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익빈 부익부' 대선판…짠내나는 군소정당
입력: 2022.01.24 05:00 / 수정: 2022.01.24 05:00

자원봉사자 중심·가성비 극대화…'정치 쿠폰' 대안

대선이 한창인 가운데 거대 정당과 군소정당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21일 대선 후보 긴급 회동을 제안한 새로운물결 김동연 대선 후보. /이선화 기자
대선이 한창인 가운데 거대 정당과 군소정당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21일 대선 후보 긴급 회동을 제안한 새로운물결 김동연 대선 후보. /이선화 기자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현재까지 국고보조금 1원도 받지 못했고, 토론 초대 룰에 해당하지 못해 상당한 어려움 겪고 있습니다."(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 2022년 1월 21일)

거대 양당 대선 후보가 '역대급 비호감' 논란인 가운데, 군소정당들은 '억' 소리 나는 선거 비용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민 혈세로 정당들의 선거운동을 지원하고 있지만 교섭단체 정당에 배분이 편중돼 있어 대선판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일각에선 국고보조금을 모든 유권자의 뜻으로 배분하게 하는 '정치 쿠폰'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실현될 길은 멀어 보인다.

거대 양당은 국고보조금의 절반을 나눠갖게 된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경기장 KSPO돔에서 열린 20대 대선 민주당 선대위 출범식. /국회사진취재단
거대 양당은 국고보조금의 절반을 나눠갖게 된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경기장 KSPO돔에서 열린 20대 대선 민주당 선대위 출범식. /국회사진취재단

21일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사람은 모두 26명이다. 낯익은 지지율 상위권의 후보 외에 군소정당이나 무소속 후보들이 다수다. 원내정당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재명 후보), 국민의힘(윤석열 후보), 국민의당(안철수 후보), 정의당(심상정 후보), 기본소득당(오준호 후보)가 후보를 등록했다.

선거는 예비후보로 등록하는 순간부터 돈이 필요하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대선의 경우 기탁금 3억 원을 내야 한다. 후보 등록 때 전체 기탁금의 20%인 6000만 원을 먼저 낸다. 이후 15% 이상 득표하면 전액을 돌려주고, 10% 이상은 절반을, 10% 이내면 전체 기탁금 3억 원을 날리게 된다. 새로운 정치세력에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면서 기탁금을 기존 5억 원에서 낮췄음에도 신생 정당들이 쉽게 대선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다.

지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쩐의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선거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정당은 매년 분기마다 경상보조금을, 선거가 있는 해에는 선거보조금까지 받는다.

이 가운데 경상보조금은 정치자금법에 따라 교섭단체(20석 이상)를 구성한 정당들이 먼저 보조금의 절반을 배분받는다. 현재 국회 의석 구조에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보조금의 50%를 나눠 갖는 것이다. 이어 나머지 정당 중 5석 이상 의석을 가진 정당에서 총액의 5%, 5석 미만 의석을 가진 정당은 일부조건을 충족할 경우 2% 배분한다. 이후에도 남은 보조금은 절반은 각 정당 의석수 비율, 나머지 절반은 21대 총선 득표수 비율로 배분하는 식이다. 정당별 의석수에 비례해 배분하는 게 아닌, 거대 양당이 그 이상을 가져가도록 하는 구조다. 지난해 기준 총 경상보조금 지급 액수는 462억7000여만 원이었다.

선거보조금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배분된다. 19대 대선의 경우 6개 정당에 지급된 선거보조금은 421억4000여만 원이었다.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해 절반을 나눠 가졌지만, 20대 대선에선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200억 넘는 금액을 나눠 가질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득표율이 20% 이상으로 예상되는 거대 양당은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20대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는 1인당 513억900만 원까지 선거 비용을 사용할 수 있는데, 후보자가 당선되거나 유효 투표 총수의 15% 이상 득표한 경우 선거비용 제한액 내에서 비용 전액이 보전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원회를 두고 선거비용제한액(513억900만 원)의 5%인 25억6545만 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 각 정당의 비용은 당원들의 당비와 후원금, 경상보조금과 선거보조금으로 구성되는 셈이다.

거대 양당은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확률도 매우 높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경기장 KSPO돔에서 열린 20대 대선 국민의힘 선대위 출범식. /국회사진취재단
거대 양당은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확률도 매우 높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경기장 KSPO돔에서 열린 20대 대선 국민의힘 선대위 출범식. /국회사진취재단

반면 국고보조금도 적게 받거나, 아예 지원받지 못하면서 선거비용 전액 보전도 기대할 수 없는 군소정당은 유세차량, 현수막 게시, 광고, 공보물 제작 및 배포 등에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신언직 정의당 사무총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거대 정당은 몇백억씩 쓰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쓸 것"이라고 밝혔다.

비용 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니 광고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도 전했다. 신 사무총장은 "영향력 있는 TV광고, 온라인 광고, 포털 광고 등 광고가 굉장히 비싸다. 광고를 거의 할 수 없는 악조건 속에서 선거를 치른다. 또 선거운동원들을 유급으로 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자원봉사하는 당원이 중심이 된 선거를 치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5석 이상의 정의당은 1석의 기본소득당이나 원외 정당에 비하면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수준'이다.

김영길 기본소득당 사무총장은 "선거비 보전은 언감생심이라 고려도 안 하고 있고, 당원 당비나 의원과 당직자의 특별당비를 모아 이제 겨우 선거를 치르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 달 20일까지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책자형 선거공보만 하더라도 최대 16페이지까지 제작할 수 있지만, 2장 이내로 제작할 예정이다. 2장의 선거공보를 제작해 전국에 배포할 경우 적게는 5억, 많게는 8억 정도가 소요되는 탓이다. 의무가 아닌 전단형 선거 공보 제작은 일찌감치 포기했다. 김 사무총장은 "선거 안내서와 같이 동봉되는 선거 공보는 굉장히 중요하다. 유권자들이 실제로 많이 보기도 한다. 그런데 한 장만 하게 되면 내용을 많이 못 싣는다"며 "저희끼리는 농담처럼 공보 한 자에 몇백만 원이라 제대로 안 쓸 수가 없다고 말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현수막과 차량도 최소한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김 사무총장은 "각 지방 선관위에서 현수막 표지를 받고 있어서 전국적으로 조직이 완비되지 않은 정당의 경우엔 지역에 현수막을 게시하려면 그 지역에 직접 가야 하는 행정적인 어려움도 있다. 또 유세 차량은 큰 정당들은 탑차라고 해서 5t 이상 방송 장비를 단 차량을 여러 대 돌리는데 우리는 3.5t 트럭 수준 한 대로 돌리지 않을까 싶다. 작은 차량은 (업체마다 다르지만) 3000만 원에서 5000만 원 정도 한다. 탑차는 그 이상일 것"이라며 "쓰는 만큼 규모가 나오는 게 선거라 격차가 크다"라고 토로했다.

원외정당이라 국고보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새로운물결 측은 '국민 혈세 지원 없이 선거를 잘 치러보자'며 뜻을 모은 자원봉사자들이 중심이 돼 운영되고 있다.

새로운물결 관계자는 "물론 돈이 많으면 좋다. 다만 후보는 선거에 임하면서 늘 선거하는 데 국민 혈세를 몇백억 원씩 써야 하는지에 대해 늘 의문이 있었다. 그래서 후원금만 가지고 해보자는 말씀을 했고, (자원봉사자들도)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국민에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작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보자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새로운물결 선거 캠프 규모는 30여 명으로 이 가운데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자원봉사자로 구성돼 있다고 한다.

광고나 유세차량, 현수막 등은 유권자에게 후보를 알릴 유용한 수단이지만 군소정당은 비용이 우려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2017년 5월 8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서면1번가에서 유세 차량에 올라가 손을 들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 /뉴시스
광고나 유세차량, 현수막 등은 유권자에게 후보를 알릴 유용한 수단이지만 군소정당은 비용이 우려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2017년 5월 8일 오후 부산 부산진구 서면1번가에서 유세 차량에 올라가 손을 들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는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 /뉴시스

선거 비용을 아끼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활용했다. 관계자는 "선거 출마 영상을 청년 자원봉사자들이 무료로 찍어줬다. 또 줌 미팅 같은 걸 많이 하고, AI(인공지능) 대변인도 활용해서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특히 일정 때마다 보통 후보 말씀 자료를 옆에서 많은 분들이 만들어주는데 김 후보는 거의 본인이 직접 다하고 있다. 인력과 시간이 엄청 절약된다"라고 전했다. 선거공보물도 최소한의 페이지로 제작하는 대신 후보자의 정책정보 등이 담겨 있는 QR코드를 삽입할 예정이다. QR코드를 삽입한 공보물은 2012년 대선 이후 본격적으로 여러 정당이 활용해왔는데, 새로운물결 측은 공약을 나열하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디지털북' 형태로 제작해 차별화를 준비 중이다.

군소정당 후보들은 선거비용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정당 국고보조금과 현행 후원금 세액공제 제도를 폐지하고 '정치 쿠폰' 제도를 도입하자고 입을 모으고 있다. 모든 유권자에게 연간 일정 금액의 바우처를 지급한 후, 각자가 정당에 지지 의사를 표하면 그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쳐 국고보조금을 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1인당 1만 원을 지급할 경우 유권자 수가 21대 총선 기준 약 4400만 명으로, 연간 필요한 예산은 4400억 원 수준이기에 현재 예산 안에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시대전환 대표인 조정훈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지금의 정치 구도는 거대 정당을 유지하는 데 아주 최적화된 제도다. 또 후원을 안 하는 분들도 많은데 그러면 결국 후원하는 분들의 목소리가 정치인 의정 생활에서 일반 시민보다 커지게 된다"라며 "(정치 쿠폰을 도입하게 되면) 정치인과 정당은 매년 유권자의 평가를 받게 된다. 어떻게 보면 유권자들에게 매년 투표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 정치가 훨씬 유권자에 대해 민감해지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기대했다. 조 의원은 이르면 오는 6월 지방선거, 늦어도 22대 총선 때 활용할 수 있도록 관련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실현될 길은 요원해보인다. 법 개정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 양당은 추진 의지가 약한 탓이다. 2016년에도 정당 의석수에 비례한 국고보조금 배분 방안이 제시됐지만 추진되지 못했다.

정치권의 '기울어진 운동장' 현상을 심화하는 거대 정당 중심 제도는 근본적인 문제로 거론된다. 권태홍 정의당 전 사무총장은 "국고보조금 배분 기준이나 선거 비용 보전 기준을 낮추는 문제, 현행 소선거구 중심의 선거제도 등이 다 연동돼 있다"며 "기존 기득권들이 새로운 정치 세력의 진출이나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 체제의 출현을 막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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