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향년 90세로 사망한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신촌장례식장에 고인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이동률 기자 |
'쿠데타 동지' 노태우 사망 28일 만에 단짝 따라 저세상으로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향년 90세 일기로 사망했다. 12·12 군사 쿠데타로 대한민국의 권력을 장악해 11·12대 대통령을 지낸 그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화장실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지난달 26일 쿠데타 동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28일 만이다.
전 전 대통령의 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2014년 발간한 회고록에 유서를 남겼다. '건강한 눈으로 맑은 정신으로 통일을 이룬 빛나는 조국의 모습을 보고 싶다. 그전에 내 생이 끝난다면 북녘이 보이는 고지에 백골로라도 남아 있으면서 그날을 맞고 싶다'고 일종의 유서를 남겼다"라며 "평소에 죽으면 화장해서 그냥 뿌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가족들은 유언에 따라 그대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군인 신분으로 총칼을 앞세워 대한민국 정점의 자리에 올라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정경유착을 통한 천문학적 비자금 조성 등 역사에 남을 죄를 지은 그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어떤 반성도 하지 않고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앞 전광판에 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나오고 있다. /이동률 기자 |
1931년 1월 18일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5년 육사(11기)를 졸업한 뒤 첫 번째 군사 정권인 박정희 정권에서 군인으로 승승장구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이었던 전 전 대통령은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수사를 담당하면서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과 함께 대한민국 12·12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이듬해 5월 17일 내란을 일으켜 헌정(憲政)을 중단한 그는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해 국정 실권을 장악했다.
같은 해 9월 1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접 선거로 11대 대통령의 자리에 올라 신군부 독재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1981년 간접 선거로 12대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재임 기간 글로벌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 속 큰 폭의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전 전 대통령 재임 기간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은 △1981년 7.2% △1982년 8.3% △1984년 10.6% △1985년 7.8% △1986년 11.3% △1987년 12.7% △1988년 12.0%로 평균 10.4%에 달한다. 해당 기간 한 해(1985년 +4.07%포인트)를 제외하고, 모두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5%P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 세력 억압 △정경유착을 통한 수천억 원대 비자금 조성 △언론 통제 △삼청교육대를 통한 공포 정치 등은 전두환 시대의 '그늘'이다.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전 전 대통령 빈소에 부인 이순자 씨가 들어서고 있다. /이동률 기자 |
또다시 간접 선거로 단짝 노태우 민정당 대선 후보를 당선 시켜 군부 독재 시대를 연장하려 했던 전 전 대통령은 6월 민주항쟁으로 그 뜻을 접게 된다. 하지만 당시 김대중·김영삼 대선 후보의 분열로 직선제로 열린 선거에서도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 사실상의 3기 군사 정권 시대가 열렸다.
전 전 대통령은 5·18 유혈 진압 등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1988년 재산 헌납을 선언하고 백담사에 칩거했지만, 재산 헌납 약속은 이행하지 않았다.
이후 김영삼 정권 때인 1995년 12·12 군사 쿠데타, 5·18 유혈진압 등으로 구속기소 돼 1996년 내란, 내란목적살인,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 및 추징금 2205억 원을 최종 선고받은 그는 수감 2년 만인 1997년 12월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결정으로 특별사면돼 석방됐다.
전 전 대통령은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광주시민들에 대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란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그는, 항소해서 오는 29일 항소심 결심 공판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당사자의 사망으로 5·18 관련 두 번째 사법적 심판은 미완의 상태로 매듭을 짓지 못하게 됐다.
2019년 3월 11일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지법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서는 모습. /이새롬 기자 |
사과도 없었다. 쿠데타 동지였던 노 전 대통령이 생전 아들을 통해 5·18 사태에 여러 차례 사과의 뜻을 표명한 것과 대조적이다. 추징금도 57%만(1249억 원)만 납부, 미납 추징금은 956억 원이다.
이런 차이는 장례의 차이로도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은 5일간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렀지만, 전 전 대통령은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 사망 다음 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 강제 진압과 12·12 군사 쿠데타 등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지만,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북방 정책 추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등 성과도 있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추모 메시지를 전했다.
반면 전 전 대통령 사망 당일 박 대변인은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관련 브리핑'을 통해 "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면서도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 유감을 표한다. 청와대 차원의 조화와 조문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를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왼쪽)과 고명승 전 육군대장이 조문하고 있다. /이동률 기자 |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전두환 전 대통령 사망 관련 대변인 브리핑'과 지난번 '노태우 전 대통령 추모 관련 대변인 브리핑'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 차원에서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한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에 협조하지 않았고, 또 진정성 있는 사과도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 유감을 표한다는 것이 대변인 브리핑에 담겨 있는데, 그 부분에 주목해 주기 바란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의 반응도 달랐다. 노 전 대통령 별세 때는 고인의 역사적 과오 평가에 온도차이를 보이면서도 여야 유력 정치인들은 모두 빈소를 찾아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췄다.
하지만 전 전 대통령 사망 조문과 관련해 여권은 계획이 없다고 밝혔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조문하지 않기로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도 모두 조문하지 않을 방침이며, 이준석 국민의당 대표도 "당을 대표해 조화는 보내지만, 따로 조문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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