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원 후원' '송영길 생일선물'…2030 여성들의 정치인 '돈쭐'
입력: 2022.03.23 00:00 / 수정: 2022.03.23 00:00

젊은 여성들의 '소액 후원' 세례…"대선 이후 정치적 효능감 크게 느낀 것"

제 20대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 진보 정치인들을 향한 2030세대 젊은 여성들의 돈쭐(돈으로 혼쭐낸다)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남윤호 기자
제 20대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 진보 정치인들을 향한 2030세대 젊은 여성들의 '돈쭐(돈으로 혼쭐낸다)'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남윤호 기자

[더팩트ㅣ국회=송다영 기자] 제 20대 대선 이후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 진보 정치인들을 향한 2030세대 젊은 여성들의 '돈쭐(돈으로 혼쭐낸다)' 후원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서(심상정·이재명)' 혹은 '응원하고 싶어서(친이재명계 민주당 의원들)' 정치인들에게 자신의 지갑을 선뜻 열게 됐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2030세대 여성들이 후원 행위가 지지를 통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고, 집단적 행동으로 정치인들에게 자신들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1일부터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의 지지자들은 '친이재명계'로 분류된 의원들에게 '소액 후원 폭격'을 날리고 있다. 이들은 당초 민주당 의원들 전체의 전화번호를 공유하면서 '검찰·언론개혁을 완수하라' '원내대표 선거에서 박홍근 의원을 뽑아라, 박광온 의원을 뽑지 말라'는 등의 내용을 담아 집단 문자를 보냈다. 이에 이 고문이 정성호 의원을 통해 자제를 호소하자, 이 고문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의원들을 향해 소액 후원으로 지지와 응원 의사를 보내자고 판단을 바꿨다. 지지자들이 후원을 보낸 의원들은 최강욱·조응천·민형배·이재정·한준호·이수진(동작 을)·박주민·김의겸·김남국·정청래·김용민·박홍근·황운하·윤건영·박찬대 의원 등이다. 후원 금액은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지만 응원의 의미를 담아 '1004(천사)원'을 보내자는 추천도 줄을 이었다.

이수진 의원에게 2만 원의 소액 후원을, 또 매달 민주당에 5000원을 후원하고 있다는 IT업계 종사자 이 모(30, 여) 씨는 "소액 후원을 하며 투표 권한을 행사하고 제 나름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연간 세액 공제 최대 금액인 10만 원 선까지 후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지자들의 소액 후원을 받은 한 의원실 관계자는 "정확히 계산해보진 않았지만 최근 2~3일 사이 1000여 건 가까이는 되는 소액 후원을 받았다"며 "예전에는 보통 18원, 18원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후원이 왔었는데 지금은 1004원, 만 원, 2만 원 등씩 소액 후원을 긍정적인 의미의 집단행동으로 해 주시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후원을 보낼 때 보통은 예금주 이름을 본인 이름으로 하곤 하는데, 최근 온 후원들은 예금주 명이 의원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 언론개혁 과제, 원내대표 선출 관련 등 다양한 문구들이 담겨있다"고도 덧붙였다.

왼쪽은 이재명 고문과 송영길 전 당 대표. 오른쪽은 한 누리꾼에게 이 고문이 보낸 SNS 메시지. /국회사진취재단
왼쪽은 이재명 고문과 송영길 전 당 대표. 오른쪽은 한 누리꾼에게 이 고문이 보낸 SNS 메시지. /국회사진취재단
이 고문이 송 전 대표를 잘 지켜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지지자들에게 보낸 것이 화제가 됨과 동시에 이날이 프로필 상 송 전 대표의 생일인 사실이 함께 알려졌다. 이에 2030 여성들을 필두로 일부 지지자들이 송 전 대표의 생일맞이 소액 후원을 보내고 인증 사진을 남겼다. / 트위터 갈무리
이 고문이 '송 전 대표를 잘 지켜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지지자들에게 보낸 것이 화제가 됨과 동시에 이날이 프로필 상 송 전 대표의 생일인 사실이 함께 알려졌다. 이에 2030 여성들을 필두로 일부 지지자들이 송 전 대표의 생일맞이 소액 후원을 보내고 인증 사진을 남겼다. / 트위터 갈무리

한 의원에게는 '지켜주겠다'와 '생일 축하한다'는 의미를 함께 담은 젊은 여성들의 후원이 줄을 이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다. 발단은 이 고문이 한 지지자에게 보낸 SNS 메시지로부터 비롯됐다. 해당 쪽지에는 '송 전 대표를 잘 지켜달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저보다 더 열심히 하신 분이다.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는 이 고문의 전언이 담겨있다.

이와 함께 지난 21일이 송 대표의 '프로필상' 생일인 사실이 함께 알려지며, 2030 여성을 필두로 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송 대표에게 응원의 마음을 담아 생일선물 소액 후원을 보내자'는 움직임이 보였다. 이들은 '이재명이 지켜달라고 한 송영길을 응원하자' '생일 선물은 못 줘도 후원은 가능하다'며 송 전 대표에게 소액 후원을 보내고, 후원 내역을 SNS에 공유했다.

송영길 전 대표 의원실 관계자는 일부 지지자들의 생일맞이 소액 후원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송 전 대표의 생일은 음력 3월 21일이다"라고 해명(?)했다.

사실 대선 이후 여성들의 연대 후원 첫 포탄이 날아온 건 정의당 쪽이었다. 심상정 정의당 당시 대선 후보는 선거가 끝난 지난 10일 지지자들로부터 약 12억 원의 후원금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선화 기자
사실 대선 이후 여성들의 '연대 후원' 첫 포탄이 날아온 건 정의당 쪽이었다. 심상정 정의당 당시 대선 후보는 선거가 끝난 지난 10일 지지자들로부터 약 12억 원의 후원금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선화 기자

이에 앞서 대선 이후 여성들의 '연대 후원' 첫 포탄이 날아온 건 정의당 쪽이었다. 심상정 정의당 당시 대선 후보는 선거가 끝난 지난 10일 지지자들로부터 약 12억 원의 후원금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후원에 주로 동참한 이들은 선거에 심 후보를 지지하지만 표를 주지 못한 젊은 여성들이었다.

심 후보는 해당 사실을 밝히며 "득표율을 넘어서 밤새 정의당에 12억 원의 후원금을 쏟아주신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시민들의 마음에 큰 위로를 받는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의 초박빙 승부 속에서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이 후보로 표심을 돌렸다. 그 결과 심 후보는 역대 최저인 2.37%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진 유권자들이 심 후보에게 후원금으로 계속 응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대선 이후 정의당에 5만 원을, 장혜영 정의당 의원에게 1만 원을 후원했다고 밝힌 회사원 양 모(29, 여) 씨는 "저는 심 후보에게도 투표했으나 심 후보의 지지율을 보니 선거자금 회수가 힘들 것 같아서 소액이지만 응원 후원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주변에 (이재명 당시 후보로) 전략 투표한 여자 친구들도 모두 만 원씩 보냈다고 하더라"며 "소득 공제 액수 10만 원이 넘더라도 거대 양당 체계에서 정의당이 여성·노동·청년·기후위기의 담론을 이어가는 데 힘을 보탤 예정"이라며 향후에도 소액 후원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대선이 끝나고 정의당에 5만 원을, 그리고 권인숙 민주당 의원에게 2만 원을 후원한 대학생 김 모(가명, 20대) 씨는 젠더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는 "심 후보가 그동안 진보 노선을 걸으며 대선에 나와 좋은 정책들로 끝까지 완주해준 것이 고맙고, 그 도전이 마지막이라 아쉬웠다"며 "권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젠더 담당 의원이라 후원했다. 또 검언개혁 과제도 마쳐줬으면 하는 마음도 담았다"며 후원 이유를 밝혔다.

전문가들은 2030세대 여성들이 소액 후원 등의 정치 참여를 통해 정치 효능감을 느끼고 자신의 의사를 정치권에 표현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대표는 "정치인에게 후원금은 중요한 자금적 기반이다 보니, 정치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건 정치인들에게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며 "정치 후원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특히 이번 대선은 2030 여성들이 '내 한 표가 최소의 투표율 차이로 나타났다(0.73%)' '내 선택이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데서 정치적 효능감이 상당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지지자들의 소액 후원 사례들을 두고 최근 2030 여성들을 위주로 이 고문을 향한 '팬덤'이 형성된 것이 계기라고 봤다. 박 평론가는 "20대 여성들의 선거 참여와 정치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고, 그 결과가 민주당을 향한 여러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정치의 팬덤화에 있어서는 경계할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자칫 정당 갈등의 또다른 불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대선 후보 당시 이 고문의 모습. /성남=이새롬 기자
전문가들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정치의 팬덤화'에 있어서는 경계할 부분도 있다고 밝혔다. 자칫 정당 갈등의 또다른 불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대선 후보 당시 이 고문의 모습. /성남=이새롬 기자

다만 정치인의 공공성과 당내 통합 등을 고려했을 때, 지나친 '정치의 팬덤화'는 경계할 부분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권 대표는 "정치는 공적 영역의 일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정치인이 해야 한다"며 "(그런데) 후원을 주고받을 경우 정치인이 (사회 문제 등에 대한) 갈등 조정 과정에서 (후원자 중) 자신의 이해관계가 겹치면 정치인을 향한 지지를 갑자기 철회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땐 정치인의 공공성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라고 밝혔다.

박 평론가는 당내 갈등을 유발하는 지지자들의 집단 행동에 우려를 표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 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을 앞두고 일부 지지자들이 특정 후보 거부 의사를 밝히는 문자 폭탄을 당 의원들에게 보낸 행위들이다.

박 평론가는 "특정 의원을 향한 응원섬 팬덤을 넘어 의원들의 몫인 원내대표 선거에 (개입) 하는 것 자체는 거리를 두는 편이 좋다. 자칫 일부가 만들어낸 '당내 계파' 프레임에 따라 움직여 '당내 갈라치기'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manyzero@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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