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력 반응 주목…"'혁신 동력' 아니면 '집안싸움' 비화"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다시 '86용퇴론'이 나왔다. 24일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본부장단 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김영진 당 사무총장. /국회사진취재단 |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대선을 40여 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86용퇴론'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과거 주요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민심에 호소하기 위한 당내 쇄신 요구의 연장선이다. 당 군기 잡기와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이재명 대선 후보 측의 선거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당내 중진인 86그룹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에 따라 내분이 증폭되거나, 지지율 정체를 격파할 돌파구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민주당에서 '586(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 정치인 책임론'이 이 후보 지지율 정체 우려와 맞물리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586 정치인인 김종민 의원의 자성에서 비롯됐다. 그는 23일 자신의 SNS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정권교체를 넘어 '정치교체'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나를 포함해서 민주주의하겠다고 정치권에 들어온 86 정치는 책임이 없나"라며 "정치 계속하려면 이 정치를 확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냈다. 현재 정권교체 여론이 높은 배경으로, 양극화와 인구 감소 등 민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민주당 내 86세대의 책임이 크다고 자아비판 한 셈이다.
이 후보와 선대위도 '새로운 정치'를 외치며 당내 쇄신안에 힘을 실었다. 이 후보는 24일 경기공약 발표에 앞서 예정에 없었던 큰절을 했다. 그러면서 "세배를 겸해, 사과의 뜻을 겸해 앞으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정치로 보답 드리겠다'는 각오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이 후보 원내 최측근 그룹으로 알려진 이른바 '7인회' 의원들은 "이재명 정부가 출범해도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이재명계 좌장 격인 정성호 의원은 다른 의원들의 동참 가능성에 "각자의 결단 문제라 동참해달라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 "저희의 충정을 동료 의원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했다. 후보의 측근이 자진해 임명직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86세대 등 중진들도 용단을 내려달라'는 무언의 압박을 표명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선 송영길 민주당 대표를 핵심으로 한 86 그룹을 향한 '당 군기 잡기'라는 시각도 있다.
민주당 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인 강훈식 의원도 같은 날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당내 86용퇴론에 대해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합되는 활동들이 움직임이 있는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86용퇴론이) 가시화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히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라고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이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하면서 선대위 내부에 위기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득권 꼰대 정당' 이미지 탈출을 위해 86용퇴까지 이어질 수 있는 당내 흐름이 있다는 것이다. 집권 후 임명직을 맡지 않는 것에서 나아가 86세대 등 중진 의원들이 22대 총선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결단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자신 역시 '86정치인'인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 86 정치는 책임이 없나"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86용퇴론'이 이번 대선 정국에서 현실화할지 주목된다. /남윤호 기자 |
이 같은 목소리가 여권 내부에서 실제 논의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86 정치인'을 겨냥한 세대교체 요구는 선거 때마다 반복돼온 사안이다. 20대 총선 전인 2015년 당시 이동학 혁신위원은 86그룹 좌장 격인 이인영 의원에게 86세력이 새로운 아젠다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공개 비판하면서 험지 출마를 요구한 바 있다. 이어 21대 총선 전인 2019년 연말에도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총선 불출마 선언'으로 다시 한번 86용퇴론 등 인적 쇄신 요구가 나왔다. 하지만 매번 '인위적인 물갈이를 할 필요가 없다'는 반박 논리로 목소리는 수그러들었다.
이동학 민주당 청년 최고위원은 86그룹 내부에서 먼저 나온 목소리에 대해 기대감을 표했다. 그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86용퇴' 실현 가능성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면서도 "(세대교체 요구는) 계속 누적돼 가고 있는 것이다. 눈덩이가 굴러가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며 "지금 단계에서 (86용퇴 요구가 구체적으로) 나올 것 같지는 않고, 지금부터 천천히 그런 논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86용퇴론은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에 나서며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는 이 후보 측의 선거 전략과도 맞아 떨어진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이 후보 지지율이 박스권이라 이를 벗어나야 하니 충격 요법을 쓰는 것"이라며 "진보의 '신(新) 적폐 청산' 요구가 높은 데다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 연장선에 있기도 하다. 그래야 지금의 정권교체론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86세대 등 중진이 결단을 하지 않는 한,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평론가는 "효과는 기대한 만큼은 나지 않을 것이다. (86그룹 등 중진이) 탈당하든지 의원직 사퇴를 하든지 그런 정도까지 가야 국민이 '이제 좀 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이번 세대교체 목소리가 대선판에 미칠 파장은 당사자인 86그룹의 향후 움직임에 따라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강 의원의 '정치 쇄신 움직임 가시화' 발언에 대해 "당 혁신과 변화 차원에서 86그룹이 '대선 직후 물러나겠다'고 용퇴 입장을 밝힌다면 일종의 (지지율 정체) 돌파구가 되지 않겠냐고 (선대위가) 판단할 수 있는데, 86그룹이 어떻게 할지가 중요하다"며 "(용퇴론이 실현되면) 이 후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분골쇄신'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용퇴론 관련) 논쟁이 가열되고 국민의힘까지 가세하면 파장이 커질 수 있다. 선거 정국에서 당내 분란을 촉발하고, 민주당에 상당히 불리한 싸움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