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공약 등 전략적 개사로 후보 이미지 구축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대통령선거 당시 선거송으로 가수 홍진영의 '엄지척'을 사용했다. '엄지척'은 기호 1번을 연상케 하고, 신나고 경쾌한 멜로디가 문 대통령의 '느리다'는 이미지를 희석시켜줬다는 긍정적인 평을 받는다. /국회사진취재단 |
[더팩트ㅣ국회=곽현서 기자]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다. 5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철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선거송'이다. 익숙한 노래, 흥겨운 멜로디를 따라부르다 보면 원곡과 교묘하게 바꾼 가사들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는 선거송은 말 한번 섞어본 적 없는 후보자와 유권자의 거리감을 좁혀주고 유대감을 만들어준다. 특히, 딱딱한 공약을 쉽게 전달하거나 후보자의 이미지를 각인시켜주는 등 최고의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선거판에선 '잘 만든 선거송 하나 열 공약 안 부럽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선거송에서 빠질 수 없는 단골 곡들이 있다. 지난 2005년 트로트 가수 박상철이 발표한 '무조건'은 선거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은 곡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짜라짜라짠짜짜 / 무조건 무조건이야 / 내가 필요할 때 나를 불러줘 / 언제든지 달려갈게'라는 노랫말은 정치인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2016년 총선에는 당시 신드롬을 일으켰던 엠넷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시즌 1의 주제곡 '픽 미(Pick Me)'가 인기를 큰 누렸다. "픽미 픽미 픽미 업" 등 입에 척척 붙는 가사와 중독성이 인기 요인이었다. 여기에 자신을 뽑아달라는 메시지는 선거송으로 딱 맞았다.
이 외에도 장윤정의 '어머나'. 박현빈의 '샤방샤방', 김수희의 '남행열차'가 선거송으로 많은 사랑받아 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선거송' 3대 요소로 '3S(Simple·Smile·Style)'를 강조했다. 최 원장은 "선거송은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도록 간단하고, 재밌어야 하고 후보와 잘 어울리도록 각색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이 대중의 귀에만 꽂힌다고 좋은 선거송은 아니다. 후보가 내세우고자 하는 메시지와 부합해야 한다. 이런 의미로 최 원장은 역대 대선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선거송을 지난 1997년 15대 대선,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DJ와 춤을(원곡 : DJ DOC의 DOC와 춤을)'로 꼽았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고령, 민주 투사 등 고지식하고 투쟁적인 이미지가 강했지만 '알부남(알고 나면 부드러운 남자)' 전략과 함께 텔레비전 정치광고에서 노래 포인트인 관광버스 춤을 추는 파격적인 연출로 젊은 층이 가깝게 느끼는 계기가 됐다"고 호평했다. 후보자의 단점을 선거송으로 보완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지난 19대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선거송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선거송으로 홍진영의 '엄지척'을 선거송으로 사용했다. 평소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 덕에 '느리고 답답하다'는 지적을 종종 받아왔지만 경쾌하고 신나는 '엄지척'의 리듬이 후보자의 이미지를 개선해줬다는 평가가 있다.
또, 엄지척이 의미하는 '기호 1번'도 의도된 전략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기호 1번이었다.
당시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트와이스의 '치어업'을 선거송으로 채택했다. 그는 노래의 킬링파트인 샤샤샤(Shy Shy Shy)를 '444'로 개사했다. /국회사진취재단 |
당시 유승민 바른정당 대선 후보 역시 자신의 선거송에 번호를 삽입했다. 유 전 의원의 대표 선거송은 트와이스의 'CHEER UP'이었다. 제3지대, '중도·합리' 보수를 외쳤던 만큼 20~30대를 공략한 선곡이다. 당시 기호 4번을 배정받은 유 전 의원은 'CHEER UP'의 킬링파트 '샤샤샤(Shy Shy Shy)'를 '444'로 개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따라 불렀던 부분인 만큼, 사람들의 머릿속에 강하게 남았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과감한 개혁, 적폐 청산'등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광화문 촛불집회 대표곡이자 세월호 추모곡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선택했다. 곡 제목부터 그의 이미지를 대변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고 신해철 씨의 '그대에게'를 선택했다. 안 후보는 당시 '신해철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입법에 일조한 바 있다. 특히 의사 출신으로서 자신의 전문성과 신뢰성을 구축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선거판 최대의 '히든카드'라 불리는 선거송을 만들기 위해선 원작자의 허락은 받은 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일정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원작자가 저작권료를 요구할 경우 따로 지급해야 한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홍보팀은 "대통령 후보자용 선거로고송 사용료는 한 곡당 작사, 작곡 200만 원이고, 100% 협회가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사용 기간은 선거운동 기간 선거일 D-15~D-1로 한정되어 있다.
만약 원곡자 허락 없이 임의로 곡을 사용했을 경우에는 저작권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선거송은 유권자와 후보자의 거리감을 좁혀주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등 막대한 홍보 효과를 가진다. 이에 정치권에선 '잘 만든 선거송 열 정책 안부럽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
원작자와 한음저협의 허가를 받았다면 이후 특별한 절차는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홍보팀 관계자는 "선관위에 선거송 등록 관련 등의 절차는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고 개별적으로 저작권협회 쪽에 접촉하면 된다"고 했다.
다만, 개사하는 과정에서 상대 후보자에 대한 비방이나 허위사실 등을 기재했을 경우 선거법 위반 사유가 될 수 있다.
6번의 선거를 경험했다는 국회 의원실 보좌진은 '선거송' 제작에 있어 가장 많이 고려하는 건 '비용'이라고 전했다. 보좌진은 "선거마다 정해진 선거비용이 있기 때문에 많은 곡을 채택하기보다는 쉽게 따라부르고 흥겨운 리듬이 기준이 된다"며 "어렵고 가사가 많은 케이팝보다는 개사가 쉽고 대중적인 '트로트' 곡을 고르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실제 선거송의 제작은 선거 전용 대행사 혹은 업체에서 녹음, 저작권 관리 등을 한꺼번에 관리해준다"고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번 대선에서 캐스팅보트인 2030의 표심이 매우 중요하다"며 "미디어 세대인 그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 선거송을 잘 만든다면 '여가부 폐지'등 어떠한 공약보다 큰 파급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