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올해부터 산업재해로 근로자 사망 시 사업경영자의 책임이 커진다. 2020년 12월 29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 19일째의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 씨, 고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국회사진취재단 |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 회부돼 본회의를 통과한 의원 대표발의 법률안은 총165건이다. 국회에는 발의 후 처리까지 1년 이상 소요되거나, 길게는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되는 법안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3월 대선 정국을 앞두고는 여야가 손을 맞잡고 법안 처리에 힘을 모으기 쉽지 않다. 지난해 상임위로 넘어온 지 1년 이내에 본회의 문턱을 넘은 법안들은 그만큼 민생과 직결된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올해부터 시행돼 실생활에 확실한 변화를 가져올 법안들을 골라 소개한다. 또한 해당 법안 대표 발의자들의 소회와 기대를 함께 담아 <상>,<하>편에 나누어 전달한다. <편집자주>
'복지 사각지대' 해소 법안들 다수 처리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2021년은 새해 첫날부터 마냥 들뜰 수 없는 한해였다.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다는 기대를 뒤로하고, 예상치 못한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정치권도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여야 신경전이 팽팽했지만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을 위해 민생, 개혁 법안 처리에 힘썼다. 이에 따라 20대 국회에서 좌절됐던 중대재해처벌법을 처리했고, 청년 정치인들의 오랜 염원을 담은 선거 출마 연령 하향 법안도 매듭을 지었다. '비대면'이 활성화하면서 우려가 컸던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법안들도 다수 나와 올해 2022년 국민 앞으로 배달될 예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폐기된 바 있다. 2020년 12월 17일 고 김용균 노동자 2주기 마석 추모제가 6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에서 진행된 가운데 산업재해 유가족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남용희 기자 |
◆ '50인 이상' 사업장 사망사고 발생하면 사업경영자 처벌
오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다.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어긴 것으로 보고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이 처벌받도록 하는 법이다. 근로자 사망 시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고,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도 적용받을 수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4년 1월부터 법이 적용된다.
해당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지만 상임위 문턱을 넘지도 못하고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된 바 있다. 이어 21대 국회에서 강은미 정의당 의원(비례대표)이 이를 보완해 정의당 제1호 당론으로 재추진했다. 2018년 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하청업체 노동자 故 김용균 씨 사건을 통해 공론화되면서 법안 추진 동력을 얻었고, 정의당이 단식농성을 이어가면서 거대 양당의 참여를 끌어내 지난해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내온 강 의원 등 정의당은 여야가 합의한 수정안이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을 제외하고, 경영책임자가 아닌 안전보건 업무 담당자에게 책임을 전가해 기존 취지에서 크게 후퇴했다며 표결에서 기권한 바 있다. 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은 안전 관련 내부 지침을 바꾸고, 안전 인력을 확보하는 등 바쁘게 움직이는 분위기다.
본회의 통과 당시 "유감"을 표하며 울먹였던 강 의원은 법 시행을 앞두고 어떤 심정일까. 그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많이 부족하지만 이 법이 실질적으로 중대재해를 줄이는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또 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만큼 노동자들이 일하다 죽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학동 참사나 여수 현장실습 학생 사망 같은 문제는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게 돼 있어서 이런 부분들은 이후 개정을 통해 더 많은 시민과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다"고 했다.
올해부터는 무연고자에 대한 지자체의 공영 장례가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고양 승화원 무연고자 장례식 모습. /임세준 기자 |
◆ 지자체가 나선다...'무연고자 공영장례'
7월부터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공영장례 절차 지원이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될 전망이다. 관련 조례를 제정하고 지원 체계를 마련하도록 하는 법 개정에 따른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무연고 사망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이 가운데 허종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인천 동구미추홀구갑)은 지난해 국가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장사법을 대표발의했다. 현재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시신 처리를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하고 있는데 현행법에는 시신 '처리' 규정만 있어 장례식도 없이 곧바로 화장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지난해 8월 기준 전체 광역 및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약 절반만 '공영장례 조례'를 제정해 지원하는 상황이다. 이에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허 의원은 기자 시절인 2000년대 초 '화장 문화 운동'을 하면서 장례 제도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통화에서 "늘 아쉬웠던 게 무연고자들이다. 당시 법을 바꿔 달라고 요구를 해도 아무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된 이후 관련 전문가들과 논의해 입법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법 시행에 대해 "최소한 죽음 앞에서는 경건하게 하는 게 맞다. 품격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사회복무요원도 약자의 학대 신고의무대상에 포함된다. 2021년 5월 14일 입양 딸인 정인 양을 수개월 동안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에 대한 선고 공판이 열린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 앞에 모여 양부모 엄벌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항의하고 있는 시민들. /이선화 기자 |
◆ 사회복무요원도 장애인·노인·아동 학대 신고의무대상
앞으로는 사회복지시설 △부랑인 및 노숙인 보호시설 △교육기관 △의료기관 등에 복무 중인 사회복무요원은 학대신고의무대상에 포함된다. 그동안 사회복무요원은 '병역법'에 따라 학대신고의무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해당 직무 수행 중 학대사실을 알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학대신고의무대상으로 추가함으로써 학대신고 사각지대를 줄이자는 취지다. 이와 관련, 지난해 1월 대전 소재 복지시설에서 장애인학대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해당 시설에서 복무 중인 사회복무요원이 휴대전화로 영상을 촬영한 뒤 신고를 해 세상에 알려진 바 있다. 다만 사회복무요원은 의무병제에 따른 것이기에, 학대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더라도 부과하는 과태료 대상에서는 제외하도록 했다. 해당 법은 지난해 12월 10일 정부로 이송된 상태로, 올해 4월부터 실시(공포 후 3개월 경과한 날부터)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발의자인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비례대표)은 통화에서 "복지시설에 사회복무요원들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학대 사실을 목격하거나 인지하더라도 신고 의무가 없으니 병무 인사상 문제 등을 고려해 신고를 잘 안 한다"라며 "이분들에게도 신고를 강제할 수 있는 조항이 있어야 하겠다고 봤다. 복무 요원들은 시설 운영자와는 또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위치라 신고를 의무화할 경우에 학대 사례가 더 드러나고 예방적 차원에서도 더 조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이어 "사실 복지 시설이 운영 환경이나 종사자들의 처우 등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더 많은데 우선 신고 의무라도 부여하면 (학대 예방에) 기여할 수 있지 않겠나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기초연금 등 사회서비스 신청을 복지관, 병원에서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월 최고 20만원 이상을 지급하는 기초연금법이 발효된 2014년 7월 1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수1가1동 주민센터 모습. /뉴시스 |
◆ 사회서비스, 복지관·병원에서도 신청 가능
1월 1일부터 기초연금, 의료비 지원, 긴급복지지원 등 사회복지 서비스 신청을 보다 쉽게 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에는 사회복지 제도를 모르거나, 제도를 알더라도 시·군·구를 방문해 신청서를 작성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은 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졌다. 이에 기초연금법, 암관리법, 긴급복지지원법, 사회서비스 이용법 등이 개정됐다. 이들 법안은 국민이 자주 이용하는 복지관·병원 등 민간기관 중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정 민간법인·단체·시설·기관에서 수급권자 요청에 따라 지급신청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복지대상자 조사·선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신청자의 소득 재산 수준이 일정기준 이하인 경우 추가 조사를 생략하고 공적 자료로 서비스 대상 여부를 판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공통으로 담고 있다. 또 심신미약·심신상실 등 사실상 본인의 동의를 얻기 어려운 경우 이를 생략하고 서비스(암 환자 의료지원비, 사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담당 공무원이 직권으로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해당 개정안은 모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출신인 김성주 민주당 의원(전북 전주시병)이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복지에 대한 지출과 투자를 급격하게 늘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가 있다. 복지 서비스를 받을 때 '신청주의'가 있어서 서비스를 국가에 신청해야 하는데 본인이 그 대상인지도 모르고 신청 방법도 모르다 보니 이런 데서 생기는 사각지대가 꽤 있다"며 "그래서 신청하지 않아도 전산상으로 봤을 때 어려운 사람이라면 자동으로 찾아서 지원해줄 수 있도록 하는 게 (4개 법안) 입법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중단 단계로서 서비스를 받는 이들이 편하게 신청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주기 위해 관련 법안을 마련했다는 의미다.
김 의원은 "지금은 몇 분야이지만 전면적으로 시행돼 그야말로 맞춤형 복지, 굳이 본인이 요청하지 않아도 (자격에) 해당하면 알아서 지원해주도록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사회보장 체계를 전면적으로 전산 개편하고 있고 완료되면 그런 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표발의한 4개 법안 시행에 대해 "복지 사각지대 비극을 막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노동자 쉼터가 더 늘어날 전망이다. 2020년 11월 3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배송노동자 쉼터에서 이륜차 배송노동자들과 근로실태 점검 및 보호대책 현장간담회를 갖고 있는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왼쪽). /국회사진취재단 |
◆ 택배·배달 노동자 쉼터 더 늘어날 듯
코로나19로 '플랫폼 노동'이 확산하는 가운데, 다음 달부터 택배와 배달대행, 퀵서비스, 대리운전 등 디지털 플랫폼 노동자들과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을 위한 쉼터가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근로복지기본법 개정안(윤준병 의원 대표발의)이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해당 개정안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할 수 있는 근로복지사업에 배달·운전 등 노무제공자를 위한 휴게시설의 설치·운영을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휴게시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법인 또는 단체에 운영을 위탁하고,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예산 범위에서 지원하도록 근거를 마련했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