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정직 공무원으로 분류된 국회 보좌진들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국회 보좌진들은 의원들의 말 한마디에 실직자가 될 수 있어 그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다. 이같은 현실에 보좌진들은 "남 일 같지 않다", "의원들이 보좌진들의 해고를 너무나 쉽게 본다"고 반응했다. /국회=곽현서기자 |
"걸맞은 처우 개선 필요" vs "별정직 공무원의 숙명"
[더팩트ㅣ국회=곽현서 기자] 10월 국정감사가 끝나고 시작된 11월, 국회 보좌진들에게는 '실직의 달'로 불린다. 휴일도 반납하며 밤낮으로 국정감사를 준비했지만 성과가 없거나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며 보좌진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소위 '물갈이'에 나서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한마디에 한 순간 실업자로 전락하는 현실에 국회 보좌진들이 고용 유지 사각지대에 놓였다.
지난 10월 21일 약 3주간에 걸친 국정감사가 끝났다. 이와 동시에 국회 보좌진들이 근무하고 있는 국회의원회관은 현재 '대규모 인력 채용'이 진행 중이다.
국정감사가 끝난 10월 21일부터 11월 10일, 약 21일 동안 28건의 채용공고가 올라왔다. 이는 국정감사가 열리기 직전인 같은 기간 9월 11일부터 9월 30일까지 18건에 비해 10건 증가한 수치다. (입법보조원·명예보좌관 제외) 공식적인 채용보다 지인 추천 등 '알음알음' 채용이 더 많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회 보좌진들은 국가공무원법상 별정직 공무원으로 분류돼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보좌진에 대한 법적·제도적 근거도 '국회의원 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만 있을 뿐 체계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특히 임면 관련 전권은 전적으로 의원이 쥐고 있어 임명된 날 해고해도 법적 문제가 없는 구조다. 보좌진이 국회의원으로부터 부당한 지시나 대우를 받아도 대항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의 말 한 마디에 하루아침에 보좌진들이 실직하는 경우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국정감사의 기간은 보좌진에게 시련의 계절이다.
국정감사를 발판으로 중진으로 나아갈 기회를 엿보거나 이른바 '국감 스타'가 되고싶은 국회의원 압박에 의원실 직원들은 9월부터 '핫한 아이템 발굴'에 분주해진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원 마음에 들지 않았거나 '좋은 이슈'를 선점하지 못했다는 핑계로 국회 보좌진들은 해고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국정감사가 끝난 10월 21일 부터 11월 10일까지 28건의 채용 공고가 올라왔다. 이는 같은 기간, 국정감사 직전인 9월 11일부터 30일에 올라온 18건의 채용 공고 보다 10건 더 많은 수치다. /국회의원실채용시스템 누리집 갈무리 |
국회 보좌진 출신 A 씨는 "국정감사 이후 소위 '인력시장'이 열린다"라며 "이런 상황을 볼 때마다 보좌진의 노동 안정성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라고 했다.
임면과 면직 과정의 전적인 권한이 국회의원에게 있다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있다. 국회 보좌진 B 씨는 '선거'나 '국정감사'처럼 정해진 기간이 끝난 뒤에 해고하는 것에 대해 "국회 내부에선 마치 '시즌'처럼 여겨지고 있다"며 "일 시킬 거 다 시키고 끝나니까 나가라고 하는 나쁜 의원들이 더러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 한마디에 잘리는 동료 보좌진들을 보면 남 일 같지 않고, 보좌진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인데 너무 쉽게 (해고를) 생각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국회 보좌진 C 씨도 "실제로 국감 끝나고 관둔 사람들은 매우 많고, 주로 직급이 높은 보좌관들이 그만둔다"고 했다.
지나친 인력 변화가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에 국회 보좌진 D 씨는 20대 모 국회의원은 6개월마다 주기적으로 보좌진을 새로 채용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생계형 보좌진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부당해도 참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보좌진협의회의 노력과 의원들이 '법적인' 차원의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별정직 공무원들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함을 마음 한구석에 늘 달고 산다. 다만 면직이 쉬운 만큼 임용도 쉬운 만큼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는 의견도 있다. 보좌진 C 씨는 "쉽게 해고당하는 점이 안타까운 마음도 크지만 인력 순환이 빠르고 늘 새로운 자리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자유롭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고를 막는다면 인력이 정체되고 보좌진의 능력치가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전했다.
또 다른 국회 보좌진 E 씨는 '함께하는 의원과의 케미'를 강조했다. 그는 "의원과 합이 맞지 않는다면 다른 의원실로 옮길 수 있는 자유가 큰 장점 중의 하나"라며 "여러 의원실에서 인맥을 쌓고, 다양한 상임위를 경험할 수 있는 것도 보좌진이라는 직업이 가지는 큰 강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원 입장에서도 맘에 안맞는 직원과 함께 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달 1월 '수행비서 면직' 논란이 일자 "'처우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더팩트> 취재 결과, 해당 법안은 아직 당내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국회에서 열린 청년정의당 채용비리신고센터 '킬비리' 설립 기자회견에서 채용비리 척결을 의미하는 집행검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류 의원./이선화 기자 |
이처럼 국회 보좌진들의 처우 관련 논의는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이어져왔다. 지난 1월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수행비서 면직' 논란으로 보좌진의 처우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르자 법적 제도를 만들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여전히 법적인 개선에는 진전이 없었다. 류호정 의원실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3월에 예고했던 '국회의원 보좌직원 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에 관한 논의가 잠시 멈춰있는 상태"라고 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을 논의하던 도중 근본적인 해결책을 연구하자는 내부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전하면서 "국정감사와 당내 경선을 치루면서 법안 수정의 시점을 놓쳤지만, 다시 논의할 시점이 왔다"고 했다. 해당 법안 내용에는 기존에 알려진 것 처럼 '면직 처리 30일 전 통보제'와 '생계비 등 기본수당 지급'을 포함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회 보좌진들의 고용 유지와 처우 개선에 대해 사회적 합의와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보좌진 D 씨는 "국회 보좌진들에 대한 달갑지 않은 시선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면서 "'낙하산 인사'로 불리는 오명을 벗기위해선 개개인의 능력치를 끌어 올려야 하는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