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대선 블루', 치료해줄 사람 없나요?
입력: 2022.02.11 00:00 / 수정: 2022.02.11 00:00

각종 의혹 넘쳐나는 유력 후보 부부…깊어지는 유권자 고민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유권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일 투표소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손 소독 후 일회용 장갑을 착용하고 있는 유권자. /이동률 기자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유권자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일 투표소에서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손 소독 후 일회용 장갑을 착용하고 있는 유권자. /이동률 기자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가슴이 답답하다.

-국가의 미래가 진심으로 걱정된다.

-다가오는 3월 9일이 마냥 즐겁지 않다.

-TV 화면에 정치인 얼굴이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린다.

-'정치'라는 말만 나와도 머리가 지끈해지고 '짜증 난다'는 말을 하게 된다.

-지인과 '이번에 누구 뽑을 거야?'라고 이야기 나눌 때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온다.

최근 하나라도 이런 증상을 느낀다면 '대선 블루(blue·우울감)'를 의심해보자.

우리나라 전역에 신종 감염증이 퍼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의도에서 발생한 이후 전국으로 확산한 일종의 우울감(증)이다. 여타의 바이러스 감염증과 달리 정치권 소식을 통해 서서히 전염된다. 20대 대선에 관심을 둘수록 증상이 심각해진다. '정치 희망' 항체가 있다면 감염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감염되면 잠복기 없이 일상생활에서 무력감, 상실감을 자주 느끼게 된다. 현재로선 완치할 수 있는 치료제가 없다. 국민을 2년 동안 못살게 굴었던 코로나19 대유행보다 두려운 존재다. 대선일이 다가올수록 확진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야는 서로를 헐뜯으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정책과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온다. 1월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2022년 소상공인연합회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는 이 후보(오른쪽)와 윤 후보. /국회사진취재단
여야는 서로를 헐뜯으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정책과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온다. 1월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2022년 소상공인연합회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박수치고 있는 이 후보(오른쪽)와 윤 후보. /국회사진취재단

알음알음 전파되던 '대선 블루'가 최근 대유행 사태 위기에 직면했다. 여야 유력 대선 후보는 물론 후보 배우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대국민 사과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후보 부부가 쌍으로 사과한 셈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자신의 '대장동 의혹' '형수 쌍욕' '장남 불법 도박 의혹'에 대해, 아내인 김혜경 씨는 공무원 심부름 지시 의혹 및 법인카드 사적 유용 논란 등으로 고개를 숙였다. 눈물도 수차례 흘렸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검찰 고발사주·부산 저축은행 부실수사 의혹 등으로 공격을 받고 있고, 그의 아내 김건희 씨는 경력 및 학력 위조·주가조작 의혹 등에 휩싸이면서 사과했다.

이들의 사과를 두고 여야는 기자회견 방식과 사과 내용, 시점을 비교하며 서로 '우리 후보, 배우자 사과가 더 낫다'고 설전을 했다. 하지만 멀찍이 지켜본 국민 입장에선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다. 여야는 서로가 세부적인 사실관계가 빠져 있는 '두루뭉술한' 사과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나마나한 사과'라고들 혹평했다. 그런데도 각자 사과한 이유는 무엇인가.

연인이 다투면 원인을 제공한 이가 "잘못했어"라고 말하고 본다. 상대가 "뭘 잘못했는데?"라고 매섭게 쏘아붙일 것을 알면서도 일단 고개를 숙인다.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애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의 '사과'는 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연애는 마음이 안 맞으면 이별할 수 있지만, 유권자와 헤어지면 정치 생명이 끝난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공식 선거운동 기간 유세 등판을 위해 '무늬만 사과'로 면죄부를 얻으려는 것 아닌가 싶다.

이번 '대선 블루'는 정치권의 어물쩍 넘기려는 해명에, 내로남불 태도에 감염될 수도 있다. 하지만 주 원인은 따로 있다.

공무원을 통해 약을 대리 처방받고, 자택 냉장고·옷장 정리는 물론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이 있는 인물. 그리고 주가조작과 경력 및 학력을 위조했다고 의심받는 사람. 이들 중 한 명이 이 추세대로라면 다음 달 영부인이 될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점에서 유권자는 허탈감을 느낀다. 두 유력 대통령 후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예능 프로그램에선 "지구상에 A와 B만 있다. 누구와 살 건가"하는 짓궂은 질문이 단골로 나온다. 질문을 들은 이는 억지로 한 명을 꼽지만, "그냥 혼자 살겠다"며 넘기는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대선은 향후 5년 국정운영 방향타를 쥘 지도자를 뽑는 선거다. '나 몰라라'하며 기권표를 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 일상생활에 어떻게든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기에 유권자는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탄핵 정국 이후 '촛불정부'가 탄생했지만 지난 5년 실상은 나아진 게 없고, 사회 전반에는 혐오와 극단적 대립이 만연했다. 이제 새로운 기대를 품어볼까 했지만, 차기 정부도 다를 바 없겠다는 자조가 '대선 블루'의 기저에 깔려 있다.

실제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불린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업체 4개사가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지난 7~9일 실시해 10일 발표한 2월 2주차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에서 '대선후보 비호감도'를 물어본 결과, 유력주자인 이 후보와 윤 후보 모두 58%로 후보군에서 가장 높았다. '도덕성 평가'에서도 윤 후보는 16%, 이 후보는 12%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역대 선거 사상 처음으로 유력 대선 후보 배우자가 모두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재명 후보 아내 김혜경 씨(왼쪽)와 김건희 씨. /국민의힘·국회사진취재단
역대 선거 사상 처음으로 유력 대선 후보 배우자가 모두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재명 후보 아내 김혜경 씨(왼쪽)와 김건희 씨. /국민의힘·국회사진취재단

여야를 오간 한 원로 정치인도 '현타'가 제대로 온 모양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대위원장은 10일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양당 후보 가운데 한 명이 (대통령에) 당선될 텐데 누가 되더라도 나라의 앞날이 암울하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권력을 전리품으로 여기기 때문에 연합정부가 불가능하고, 사회적 갈등이 지속되며, 성장동력을 마련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후보를 향해선 "한쪽 후보가 당선되면 문재인 정부보다 폭주할 것이 명백하다. 나라를 더욱 둘로 갈라놓고 야당은 존재 의미조차 사라질 것"이라고 했고, 윤 후보를 겨냥해선 "역사상 존재한 적 없는 극단의 여소야대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임기 5년 특히 초반 2년 정도를 식물 대통령으로 지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1월 4일 정태근·금태섭·김근식 전 실장 등과 만찬 자리에서 "국운이 없는 것 같다"고 발언한 사실이 드러났는데, 이때부터 '대선 블루'를 앓은 건 아닌지 동병상련의 감정이 올라온다.

김 전 위원장의 암울한 예측은 현재 정치권 행태를 보면 불행히도 맞아떨어질 것만 같다. 실제로 사석에서 여권 관계자들은 '윤 후보가 되더라도 민주당 과반 의석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거다'라는 취지의 말을 자주 한다. 다수당으로서 포용의 정치를 하기보다 '발목잡기'하겠다는 협박처럼 들렸다.

대선이 26일 앞으로 다가왔다.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10일 0시 기준 5만 명을 넘겼다. 다음 달에는 "확진자 20만 명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래도 코로나19는 온 힘을 모아 전 국민이 극복해나가고 있다. 진짜 무서운 건 정치혐오가 짙은 '대선 블루'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유력 후보자 부부를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과 지지자들의 양극화, 리더십 스타일을 볼 때 3월 9일 이후에도 확산세가 수그러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전 국민으로 확진자가 늘어나지 않을지 저어된다. '대선 블루'의 유일한 치료제인 정치적 화합을 이끌 지도자가 절실하다. 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대선 블루' 좀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요?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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