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폐지를 두고 정치권에 '젠더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지난 10일 '일하는 여성을 위한 스타트업 대표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는 이재명 대선 후보(가운데). /국회사진취재단 |
與 "갈등에 합류할 이유 없어"…남녀 모두 향한 구애 전략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정치권이 대선을 50여일 남겨두고 다시 젠더 논쟁에 사로잡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꺼내 들자 정의당이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불씨를 키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후보와 국민의힘을 향해 "분열 조장"이라고 공세를 펼치면서도, 젠더 논쟁에는 한발 물러나 관망하는 모양새다.
11일 정치권은 윤 후보가 SNS에 7자로 제안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두고 갑론을박을 이어갔다. 윤 후보는 당초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여가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고 했으나,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꾸면서도 자세한 설명이나 대안을 밝히지 않으면서다.
윤 후보는 이날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여가부는 기대했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많은 국민들이 판단하고 있다. 조금 더 큰 관점에서 우리의 사회문제를 폭넓게 보고 대응하겠다"고만 할 뿐, 신설될 부서에 대한 구체적인 구상은 밝히지 않았다. '여성 소외' 지적에 대해선 "그들(20·30세대)이 사회에 정상적으로 잘 진출하는 건 우리 사회 모든 세대에 걸쳐서 전체 공익에 부합하는 일"이라며 반박했다.
대신 선대위 차원에서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원희룡 국민의힘 정책본부장은 이날 CBS 라디오에서 "권력형 성범죄를 정치 진영에 따라 편들고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은 해체하는 게 맞다"라고 주장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전날(10일) 한 방송에 출연에서 출산율 제고, 인구 문제 등을 대처하는 부서 신설 구상을 전하기도 했다.
정의당은 '여성가족부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심상정 대선 후보를 필두로 강력하게 맞대응하고 있다. 심 후보는 윤 후보가 '여가부 폐지' 글을 올린 지 4시간 만에 "여성가족부 강화"라는 문구를 올렸고, 주요 인사들도 "대선 후보치고는 참 비루하다(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 "비판의 탈을 쓴 극우적 선동 및 검열과 반드시 분리돼 이루어져야 한다(장혜영 정의당 의원)"면서 국민의힘과 윤 후보를 향해 공세를 퍼부었다.
국민의힘과 정의당이 맞붙었지만, 민주당은 한발 물러나며 관망 모드에 돌입했다. 지난달 10일 사회복지비전선포대회에서자리에 착석한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왼쪽)와 윤 후보./국회사진취재단 |
이에 반해 여가부 폐지 논쟁에서 민주당은 관망 중이다. 자칫 젠더 논란에 빠질 수 있다면서 논평 등 공식 대응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여가부 폐지' 관련 공개 토론 제안을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단칼에 거절한 것도 이 같은 방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윤 후보 측이 (여가부 폐지) 논란을 만들었는데 갈등 국면에 우리가 합류할 필요는 없다"며 "여가부 개편 문제점은 여가부 내에서도 예산이나 정책 중복 등 인지하고 있다. 이 후보는 문제점을 어떻게 바꿀지 핀셋 정책을 한다고 이미 말했다.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하면 된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대선 후보 확정 후 지난해 11월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 또는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자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 역시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취지로, 저성장으로 인한 경쟁 격화 등 근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동시에 "남녀 분열 조장" 프레임으로 새로운 전선을 구축하는 모양새다.
이 후보는 이날 한 강연 일정에서 "누구는 한쪽으로 쏠리는 입장을 갖고 득표 활동에 나서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며 "일부 정치인들이 남녀 청년 갈등에 편승해 오히려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고 윤 후보를 겨냥했다. 그는 전날에도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과 관련해 "폐지한다, 반대한다를 넘어서서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더 개선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을 말씀해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해찬 전 대표도 이날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가 운영하는 '이재명 플러스' 앱에 올린 글에서 윤 후보의 여가부 폐자 공약을 언급하며 "국면이 불리하니 지지율 조금 얻자고 사회 갈등에 불 지르면서 밑도 끝도 없이 툭 내뱉는 그런 정책은 진정성도 없고 나라의 미래나 국정 운영에 대한 철학도, 생각도 없는 고약한 일"이라고 맹비난했다.
이 후보와 민주당은 이 같은 기조를 바탕으로 젠더 논쟁은 비껴가면서, 캐스팅보터로 떠오른 2030 남녀 모두에 구애하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이 후보는 2030 남성층 사이에서 '페미니즘 미디어'라는 비판을 받는 닷페이스 출연을 미뤘다가 지난 7일 촬영을 마쳤다. 지난 10일에는 여성 스타트업 대표들과 만나 여성 창업가의 애로사항과 여성 경력단절 예방, 남성 육아휴직제 강화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와 함께 이남자(20대 남자)를 겨냥한 공약도 꾸준히 피력하고 있다. 민주당에서 2030 세대로 꼽히는 전용기 의원은 윤 후보의 '병사 월급 200만 원 인상' 공약을 환영한다며, 이 후보 역시 이미 2027년까지 '병사 월급 200만 원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한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