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분명 '녹취록'에 술렁이는 정치권
대선을 2주 앞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측이 '대장동 녹취록' 공방을 벌이고 있다. /남윤호·이선화 기자 |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대선판의 흐름이 결국 돌고 돌아 '대장동'으로 모였다. 대선 레이스가 막바지에 이르자 여야 간 '대장동' 공방이 격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새로 공개된 대장동 핵심인사들의 녹취록을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부친 자택 거래 의혹 등과 연계해 '윤석열 게이트'라고 반격하고 있고, 국민의힘 측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그동안 언급해온 각종 해명의 진위에 초점을 맞춰 '몸통·거짓말' 프레임 확산에 주력하면서 정면충돌했다.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 민주당의 역공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 후보는 23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사실 이 사건은 윤석열 게이트"라며 "윤석열이 몸통이라고 저는 100% 확신한다"고 강한 수위의 발언을 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전날(22일) 회의 공개석상에서 "대장동을 앞으로는 '윤석열 게이트'라고 불러야 될 것 같다"고 경고했지만, 이 후보 입에서 '윤석열 게이트'라고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후보는 23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윤석열 게이트'라고 규정했다. 지난 21일 중앙선관위 주관 첫 토론에서 '화천대유 관계자 녹취록' 패널을 들고 있는 이 후보. /SBS 유튜브 갈무리 |
민주당의 반격이 이처럼 본격화한 것은 최근 대장동 핵심 인사들의 새로운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되면서다.
앞서 지난달 29일 친여성향 유튜브 '열린공감TV'는 이 후보는 김만배 씨(화천대유 대주주)와 정영학 회계사(천화동인 5호 소유주) 간 녹취록을 공개한 바 있다. 해당 녹취록에는 "윤석열은 영장 들어오면 죽어", "윤석열은 원래 죄가 많은 사람이긴 해", "내가 가진 카드면 윤석열은 죽어" 등의 발언이 담겼다.
이때만 해도 이 후보는 '네거티브전'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 막바지인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 돌입하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이 후보는 지난 18일 호남 유세 도중 대장동 의혹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내가 가진 카드면 윤석열은 죽어"라는 녹취 발언을 지지자들에게 "한번 따라해보자"라며 연호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급기야 지난 21일 중앙선관위 주최 첫 TV토론에서는 관련 녹취록 내용을 적은 패널을 꺼내들면서 날을 세웠고, 마침내 공개적으로 '윤석열 게이트'라고 정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민주당은 또 언론에 보도된 추가 녹취록을 내세워 윤 후보에게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부친 자택 거래 의혹들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21일 JTBC는 윤 후보가 2011년 대검 중수2과장으로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하면서 대출 브로커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남욱 변호사(천화동인 4호 소유주) 검찰 진술을 보도했다. 또 오마이뉴스는 지난 22일 김만배 씨가 누나 김명옥 씨를 통해 주택 매입을 사전에 모의하는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공개했다. 하지만 대화에서 언급한 주택이 윤 후보 부친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를 두고 우상호 민주당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23일 "윤 후보 측 누군가의 부탁으로 이 집을 구입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윤 후보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언론 보도를 근거로 '대장동 녹취록'에 등장하는 '그분'이 조재연 대법관이라고 단정하고, 야권에 사과를 촉구하기도 했다. 민주당 소속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은 "마침내 '대장동 그분'의 정체가 밝혀졌다"며 "대장동 개발비리는 특수부 검사, 사법부 고위관료들이 불법 콜라보를 이룬 사법게이트"라고 규정했다.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관련 녹취록 속에 등장하는 '그분'으로 지목된 조재연 대법관은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면 반박했다. /남용희 기자 |
국민의힘은 '부산저축은행 사건' 등으로 초점을 흐리려는 '물타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장동 사업의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이 후보인 만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 후보가 임명한 유동규 성남도시개발공사 전 기획본부장이 구속됐고, 유 전 본부장의 압수수색 전 이 후보 최측근인 정진상 선대위 비서실 부실장과 김용 선대위 조직부본부장이 수차례 통화한 사실 등을 들며 '몸통은 이재명'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이 후보의 그간 해명과 어긋나는 대목도 부각하고 있다. 대장동 사건으로 수사를 받던 도중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의 유가족을 통해 고인이 생전 이 후보와 친분 있는 사이였음을 강조했다. 유가족이 전달한 영상에서 김 전 처장은 2015년 1월 호주·뉴질랜드 출장 중 딸에게 "오늘 시장님(이 후보)하고 본부장님하고 골프까지 쳤다?"고 말한다. 유족이 전달한 사진에는 이 후보와 고인이 손을 잡는 등 가까이 있는 모습도 다수 포착됐다. 앞서 이 후보는 김 전 처장의 극단 선택 후 언론에 "시장을 할 때 이 사람의 존재를 몰랐다","저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사람"이라며 친분 관계를 부인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권성동·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죄의 설계자인 몸통은 끝까지 고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진영 간 팽팽한 줄다리기는 새로운 녹취록이 등장하고 이를 해명하는 과정에서 실시간으로 요동치고 있다.
'대장동 그분'으로 지목된 조 대법관은 이날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만배 씨뿐 아니라 대장동 사건 관련돼 있다는 그 어느 누구와도 일면식, 통화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또 '김만배-정영학' 통화 녹취록에서 김 씨가 '이재명 게이트'라고 언급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대장동과 관련돼서 5500억 벌었다'는 허위사실을 공표했다고 제가 기소당해 재판 받은 얘기를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이 후보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인 강훈식 의원은 '이재명 게이트' 표현을 두고 "이 후보가 입구에서 지킨다는 의미의 게이트(문·門)인 것 같다"고 해석하면서 '궤변'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진위가 불분명한 녹취록을 앞세워 여야가 아전인수식 해석을 이어간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다만 판세를 흔들 단일화 등 대형 변수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대장동 녹취록 공방은 투표일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가 녹취록 때문에 과도하게 공격당한 면이 있었다. 녹취록이 구속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수개월 동안 린치에 가깝게 당했다. 이번에 (윤 후보 관련) 녹취록이 나오니 저쪽도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다"며 "공식 선거전이 개시됐고, 보름 남은 상황에서 전면전은 이미 벌어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