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초 "공기업 등 공공기관 인사에 있어 부적격자 낙하산 인사, 캠프 보은 인사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실은 달랐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14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는 문 대통령. /청와대 제공 |
문재인 정권 취임 초부터 공공기관 곳곳에 뿌려지기 시작한 낙하산 논란이 임기 말까지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 혹은 '더불어민주당' 출신이라는 간판은 '신의 직장'이라는 공기업의 꽃 '임원'이 되는 보증수표처럼 사용되고 있다. 취임 초 "공기업 등 공공기관 인사에 있어 부적격자 낙하산 인사, 캠프 보은 인사는 하지 않겠다"(2017년 7월)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기업은행장 낙하산 임명 반대론에 "공공기관 인사권은 정부에 있다"고 사실상 청와대 출신 낙하산을 정당화했다. 이후 최근까지도 청와대와 민주당 간판을 앞세운 친정권 낙하산은 계속 투입됐다. 그 현황을 금융권과 공기업으로 나눠 살펴봤다. <편집자 주>
임기 초부터 계속된 금융권 '친정권' 코드 인사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20조 원 규모의 한국형 뉴딜펀드 운용을 책임지는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2본부장으로 내정됐던 황현선 전 청와대 행정관이 최근 '자진 사퇴'했다. 자산운용 경험이 없는 무경력자가 2억 원이 넘는 연봉을 받으면서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는 요직에 낙하산으로 투입됐다는 거센 비판과 문재인 정권의 임기 말 국정 운영 부담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 3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황 전 행정관 금융권 취업에 대해 "청와대가 관여하는 인사가 아니다"라며 "전직 청와대 직원이 개인적으로 취업을 한 사안에 대해서 일부 언론에서 '낙하산' 표현을 한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취업한 것이기에 '낙하산이 아니다'라는 해명이다.
◆靑 "개인적 취업에 '낙하산' 표현한 언론 '유감'"
하지만 민주당 기획조정국장, 지난 대선 문재인 캠프 전략기획팀장,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등의 경력을 가진 전형적인 정치권 인사가 펀드매니저의 기본인 '투자자산운용사 자격증'도 없이 수십조 원을 굴리는 펀드의 운용 본부장으로 내정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짙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 전 행정관 사례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점도 이런 의심을 키운다. 금융결제원은 지난달 천경득 전 청와대 행정관을 상임감사로 선임했으며, 한국예탁결제원도 한유진 전 노무현재단 본부장을 상임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특히 한 전 본부장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 2012·2017년 대선 문재인 캠프 특보 활동 등 금융 경력이 없다. 그러나 예탁결제원은 상임이사 직급을 신설하고 퇴직금 지급 대상에 상임이사를 추가하는 정관 개정까지 하면서 그를 임명하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금융권 임원 취업이 본인의 노력만으로 이뤄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지난 5월 31일 금융경제연구소가 공개한 '주요 금융기관(기업)의 관료·친정권 임원 선임 현황과 개선 방안' 보고서를 보면 금융권 낙하산은 문재인 정부 취임 초부터 꾸준히 곳곳에 투입됐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 지부를 두고 있는 39개 금융기관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부터 지난해 11월 30일까지 신규 선임 및 연임되어 재직한 전·현직 임원 437명 중 친정권 임원은 '44명'이다. 이들 중 33명(75%)은 금융공공기관에 임원으로 선임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산업개발과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설립된 산업은행의 경우 2017년 대선 선거 지원 활동 경력이 있는 이동걸 회장 외에 사외이사 3명(김남준·이윤·육동한)도 대선이나 지방선거 지원 활동을 했거나,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예비후보로 출마한 적이 있는 인사들이다. 특히 산업은행은 전체 이사 7명 중 4명이 친정권 인사여서 그 비중이 57%에 달한다.
수출입, 해외투자 및 해외자원개발 등 대외 경제 협력에 필요한 금융을 제공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설립된 수출입은행의 나명현 비상임이사는 2017년 대선 문재인 후보 경제산업특보 활동과 현 정부 출범 후 문 대통령 지지그룹인 달빛포럼 창립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
지난해 1월 취임 당시 낙하산 논란이 컸던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이다.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에서 허경욱 전 기획재정부 차관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기업은행장에 임명하려고 할 때 "관치는 독극물이고, 발암물질과 같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이를 수용해 박근혜 정부는 두 인사의 임명을 포기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윤 기업은행장의 임명을 강행했다. 이에 지난해 1월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과거 민주당이 관치금융 폐해를 지적하면서 비슷한 인사가 무산됐는데, 지금은 왜 낙하산을 임명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고 묻자, 문 대통령은 "기업은행은 일종의 공공기관과 같아서 인사권이 정부에 있다"라며 "내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비토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고 사실상 낙하산을 정당화했다.
또한 기업은행 김정훈 사외이사도 2017년 대선에서 민주금융발전 네트워크 운영위원으로 당시 문 후보 지지 운동을 펼친 바 있다.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시절 허경욱 전 기획재정부 차관과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을 기업은행장에 임명하려고 할 때 "관치는 독극물이고, 발암물질과 같다"며 강하게 반발해 무산시켰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낙하산 반대'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지난해 1월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 윤종원 기업은행장 임명을 강행했다. 지난해 1월 윤 기업은행장이 자신의 임명을 반대하는 노조와 대화를 시도하기 위해 서울 중구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사에 왔다가, 노조 측이 거부해 발길을 돌리는 모습. /정소양 기자 |
◆靑 출신 기업은행장, 박근혜 정부 때는 안 되고 지금은 된다?
주택금융공사는 2012·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했고, 2017년 대선에서 부산 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이정환 씨가 2018년 1월 사장으로 임명됐다. 상임감사는 지난 대선에서 선거 지원 활동을 한 이동윤 씨이며, 손봉상·조민주·서채란·이용한 비상임이사도 민주당 후보로 선거에 출마했거나 대선 지원 활동을 한 인사들이다.
자산관리공사 상임이사인 남궁영 씨는 민주당 소속 양승조 충남지사의 아래에서 행정부지사로 활동한 바 있고, 천정우 상임이사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예비후보로 출마한 경력이 있다. 또 박영미·박상현 비상임이사도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예비후보로 출마했거나, 선거 지원 활동을 펼쳤다.
신용보증기금 윤대희 이사장은 지난 대선에서 선거 지원 활동을 했으며, 서종식·최상현 비상임이사는 민주당 지역위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기술보증기금 박세규 상임감사, 이철원·강윤경·이병헌 비상임이사도 지난 대선 및 지방선거에서 선거 지원 활동을 한 바 있다.
이외에 주택도시보증공사 △신승근 비상임이사(새정치민주연합 전문위원) △김경지 비상임이사(민주당 지역위원장 후보) △임중모 비상임이사(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이재강 상임감사(지난 대선 선거 지원, 현 경기도 평화부지사) 전·현직 임원 4명과 한국부동산원 △이성훈 상임감사(민주당 대구시당 부위원장) △이세영 비상임이사(2016년 총선 선거 지원) △이윤구 비상임이사(민주당 양산갑 지역위 디지털소통위원장) △조남구 비상임이사(지난 대선 선거 지원, 현 부산시의원) 등 4명도 문 대통령 선거를 지원했거나 민주당에서 활동한 인사들이다.
특히 친정권 임원 중 8명(18%)은 임기 중 사임하거나 재임 중 선거에 출마해 경력관리형 낙하산 인사 관행이 문재인 정권에서도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산관리공사 박성현 전 이사는 민주당 부산시당 중소벤처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 출신으로 2018년 4월 6일 중앙당 부대변인에 임명된 직후 4월 12일 임기 2년의 자산관리공사 비상임이사로 취임했다. 같은 해 7월 부산 동래구 지역위원장으로 선출된 그는 이사 임기 만료 전 지난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민주당 중앙당 상근부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9년 4월 주택금융공사 비상임이사로 취임한 육동한 전 이사는 지난 총선 출마를 위해 중도 사임하고 강원도 춘천·철원·화천·양구갑 민주당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공천은 받지 못했다. 이후 지난해 6월 산업은행 사외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주택도시보증공사 이재강 전 감사는 2016년 총선에서 부산 서구·동구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2017년 대선에서 부산 선대위 상임선대본부장으로 활동했다. 2018년 3월 주택도시보증공사 상임감사로 취임한 그는 2019년 12월 사임하고, 지난 총선에 출마했다가 또 다시 낙선했다. 이후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자리를 옮겼다. 김경지 이사는 2018년 부산 금정구 지역위원장 공모에 참여했다가 떨어지고, 2019년 4월 비상임이사로 취임했다. 이사 취임 직후인 6월 다시 지역위원장 공모에 응해 임명을 받았고, 지난 총선에서 부산 금정구 후보로 단수공천을 받았으나 개인 신상 문제로 공천이 취소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권하에서 불공정과 불의, 낙하산 인사가 어떻게 자행되고 그 속에서 어떤 비리들이 저질러져 왔는지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낱낱이 밝히겠다"고 예고했다. 김 원내대표가 지난 1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는 모습. /남윤호 기자 |
◆친정권 임원 18%, 금융권 임원은 선거 경력관리용?
한국부동산원 조남구 전 이사는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 전재수 후보 선거대책위원장, 2017년 대선 부산 북강서갑 선대위본부장으로 활동했다. 이후 2018년 5월 한국부동산원비상임이사로 취임했으나, 곧바로 2018년 지방선거에 출마해 부산시의회 의원에 당선되어 한 달 만에 사임했다. 이세영 이사는 2016년 총선에서 이해찬 후보 공동선대본부장으로 활동했고, 같은 해 9월 세종시 시설관리공단 비상임감사로 임명됐다. 한국부동산원에는 2018년 5월 비상임이사로 취임, 지난해 6월 연임됐으나 올 초 사퇴했다.
기술보증기금 강윤경 이사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의원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하고, 2019년 1월 기술보증기금 비상임이사에 취임했다. 2019년 6월 부산 수영구 지역위원장에 선출된 후 지난 총선에서 부산 수영구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와 관련 이승희 정치개혁연구소 연구위원과 채이배 전 의원은 "정부의 영향력이 강하고 시장의 감시를 받지 않는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 관행을 확인할 수 있다"라며 "경력관리형 낙하산 인사 관행이 여전한데, 정치권 인사로서 전문성이 결여된 경우에는 더욱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추한 문재인 정권이 자신을 분칠하는 데 사용해 온 '공정과 정의'라는 단어가 얼마나 허구에 찬 것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라며 "문 대통령은 취임 초 '공기업 낙하산·보은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한 바 있었지만, 가짜 뉴스였다. '사람이 먼저'라고 했지만, 실상은 자신을 지지하는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가 먼저'였고, 캠코더가 아니면 그저 한낱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한 소모품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원내대표는 "그야말로 신적폐 세력들로 인한 '거짓과 위선의 시대'"라며 "문재인 정권하에서 불공정과 불의, 낙하산 인사가 어떻게 자행되고 그 속에서 어떤 비리들이 저질러져 왔는지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낱낱이 밝히겠다"고 예고했다.
☞<하>편에선 공기업 낙하산 인사에 대한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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