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이핵관'도 '당내 갈등'도 부인…'윤핵관' 내로남불 우려도
불교계와 갈등을 겪고 있는 정청래(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재명 대선 후보의 측근으로부터 '자진 탈당' 권유를 받았다고 폭로해 파문이다. 이 후보를 포함한 민주당 의원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지만, 대선을 50일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내홍 조짐을 보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11월 15일 'e스포츠 발전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창립총회'에서 이 후보와 정 의원. /남윤호 기자 |
[더팩트ㅣ송다영 기자] 때아닌 '핵관(핵심 관계자의 줄임말)'의 등판이다. 그런데 이번엔 국민의힘이 아닌 더불어민주당에서 '이핵관'이 거론되고 있다. 불교계와 갈등을 겪고 있는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이재명 대선 후보의 측근으로부터 '자진 탈당' 권유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 후보를 비롯해 민주당 의원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지만, 당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사건의 발단은 18일 '강성 친문'으로 익히 알려진 정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핵관이 찾아왔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다. 정 의원은 "이재명 후보의 뜻이라며 자진 탈당하는 게 어떻냐는 권유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컷오프 때도 탈당하지 않았고, 내 사전에 '탈당'과 '이혼'은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돌려보냈다"며 당을 떠나지 않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정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해인사 문화재 관람료를 '통행세'라고 칭하고 사찰은 '봉이 김선달(조선 설화에 '사기꾼'으로 표현되는 인물)'에 비유해 불교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이후 민주당 지도부와 이 후보가 불교계에 거듭 고개를 숙였고,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던 정 의원도 결국 사과하면서 양해를 구했다. 지난 17일에는 정 의원을 포함해 윤호중 원내대표, 김영진 사무총장 등 민주당 의원 35명과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서울 조계사에서 108배를 드리고 참회의 뜻을 담은 발원문을 낭독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불교계의 부정적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모양새다. 정 의원의 탈당 관련 불교계 기자회견도 17일을 시작으로 오는 20일까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이 때문에 이 후보의 측근이 정 의원에게 탈당을 권유해 불심을 회복하려는 차원이 아니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정 의원은 탈당 권유에도 "당이 저를 버려도 저는 당을 버리지 않겠다. 오히려 당을 위해 대선 승리를 위해 헌신하겠다"고 단언했다. /이선화 기자 |
현재 정 의원은 페이스북 글 게시 이후 언론과의 연락을 두절한 상태다. 이에 현재로선 그가 말한 '이핵관'의 진위를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당 내부에선 이핵관에 대한 언급을 삼가면서 당내 갈등설을 일축하고, 불교계 문제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분위기다.
이 후보는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관련 물음에 "정 의원한테 누가 뭐라고 했는지 제가 아는 바가 없어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어 "불교계 문제는 민주당의 문제인지 잘 모르겠는데 조금 경과를 지켜보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도 '이핵관'에 대해 선을 그었다. 그는 같은 날 K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핵관에 대해 "잘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교계와의 갈등 문제에 대해 "당의 입장은 (정 의원이 했던) 여러 부적절한 비유에 대해 불교계에 사과를 공식적으로 했다"며 "정 의원 문제뿐 아니라 이것(논란)을 계기로 드러난 종교 편향에 대한 오해 문제나 문화재 보존에 있어서의 불교가 가졌던 여러 가지 억울한 점을 잘 살펴서 제도적으로 해결해보겠다"라고 밝혔다.
당내 중진 A 의원은 "일각에서 하는 소리일 뿐"이라며 당내 갈등설을 부인했다. A 의원은 "그렇다고(정 의원에게 불교계 반발이 있다고) 해서 탈당을 어떻게 시키나. 말이 안 된다"며 "'탈당'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가 됐으니 선거를 앞두고 불교계에 죄송하다는 (납짝 엎드리는) 자세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일축했다.
또 다른 중진인 B 의원은 이핵관과 관련해 "모르겠다. (일단 정 의원의 발언이) 사실인지 아닌지 (아직) 확인이 안 된 걸 얘기하기는 그렇다"며 "정 의원은 원래 자기 소신 그대로 행동해 왔던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가 맞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탈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19일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 의원의 이핵관 발언 진위'를 묻는 질문'에 "정 의원한테 누가 뭐라고 했는지 제가 아는 바가 없어 말씀드리기 어렵다. 경과를 제가 좀 지켜보도록 하겠다"고 즉답을 유보했다. /이선화 기자 |
정 의원의 폭로성 발언이 당과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의힘도 최근까지 '윤핵관'(윤석열 대선 후보 핵심 관계자), '이핵관'(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핵심 관계자)으로 대변되는 당내 갈등으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지지율 하락했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정 의원의 '이핵관' 폭로에 당내 일부에선 "사고는 정 의원이 치고 수습은 이 후보 부인 김혜경 씨만 애를 먹고 있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공교롭게도 당시 국민의힘의 핵관 논란에 비판 대열에 앞장 섰던 이가 정 의원이다. 그는 "윤핵관이 사라지면 윤뇌관이 곧 등장할 거다. 후보가 바보이니 어차피 수렴청정하는 사람은 필요할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18일까지만 해도 정 의원은 윤석열 후보의 '무속인 캠프 연루설 의혹'을 두고 페이스북에 "부속실 폐지하고 무속실 생기겠다"며 윤 후보 측 실세의 행태 비판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 정 의원이 국민의힘이 전유했던 '핵관'이라는 말을 차용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이를 계기로 대선 전 당내 갈등 조짐이 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30%대의 '박스권 탈피'를 위해 분주해진 이 후보 입장에서는 악재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여기에 민주당이 다시 한 번 '윤핵관' 내로남불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정 의원 논란 외에도 현근택 선대위 대변인도 문파(문재인 지지층)를 향해 최근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현 대변인은 18일 페이스북에 딥페이크(딥러닝과 페이크의 합성어로 인물의 얼굴, 목소리를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합성하는 기술)로 이 후보가 욕설을 내뱉는 장면이 설 연휴 전 배포될 계획을 알리면서 "'소위 '문파'로 불리기도 하며 똥파리로 비하 받고 있는 일부 세력에 의해 자행될 것"이라는 글을 공유했다. 그는 대선 경선 당시 이낙연 전 대표 측이었던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학원 교수의 민주당 탈당에 대해서도 "이 교수가 탈당한 것이 뉴스가 되느냐"고 비꼬기도 했다.
한편 조계종은 오는 21일 서울 조계사에서 정 의원의 의원직 사퇴 및 탈당을 요구하고 현 정부의 불교 차별을 규탄하는 5000여 명 규모의 전국승려대회를 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