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사람' 노태우, 역사의 뒤안길로…'불명예' 말년
입력: 2021.10.26 16:21 / 수정: 2021.10.26 16:21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향년 89세. /이효균 기자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향년 89세. /이효균 기자

건강 문제로 여러 차례 입원…실형 선고로 예우 박탈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향년 89세.

지난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이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투병 생활을 이어왔던 노 씨는 최근 병세가 악화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건강 문제로 여러 차례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이어왔다. 2008년 소뇌에 퇴행성 변화가 오고 크기가 줄어드는 희귀성 질환인 '소뇌 위축증' 판정을 받고 치료를 받아왔다. 2011년 4월 가슴 통증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가 한방용 침이 흉부에 있는 것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았다.

같은 해 8월에는 기침과 가래 증세로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이어 9월에는 고열과 천식 증세로 다시 입원해 2012년 2월 상태가 호전돼 퇴원했다. 그러나 열흘 만에 갑작스러운 고열로 다시 입원하기도 했다. 2015년 12월에도 천식으로 9일간 병원 신세를 졌다.

고인은 이후에도 서울 연희동 자택에 투병 생활을 계속하다가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기도 했다. 건강 문제로 외부 활동을 할 수 없었다. 2015년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때는 아들 노재헌 변호사가 노 씨를 대신해 빈소를 방문하고 애도를 표했다.

1932년 대구 출생으로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 씨는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한 이후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1955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후 공수특전여단장과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국군보안사령관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노 씨는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12 군사 쿠데타에 참여, 육군 내 불법 사조직인 하나회가 군권을 장악하는 데 기여한다. 신군부 2인자로 성장한 그는 2년 뒤인 1981년 전두환 정권 시절 예비역 대장으로 군복을 벗고 정무제2장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육사 동기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전 씨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 체육부 장관, 내무부 장관, 대한체육회 회장 등을 지냈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하기도 했다. 1987년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로 나서 '직접 선거'로 치러진 13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대권 운'이 따랐다. 노 씨는 '보통사람 노태우'를 슬로건으로 내세웠지만, 36.64%로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지금도 '역대 최소 득표율'로 남아 있다. 당시 김영삼, 김대중 후보가 야권 단일화에 실패하고 독자 출마하면서 28.03%와 27.04%를 기록했는데, 다자구도가 노 전 대통령 당선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노 씨가 2019년 10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모습. /김세정 기자
노 씨가 2019년 10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모습. /김세정 기자

노 씨는 1990년 10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민생 치안을 확립하겠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민주화 바람이 사회 각계에 일자 공안 정국을 조성하며 시선을 돌리기 위한 전략이 숨어 있었다.

노 씨는 대통령 퇴임 후 1995년 내란 혐의 등으로 전 씨와 함께 법정에 서는 불명예를 안았다. 12·12 군사 쿠데타와 광주 5·18 민주화운동에서 민간인 학살 등을 처벌하기 위해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구속기소 됐다.

학살 책임자인 전 씨와 노 씨는 각각 무기징역과 17년형 및 추징금을 선고받았으나 1997년 12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두 사람이 1995년 말 구속된 점을 고려하면 2년간 '옥살이'에 그친 것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박탈됐다.

이후 노 씨는 '친우' 전 씨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당국의 추징금 환수 작업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재산을 숨긴 전 씨와 달리 2013년 추징금을 완납했다.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2628억여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뒤 16년 만의 일이다.

노 씨 측은 5월 영령에 사죄하는 모습도 보였다. 2018년 8월 노 씨의 아들 재헌 씨가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했다. 신군부 지도자와 그 직계가족이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것은 노 씨가 처음이었다. 노 씨의 광주행에는 노 전 대통령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재헌 씨는 당시 방명록에 "삼가 옷깃을 여미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분들 영령의 명복을 빕니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족분들께 사죄드리며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적었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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