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1.5℃②] '선거 찬밥' 기후 공약, 해외선 당락 '좌우'
입력: 2022.03.03 00:00 / 수정: 2022.03.03 22:07

美·유럽 강타한 '기후 후폭풍'...국내 체감도 시간문제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는 기후 위기 관련 정책이 주목받는 것은 물론, 득표로 이어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에서 기후 위기 공약이 국민들로부터 주목받는 이유는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재해가 매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독일 선거 당시 녹색당 아날레나 베르보크 후보의 뒤셀도르프 유세 당시. /아날레나 베르보크 페이스북 갈무리
미국, 유럽 등 해외에서는 기후 위기 관련 정책이 주목받는 것은 물론, 득표로 이어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처럼 미국과 유럽에서 기후 위기 공약이 국민들로부터 주목받는 이유는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재해가 매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독일 선거 당시 녹색당 아날레나 베르보크 후보의 뒤셀도르프 유세 당시. /아날레나 베르보크 페이스북 갈무리

'2050년 3월 9일 오후 3시. 비는 계속해서 내리지만, 오존층 파괴로 빗물을 마실 수조차 없다. 산소도 희박해졌다. 푸른 하늘, 푸른 바다, 숲, 맑은 공기는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 더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만약 30년 전 기후 위기에 우리 모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면…. 너무 안일했고, 늦었다.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 실천하지 않으면 미래세대가 겪을 현실이다. 2022년은 2050 탄소중립의 첫발을 뗀 해다. 문재인 정부에서 선언한 2050 탄소중립은 이제 차기 정부 몫이다. 탄소중립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차기 대통령의 기후 위기 철학이 요구된다. <더팩트>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아 현재 기후 위기와 미래, 후보별 공약과 미래세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는 [대선 1.5℃]를 기획, 총 7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더팩트 | 김정수, 곽현서 기자] "기후에 국경은 없다. 그래서 기후 위기는 우리 모두의 위기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다. 일반 대중부터 국제사회까지 예외는 없다. 다만 공허한 외침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대응을 위한 실질적 행동으로는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를 더 키웠다.

과거에는 그랬다. 그러나 오늘날은 다르다. 기후변화에 대한 변화된 인식은 이전보다 훨씬 더 선명해졌다. 해외에서는 기후 위기가 선거 주요 의제로 떠오를 뿐 아니라 당락을 결정짓기 시작했다. 대선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 하는 국내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이 갈라파고스의 섬처럼 세계적 흐름에서 동떨어져 있는 것과 다르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급속도로 형성되고 있다.

과연 어느 정도일까.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해외 사례와 국내 실정을 비교, 점검한다.

◆선거 최대 쟁점은 '기후 위기'...향배 갈랐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연대는 서구 사회에서 두드러진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환경 보호를 정체성으로 하는 '녹색당'이 선거 전면에 등장한 지 오래다. 1970년대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결성된 녹색당은 1980년대부터 선거에 출마하기 시작했다. 1983년 당시 서독 의회에서 녹색당 의원 27명이 당선됐고, 1998년 독일 총선에서 녹색당은 6.7%의 득표율을 기록, 사회민주당과 '적록 연정'을 구성해 첫 집권세력이 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프랑스, 이탈리아, 핀란드, 벨기에 등에서 녹색당이 정당 연합 형태로 집권당에 진입했다. 미국에서는 2000년 대선에서 랠프 네이더 녹색당 후보가 출마해 주목을 받았다. 리트비아는 2004년 녹색당 출신 총리를 배출하기도 했다. 최근 치러진 해외 선거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기후가 언급됐다. 다만 존재감은 이전과 달랐다. 기후 위기가 주요 의제로 부상한 데다 선거 결과를 엿볼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은 취임 첫 공식 행보로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을 선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존 케리 전 미 국무부 장관을 기후 특사로 임명해 기후변화 담당 공직자 최초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참석하게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은 취임 첫 공식 행보로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을 선택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존 케리 전 미 국무부 장관을 기후 특사로 임명해 기후변화 담당 공직자 최초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참석하게 했다.

2021년 1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치열한 선거전 끝에 승리하며 대통령에 취임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첫 공식 행보는 파리기후협약 재가입. 그의 선거 공약이기도 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파리기후협약 재가입과 '넷 제로(Net Zero)'를 약속한 바 있다. 넷 제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 즉 온실가스 순배출을 '0'으로 낮추겠다는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은 탄소중립을 목표로 10년간 1906조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화석연료 시설의 강력한 규제, 청정에너지의 적극적 확대가 골자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국가 안보 문제로 규정하며 존 케리 전 미 국무부 장관을 '기후 특사'로 임명했다. 케리 전 장관은 기후변화 담당 공직자 최초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참석하게 됐다.

노르웨이 총선 최대 쟁점은 기후 위기 대응과 석유 채굴 즉시 중단이었다. 중도좌파 연합은 노르웨이의 자원 부국 위상이 기후변화로 인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피력, 8년 만에 보수당을 꺾었다. 노르웨이는 기후 위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로 꼽힌다.
노르웨이 총선 최대 쟁점은 기후 위기 대응과 석유 채굴 즉시 중단이었다. 중도좌파 연합은 노르웨이의 자원 부국 위상이 기후변화로 인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피력, 8년 만에 보수당을 꺾었다. 노르웨이는 기후 위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로 꼽힌다.

2021년 9월 13일. 노르웨이 총선에서 8년 만에 보수당이 패배하고 중도좌파 연합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선거 최대 쟁점 중 하나는 '기후 위기 대응'과 '석유 채굴 즉시 중단'이었다.

노르웨이는 석유, 천연가스 등 풍부한 화석 연료를 보유한 자원 부국으로 이를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았다. 다만 당시는 유럽 내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발생했던 터라 유권자들은 미래에 대한 실질적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노르웨이는 기후 위기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로 꼽힌다.

중도좌파 연합은 노르웨이의 자원 부국 위상이 기후변화로 인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이들은 풍력발전, 천연가스로 대체에너지를 생산하는 '청색 수소'와 이산화탄소 포집·저장 등 기후변화 대응과 연동된 산업정책을 내세웠다. 결국 중도좌파 연합은 기후 공약에 힘입어 전체 169석 가운데 과반인 100석을 차지했다.

녹색당은 제20대 독일 연방 의원 총선에서 14.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사상 첫 제3당 지위 확보이자 역대 최고 득표율이다. 당시 독일 유권자들은 선거 주요 의제로 기후변화(47%)를 1위로 꼽았다.
녹색당은 제20대 독일 연방 의원 총선에서 14.8%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사상 첫 제3당 지위 확보이자 역대 최고 득표율이다. 당시 독일 유권자들은 선거 주요 의제로 '기후변화(47%)'를 1위로 꼽았다.

2021년 9월 26일. 제20대 독일 연방 의원 총선 결과 녹색당이 14.8%의 득표율로 3위를 차지하며 사상 처음으로 제3당의 지위를 확보했다. 녹색당 창당 이후 역대 최고 득표율이기도 했다.

녹색당이 선전할 수 있었던 배경은 기후변화에 대한 유권자들의 변화된 인식과 대표성을 부여할 수 있는 정치구조였다. 당시 독일 유권자들은 선거 주요 의제로 '기후변화(47%)'를 1위로 꼽은 바 있다. 녹색당은 친환경을 기치로 내건 정당으로 △2030 탈석탄 및 이산화탄소 배출 70% 감축 △기후보호 협약과 원자력 폐지 헌법 명시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표심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 환경단체 행동가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활성화된 유럽은 사표심리 방지를 통해 개인의 가치관을 그대로 투표에 반영할 수 있는 정치적 구조가 마련되어 있다"며 "한국은 사실상 양당체제로 '환경' 의제가 대두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3대 재난 피해' 모두 미국·유럽, 위기의식 고조

기후 위기가 미국과 유럽 선거 결과를 좌우하게 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발생한 자연재해가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위기를 피부로 느낀 유권자들의 공감대와 연대가 끈끈해지면서 기후 위기가 선거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는 설명이다. 영국 자선단체 크리스천 에이드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1년 기후재난 손실액'에 따르면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 피해 규모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8월 미국에서는 허리케인 '아이다'로 인해 650억 달러의 재산 피해와 1만명의 이재민, 95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또한 송전선과 전력망 등이 파괴되면서 100만명이 전력을 공급받지 못했다. 허리케인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에 따라 위력이 높아지는 자연현상이다.

두 번째로 규모가 컸던 기후재난은 지난해 7월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에서 발생한 대홍수였다. 430억 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고 240명이 사망했다. 특히 독일에서는 장애인 요양 시설에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12명이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충격이 컸다. 세 번째는 미국 텍사스에서 발생한 한파였다. 텍사스는 미국 내 따뜻한 지역에 속하지만, 지난해 2월 갑작스러운 한파로 230억달러의 재산 피해와 20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난 1월 25개 기후·환경단체로 구성된 국내 최대 탈석탄 연대인 석탄을 넘어서가 환경운동연합 회화나무 마당에서 주요 대선 후보들의 탈석탄 정책을 비교하는 석탄 치우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당시 이재명, 윤석열, 정의당 심상정, 안철수(오른쪽부터) 대선 후보의 탈을 쓴 활동가들이 포즈를 취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지난 1월 25개 기후·환경단체로 구성된 국내 최대 탈석탄 연대인 '석탄을 넘어서'가 환경운동연합 회화나무 마당에서 주요 대선 후보들의 탈석탄 정책을 비교하는 '석탄 치우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당시 이재명, 윤석열, 정의당 심상정, 안철수(오른쪽부터) 대선 후보의 탈을 쓴 활동가들이 포즈를 취하는 모습. /이새롬 기자

◆한국 기후위기 수준은 계절 변화 정도...'2030 NDC' 수행 리더 필요

우리 국민이 체감하는 기후 위기는 해외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 사계절이 사라지면서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는 정도로 받아들인다는 지적이다. 그만큼 해외 선거와 달리 국내 선거에서는 기후 의제가 주요 의제로 설정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한국의 미래가 기후 위기 대응을 얼마나 실천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는 점은 점차 선명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3년 탄소국경조정제를 도입,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탄소국경세를 징수한다고 밝힌 바 있다. 탄소국경세에 따르면 탄소 규제가 느슨하거나 탄소배출이 많은 국가의 수출품에 세금을 매기게 된다. 탄소배출 감소에 소극적인 국가에는 페널티를 주면서 기후 위기에 실질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미국에서도 탄소국경세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세와 비슷한 국경탄소조정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의회에서도 2024년부터 화석연료 등에 탄소국경세를 우선 부과하자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2월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상향 조정안을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한 바 있다. 2030 NDC 달성을 위한 청사진은 이번 대선에서 선출될 대통령이 그리게 된다. /국회사진취재단
우리 정부는 지난해 12월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상향 조정안을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한 바 있다. '2030 NDC' 달성을 위한 청사진은 이번 대선에서 선출될 대통령이 그리게 된다. /국회사진취재단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간과하기 어려운 조치다. 구체적인 대비에 나서지 않는 이상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앞으로의 선거에서는 기후 위기 의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글로벌 히팅(Global heating)'이라는 용어를 새롭게 등재했다. '지구 온난화'를 뜻하는 '글로벌 워밍(Global warming)'보다 더 강력한 단어다. 지구가 녹아내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새로운 단어로 강조한 셈이다. 기후 위기는 단순한 '위기'를 넘어 '파국'에 치닫고 있다는 점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2월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상향 조정안을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에 제출한 바 있다. '2030 NDC'는 기후 위기에 따른 지구 온난화를 제어하기 위한 '2050 탄소중립'의 선행 조치다.

'2030 NDC' 달성을 위한 청사진은 이번 대선에서 선출될 대통령이 그리게 된다. 차기 대통령 임기는 2027년 5월 9일까지다. 앞으로 다가올 기후 위기의 후폭풍들이 국가 규모로 확대되는 만큼 문제의식을 보유한 후보들에게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관측이다.

기후 위기 사단법인 기후솔루션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 산업이 다 같이 달려들어야 하는데 2030년이라는 기준이 중요하다"라며 "차기 대통령은 2030년까지 탄소중립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는 만큼 이번 대선은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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