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공수처 '무차별 통신조회' 논란, 누구를 위한 몸싸움이었나
입력: 2021.12.29 05:00 / 수정: 2021.12.29 05:00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무차별 통신기록 조회로 불법 사찰 논란에 휩싸였다. 2019년 4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안, 공수처 법안 등을 제출하려는 민주당 측과 막으려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측의 대치 장면. /국회사진취재단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무차별 통신기록 조회로 '불법 사찰' 논란에 휩싸였다. 2019년 4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안, 공수처 법안 등을 제출하려는 민주당 측과 막으려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측의 대치 장면. /국회사진취재단

공수처법 강행한 與,'사찰 의혹' 침묵…성찰과 제도 개선 적극 나서야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2019년 4월 25일은 국회 출입 이후 가장 충격적인 날로 뇌리에 남아 있다. 국회의원들은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하나가 뉴스거리가 되기에 정제된 태도가 몸에 배어 있는데, 이날은 그들의 대규모 '일탈'을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국회의 진풍경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야 3당(민주평화당·바른미래당·정의당)이 자신들이 마련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설치법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태우려 하면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공수처가 기존 사정기관 위의 불필요한 옥상옥이 될 수 있고, 야권을 겨냥하는 사찰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법안 제출을 막았다.

야당 의원들의 국회의장실 점령에 충격을 받은 당시 문희상 국회의장은 탈진해 병원으로 실려 갔고, 공수처법 소관위인 사법개혁특위에 보임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자신의 의원실에서 6시간가량 감금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국회 본청 7층에 위치한 의안과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법안을 제출하려는 측과 막으려는 측이 팽팽히 맞서면서 순식간에 대규모 몸싸움이 벌어졌다. 양측 의원들과 보좌진, 당직자 200여 명은 겉옷을 벗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밀고 막았다. 가지런했던 머리가 헝클어지고, 거친 몸싸움에 옷이 찢긴 이들도 있었다. 자정을 넘겨 다음 날 새벽 의안과 문을 열기 위해 일명 '빠루'라고 불리는 쇠지렛대가 등장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3+1 연합체'는 끝내 자유한국당의 방어전선을 뚫지 못했는데, 그날 새벽에 민주당 측은 도입 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전자입법 발의시스템으로 공수처법을 제출하면서 양측의 육탄전은 끝났다. 어이없는 촌극이었다.

공수처 출범을 밀어붙인 민주당은 무차별 통신기록 조회 비판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월 21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을 진행하고 있는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에서 네 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 /이동률 기자
공수처 출범을 밀어붙인 민주당은 '무차별 통신기록 조회' 비판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1월 21일 오후 경기 정부과천청사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현판식을 진행하고 있는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에서 네 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 /이동률 기자

결국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수처법은 우여곡절 끝에 그해 처리됐다. 이어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 위원 요건을 완화하는 후속법안까지 지난해 12월 민주당의 단독 의결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올해 1월 공수처가 출범했다.

공수처는 출범한 지 1년도 안 돼 무차별 통신 조회 논란에 휩싸였다. 야당 정치인은 물론 언론인과 교수, 법조인, 시민단체 관계자와 그 가족 등 민간인까지 광범위하게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확인됐다.

공수처는 법원 영장에 근거해 적법하게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당사자의 일반인 친구, 가족까지 조회 대상으로 확인되면서 설득력을 잃었다. 논란이 커지자 공수처는 유감을 표하면서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무차별로 통신기록을 조회한 이들에게 '어떤 이유'로 개인 정보를 조회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공수처 출범을 반대했던 국민의힘은 무차별 통신기록 조회를 '불법 사찰'로 규정하고 연일 비판하고 있다. 이양수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수석대변인은 28일 논평에서 "누구보다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독립적이며 성역 없는 수사를 할 것을 천명하며 탄생한 공수처는 설립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존폐의 기로에 서버렸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열어 현안 질의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공수처 탄생을 밀어붙인 민주당은 불법 사찰 주장을 부인하면서 국회가 나설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조오섭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어떤 수사 관련 확인 절차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사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법사위 현안 질의가 굳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그동안 국가기관의 개인 정보 수집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하지만 이번 논란에 대해선 별도의 논평이나 입장 표명 없이 침묵하고 있다. 공수처법 강행 처리 당시 법사위원이었던 한 민주당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이번 무차별 통신 조회 지적에 대해 "추측하건대 피의자와 통화 관련자들의 통화기록을 다 조회한 것 같은데 그렇게 하면 과잉 수사가 될 수 있다. 너무 광범위하게 해서 괜한 오해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공수처법 처리 당시 이런 점을 우려했었나'라는 물음에는 "공수처가 수사 부분이 아직 미숙하지 않나 싶다"고만 했다. 그는 "제도적으로 통신 조회에 대한 법원 영장 요건을 엄격하게 하면 불필요한 통신 조회가 안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현재 법사위원 사이에서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는 없다고 전했다.

공수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뒤를 이은 문재인 대통령의 검찰 개혁 공약이다. 이번 논란에 대해 민주당이 흐지부지 넘어갈 경우 '인권 변호사' 출신 두 대통령이 공수처에 투영한 '정의'가 빛바랠 수 있다. 단독 처리한 법안에는 응당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공수처는 출범 후 당초의 설립 취지와 달리 긍정적 효과는커녕 부정적 노이즈만 일으키고 있는 데도 몸싸움까지 불사하며 강행 통과를 밀어붙인 집권 여당쪽에서는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민주당은 최근 열린민주당과의 합당을 계기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목표로 하는 중대범죄수사청 추진에도 다시 시동을 걸고 있다. 수사기관을 견제하기 위해 또 수사기관을 만드는 격이다. 물론 새 수사기관 설립의 명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당초 목적과 다른 형태의 운영이 된다면 누가 그 명분을 신뢰할 수 있을까. 공수처 '사찰' 논란에 대한 성찰 없이 또 수사기관 신설을 밀어붙이려 한다면, '수사 공화국'을 우려하는 국민들의 거센 비판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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