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김경수 사면, 인사권 갈등, 文정부 국정 실패 등 거론
16일로 예고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첫 회동이 무산됐다. 양측이 구체적인 무산 배경에 대해 함구한 가운데 정치권에선 여러 추측이 나왔다. /청와대 제공, 이선화 기자 |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16일 첫 회동이 무산됐다. 전날 양측은 "16일 낮 12시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당선인이 배석자 없이 오찬 회동을 갖는다"고 공식 발표했으나, 회동을 4시간 앞두고 갑자기 "실무적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고 번복했다.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이 만나기로 예고한 뒤 일정을 취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재인 정권과 날을 세워온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당선되면서, 정권 이양기 신·구 정권의 '불안한 동거'에 대한 우려가 현실이 되는 분위기다.
◆예고한 文·尹 첫 회동, 4시간 전 전격 취소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16일) 오전 8시 서면 브리핑에서 "오늘 예정됐던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을 실무적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고 밝혔다. 같은 시각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오늘로 예정됐던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은 실무적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서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며 "실무자 차원의 협의는 계속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이 실무협의를 진행한 가운데 양측은 일정을 미루기로 한 배경에 대해선 "합의에 따라 밝히지 못한다"며 함구했다. 정치권에선 양측이 '실무 협의 내용'을 밝히지 않으면서, 무산 배경을 둘러싼 여러 추측이 제기됐다.
우선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 건의가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윤 당선인은 이 전 대통령 사면을 요청하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견지했다"며 문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사면을 요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과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윤석열 당선인 회동 4시간 전인 16일 오전 8시 "실무적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아 일정을 다시 잡기로 했다"며 회동 연기를 발표했다. 청와대 전경. /임영무 기자 |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결정하면서, 이 전 대통령은 제외했다. 이와 관련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24일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국민 공감대, 사법 정의, 법치주의, 국민 화합, 갈등 치유 등의 관점에서 고려하신 것으로 안다"며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전 대통령의 사안과 박 전 대통령의 사안은 내용이 다르다"며 "국민적 정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겠냐는 생각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통령 사면을 두고도 시민단체, 진보 진영에선 문 대통령이 스스로 세운 중대 부패범죄에 대한 사면권 제한 원칙을 깼다는 비판이 많았다. 당시 '박 전 대통령과 케이스가 다르다'며 사면을 하지 않았던 이 전 대통령까지 사면할 경우 또다시 원칙을 허물고 국민에게 한 약속을 뒤집는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한 윤 당선인은 2018년 이 전 대통령 기소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수사를 진두지휘한 당사자로, 국민의힘 안팎의 이 전 대통령 사면 요구가 높다고 해도 대통령이 된 후 직접 사면을 단행하면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쪽에선 윤 당선인이 짊어져야 할 정치적 부담을 문 대통령이 대신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나아가 윤 당선인 측에서 이 전 대통령과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패키지 사면론'까지 거론하면서, 대통령 고유권한인 사면권을 정치적 거래의 대상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을 두고도 청와대는 불쾌한 기색이다.
다만 장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MB 사면 요청이 회동에 걸림돌이 됐나'는 질문에 "사면 요청의 권한은 대통령이 갖고 있는 것"이라며 "우리가 답을 들어야 (회동이 성사된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그런 거로 지금 충돌하고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 사면이 회동 연기의 직접적 배경은 아니라는 설명이지만, 협상 과정에서 '충돌'이 있었음은 시인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 회동이 무산된 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집무실로 정상 출근했다. 윤 당선인이 이날 인근 식당에서 안철수 인수위원장 등 인수위 관계자들과 점심식사를 마친 후 주변을 산책하며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
◆'국민 통합' 한목소리 이후 터져 나오는 갈등
윤 당선인 측에서 임기 말 문 대통령의 공공기관 인사에 제동을 거는 목소리가 나온 것도 회동 무산의 배경으로 꼽힌다. 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문재인 정부 하에서 꼭 필요한 인사일 경우에는 함께 협의를 진행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업무 인수인계를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5월 9일까지는 문재인 정부 임기이고, 임기 내에 주어진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아가 권영세 인수위 부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인사와 관련해 "소위 정치적으로 임명된 직원들 같은 경우는 스스로 잘 거취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는 있다고 본다"고 했고, 국민의힘 권성동·김기현 의원은 김오수 검찰총장을 겨냥해 "자신의 거취를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민주당 쪽에선 "윤 당선인 측이 점령군 행세를 한다"며 질타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 인사권에 대한 윤 당선인 측의 지나친 개입 시도가 의제 협상에 걸림돌이 됐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외에 당면한 주요 현안인 코로나19 대응, 부동산 문제, 북한의 잇단 무력시위 등에 대한 문재인 정부 대처를 윤 당선인이 '실패'로 규정해 의제 설정 전반에 난항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모두 대선 직후 정치권의 최대 과제로 '국민 통합'을 제시했지만, 일주일 만에 신·구 정권이 갈등을 빚는 듯한 모양새가 노출되면서 정권 이양기 양측의 '불편한 동거'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편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과 당선인 간의 만남은 대선 이후 2일(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에서 9일 사이에 이뤄졌다.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선 후 3일 만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후 4일 만에, 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9일 만에 회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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