로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실제로 FEC 누리집을 살펴보면 역대 선거, 후보별 정치자금 수입과 지출 내역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다.

영국 역시 정당 회계보고서가 선거위원회(The Electoral Commission) 누리집에 검색할 수 있도록 공개돼 있다. 미국처럼 검색, 분류, 다운로드가 가능하도록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 있다. 다만 선거후보자의 선거회계보고는 2년만 열람이 가능하다. 프랑스도 정치자금 및 선거회계위원회(CNCCFP)가 정당 및 선거후보자로부터 받은 정치자금 회계보고를 요약해 정부 관보에 게재하고 인터넷상에도 올린다. 옆나라 일본의 경우도 총무성 누리집에서 회계보고서가 공개되며 세부항목별 분류검색이 가능하다. 다만 일반인은 보고서 공표일로부터 3년간만 열람이나 사본교부를 할 수 있다.

주요 국가에서는 선거비용을 포함해 정치자금 내역을 분기별로 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하고 선관위는 이를 알기 쉽게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있다. /FED 누리집
주요 국가에서는 선거비용을 포함해 정치자금 내역을 분기별로 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하고 선관위는 이를 알기 쉽게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있다. /FED 누리집

이들 나라에 비해 한국은 정치자금 내역에 대한 자료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성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소장(이화여대 교수)는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정치 자금이 어떻게 모이고 어떤 식으로 쓰이는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선거모금 사용이 얼마나 투명하게 사용되는지 유권자들이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른바 선진민주주의 국가와 비교해봤을 때 (우리나라는) 정보 공개성이나 접근성이 제한돼 있다. (지금은) 사본 교부도 개인 비용으로 들고, 색인 기능이 하나도 없어서 필요한 정보가 어디 있는지 모든 서류를 들여다보면서 일일이 찾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행히 헌재에서 위헌 판정을 내려서 제도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줬으니 국회에서 (후속 입법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정치자금 내역이) 신속하게 보고되고 늘상 살펴볼 수 있도록 공개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직전 선거에서는 그 정보를 유권자들이 활용하기 어렵지만 다음 선거에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정치권이 시급히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관위 관계자도 "현재 법상 (정치자금 내역을) 전자적 파일 형태로 제출하라고 명시돼 있지는 않아서 (바꾸려면) 입법 논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관련법을 논의해야 할 정치권은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분리)'과 인사청문회 국면에서 강 대 강 대치 중이다. 정개특위는 다음 달 22일로 활동을 마무리할 예정이라, 당분간 입법 보완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민주당 간사인 김영배 의원은 "지금 정개특위가 저쪽(국민의힘)에서 협조를 안 해서 상정된 안 중에 아주 일부만 조금씩 다루고 있다. 그래서 (정치자금 공개 확대 관련법은)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다"며 "5월 3일(검수완박법 처리)하고 나서 열흘 안에 추가적인 입법을 다 해야 하는데 저쪽에서 반발이 좀 있을 것 같다. 정치개혁법도 걱정"이라고 했다.

한편 선거가 있는 해에 정당에 국고로 지원해주는 선거보조금제도와 선거 후 선거보전을 해주면서 생기는 중복지원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20대 대선을 앞두고 '선거보조금'으로 각각 224억7000만 원, 194억5000만 원를 받았다. 정의당(31억7000만 원), 국민의당(14억2000만 원), 기본소득당(4000만 원)을 포함해 5개 정당에 총 465억5000만 원이 지급됐다.

여기에 선거비용 보전요건을 충족(유효 투표 총수의 15% 이상)한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다음 달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예정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 비용으로 487억 원, 425억 원을 사용했다고 신고했다. 보전청구의 적법 여부 조사를 거쳐 청구액 대비 일부를 감액하더라도 올해 두 정당이 지급받는 선거비용 총액은 1000억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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