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30일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잠적에 들어갔다.이에 그간 불거져온 '대표 패싱'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경선 후보였던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선대위 합류도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이 대표가 새로운 '리스크'로 작용하자, 윤 후보의 '정치력'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선화 기자 |
김종인·홍준표·유승민에 이어 이준석 '사퇴론' 솔솔
[더팩트ㅣ국회=곽현서 기자]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가 출항하자마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대표 패싱' 논란에 휴대전화도 끈 채 잠적, 좌초 위기에 처했다. 이 대표가 대선 선거운동 보이콧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면서, 윤 후보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30일 윤 후보와 선대위 인선 문제로 갈등을 겪어오던 이 대표가 돌연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 여기에 이 대표가 전날(29일) 페이스북에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글이 중대 결심을 암시한 것으로 읽히면서 '사퇴설'까지 불거졌다. 이 대표의 잠적을 놓고 해석이 난무하자 이 대표 측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이 대표와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 더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없다"라고 했다.
이 대표의 잠적 또는 칩거의 결정적 원인을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윤 후보가 이 대표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선대위 구성 과정부터다. 본래 이 대표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추대하길 원했다. 그러나 윤 후보는 김 전 위원장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김병준 국민의힘 상임선대위원장을 선대위 '원톱'으로 임명했다. 둘 사이가 어긋나기 시작한 지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윤 후보는 이 대표가 강하게 영입 반대 의사를 밝혔던 이수정 경기대 교수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여기에 조수진 선대위 공보단장은 "선대위가 닻을 올리면 최고위원 등 직함은 활동이 중단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이 대표를 포함한 모두에게 적용된다"라며 공개적으로 이 대표를 조준했다. 일련의 상황들로 두 사람 갈등이 극에 치달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윤 후보는 이 대표의 잠적 소식에 "저도 잘 모르겠다"라고 입장을 내놨다. 현재 충청권 지역 순회 일정 중인 윤 후보는 기자들과 만나 '이준석 패싱 논란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후보로서 역할을 하는 것뿐"이라면서 "(당) 사무총장에게 이유를 파악해보고 한번 만나보라고 얘기했다"라고 밝혔다. 이 대표의 의중을 파악한 후 진화에 나서기 위한 수순으로 풀이된다.
권성동 사무총장은 윤 후보의 요청에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이 대표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만나지 못했다. 권 사무총장은 "(이 대표와) 연락이 되지 않아 찾아왔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의 갈등은 생각보다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윤 후보와의 관계 회복을 묻자 "지금으로선 예측이 쉽지 않고,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일축했다. 윤 후보가 충청권 일정을 마무리한 후 이 대표와 직접 만나 문제를 해결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충청권 지역 순회 일정을 수행중인 윤 후보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 '패싱 논란' 원인과 관련해 "저도 잘 모르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 30일 청주국제공항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있는 윤 후보. /뉴시스 |
이 대표가 종일 연락이 되지 않자 전날 과음해 건강상 차질이 생긴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 대표는 당내 대구권 의원들과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상황'을 묻자 "어제 술을 많이 먹은 거로 안다"라고 말했다.
술자리 성격을 두고도 말이 나왔다. 일각에선 이 대표와 윤 후보 간 당내 세력 싸움으로 보는 시각이다. 선대위에서 설 자리를 잃은 이 대표가 당의 텃밭이라 불리는 '대구권' 의원들과 함께 계파 형성에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국민의힘 측 관계자는 "다른 의원님들과 특별한 논의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이 대표가 연락을 받지 않아)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양수 수석대변인은 현재 상황의 문제점을 '소통의 부재'로 꼽았다. 이 수석대변인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후보와 대표가 워낙 바빠 직접 연락하기보다는 비서실장을 통해 소통해왔으나, 최근 비서실장의 부재로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 "서일준 의원이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만큼 앞으로 소통에 있어 오해하는 부분이 없어질 거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의 잠적에 대해선 "진위파악이 먼저"'라면서도 "우리 캠프, 비서실장과 소통해서 오늘(30일) 중으로 빠르게 업무에 복귀할 수 있도록 성의 있는 대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윤 후보와 이 대표가 선대위 인선 과정을 놓고 충돌하면서 일각에선 윤 후보 '리더십'에도 의문이 제기됐다. 경선 후보였던 유승민 전 의원과 2030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홍준표 의원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것이 배경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김 전 비대위원장의 합류도 불발되면서 윤 후보가 '뺄셈의 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이종훈 명지대 교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적극적인 외연 확장에 나선 것을 거론하며 "민주당은 열린민주당, 국민의당계 호남 인사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반면, 윤 후보는 홍준표·유승민·김종인에 이어 이 대표까지 놓치게 생겼다"라며 "결코 필승의 전략이 되지 못한다"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국정 상황의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듯이 대선 국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책임은 대선 후보가 지는 것이기에 이런 갈등 상황은 윤 후보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내년 대선 시계가 점점 빨라지는 가운데 윤 후보와 이 대표가 '대표 패싱' 논란을 잠재우고 원팀으로 거듭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