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임기말 '분노'의 대상 尹당선인과 '불편한 동거'
입력: 2022.03.11 05:00 / 수정: 2022.03.11 05:00

文, '축하 전화' 및 '새 정부 지원' 약속…尹 "가까운 시일 내 만나자"

문재인 대통령은 남은 두 달간의 임기 동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불편한 관계 속 정권 이양 작업을 할 것으로 보인다. /더팩트 DB
문재인 대통령은 남은 두 달간의 임기 동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불편한 관계 속 정권 이양 작업을 할 것으로 보인다. /더팩트 DB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임기 말까지 40%대 지지율을 기록하며 민주화 이후 첫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없는 대통령에 바짝 다가갔던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길에 변수가 생겼다. 임기 초반 적폐청산과 검찰 개혁의 적임자로 중용(重用)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제1야당의 대선 후보로 출마해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검찰에서 승승장구한 윤석열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현 정부의 실정과 적폐를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특히 한 언론 인터뷰에선 "더불어민주당 정권이 검찰을 이용해서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며 집권 시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라고 예고하기도 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윤 후보가)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재직 때에는 이 정부의 적폐를 있는 데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없는 적폐를 기획사정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것인가? 대답해야 한다"며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하며 사과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대선 공식 선거운동 직전 현 대통령이 제1야당 대선 후보를 향해 '분노'를 표하면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윤 당선인은 문 대통령의 사과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불편하고, 어색한 관계가 지속되던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을 접견 하고 있다. 유 비서실장은 이날 윤 당선인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 난을 전달했다. /남윤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을 접견 하고 있다. 유 비서실장은 이날 윤 당선인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 난을 전달했다. /남윤호 기자

문 대통령은 관례에 따라 10일 오전 9시 10분 윤 당선인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약 5분가량 진행된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힘든 선거를 치르느라 수고 많으셨다"며 "선거 과정의 갈등과 분열을 씻어내고 국민이 하나가 되도록 통합을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당선인은 "많이 가르쳐 달라"며 "빠른 시간 내에 회동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문 대통령은 "정치적인 입장이나 정책이 달라도 정부는 연속되는 부분이 많고, 대통령 사이의 인수인계 사항도 있으니 조만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며 "새 정부가 공백 없이 국정운영을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인수위 구성과 취임 준비로 더욱 바빠질 텐데 잠시라도 휴식을 취하고 건강관리를 잘하기 바란다"며 통화를 마쳤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윤 당선인의 후보 시절 전 정권 적폐 수사 발언에 문 대통령이 사과를 요구했는데, 오늘 통화에서 이와 관련한 대화가 있었나'라는 질문에 "그와 관련된 언급은 없었다"고 했다. 취임 초에는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신뢰했다가, 정치적 경쟁자가 되어 돌아온 미래 권력에 불편한 마음은 드러내지 않고 덕담만 건넨 것이다.

청와대의 불편한 기류는 대변인 브리핑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 통화 관련 브리핑을 하면서 "당선되신 분과 지지자에 축하 인사 드리고, 낙선하신 분과 그 지지자들께…"라고 말하는 도중에 울음을 터뜨렸다. 이로 인해 5분가량 브리핑이 중단됐다가 재개됐는데, 정권이 교체되는 것에 대한 청와대의 분위기가 그만큼 심각하고 안타까워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눈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만남은 이르면 다음 주 중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과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날 윤 당선인을 찾아 '대통령 문재인'이라고 적힌 축하 난을 전달한 자리에서 "(윤 당선인이) 대통령에 당선돼 바쁘니까 편한 날을 정해주면 문 대통령께서 만나 뵙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에 윤 당선인은 "아침에 문 대통령이 전화를 줬는데,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찾아뵙겠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이 대면한 자리에서 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 언급한 현 정부 실정에 대한 변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경우 차기 정권에 업무를 이양해야 하는 문 대통령은 당선인의 요청을 거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10일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통화 관련 브리핑을 하던 중 울먹이고 있다. /뉴시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10일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통화 관련 브리핑을 하던 중 울먹이고 있다. /뉴시스

권력 이양 작업에 집중해야 하는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당선인의 요청을 거부하기 힘들 전망이다.

당장 당면한 최대 현안인 코로나 방역 조치가 윤 당선인 측의 의중을 반영해 바뀔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방역 조치가 인수위와 논의될 사안인가'라는 질문에 "추후 논의해 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윤 당선인은 이날 당선 인사 기자회견에서 '후보 시절 비과학적인 방역지침을 폐지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 로드맵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지금부터 코로나로 인한 자영업자 소상공인의 경제적 손실보상과 긴급구제를 포함해서 방역과 확진자들에 대한 치료 문제를 인수위에서 바로 검토할 것"이라며 "코로나와 관련된 문제, 보건, 의료, 경제, 방역을 종합적으로 다룰 인수위 내 조직을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임기 내내 추진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도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 대통령은 그간 북한이 민감해하는 인권 문제에 침묵했고, 계속된 미사일 도발에는 '유감'만 표하면서 대화로 나올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윤 당선인은 이날 "북한의 불법적이고 불합리한 행동에 대해서는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하되 남북 대화의 문은 언제든 열어둘 것"이라며 북한에 대해 다른 접근을 할 것을 예고했다.

나아가 윤 당선인 측이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현 정부의 지난 5년 국정 성과 대부분을 부정하려 할 경우에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이 불편한 관계를 넘어 공개적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역대급 임기 말 지지율 등을 앞세워 임기 말에도 별다른 견제를 받지 않고 뜻대로 국정을 펼쳐왔던 문 대통령에게 남은 2개월은 앞선 임기와 전혀 다른 시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sense83@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 네이버 메인 더팩트 구독하고 [특종보자▶]
- 그곳이 알고싶냐? [영상보기▶]
AD
인기기사
실시간 TOP10
정치
경제
사회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