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열의 '靑.春일기'] 의혹·불신 키우는 청와대의 '선택적 소통'
입력: 2021.09.03 05:00 / 수정: 2021.09.03 05:00
청와대의 선택적 소통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의혹을 키우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청와대 전경. /임영무 기자
청와대의 선택적 소통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한 의혹을 키우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청와대 전경. /임영무 기자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청와대 취재기자의 주관적 생각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북한 핵 시설 재가동', '유엔 언중법 반대' 감추려다 들통…불신 자초

[더팩트ㅣ청와대=허주열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선택적 소통'이 의혹과 불신을 키우고 있습니다. 잘한 일을 잘 알리는 것과 잘 안 되는 일에 대한 이유를 밝히는 것 모두 중요한데 전자만 앞세우다가 스스로 논란을 키우는 일이 최근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냅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연례보고서를 통해 북한 영변의 5MW 원자로가 지난 7월 초부터 냉각수를 포함해 재가동 된 징후가 포착됐다고 밝혔습니다.

대북제재 완화를 원하는 북한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또다시 '영변 핵 카드'를 꺼내 든 것입니다. 이 자체도 문제지만, 더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 정부가 이 사실을 미리 알면서도 감춘 의혹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영변 핵 시설 재가동 사실을 알면서도 남북 통신선 복원(7월 27~8월 9일 일시 복원, 한미 연합훈련 계기로 다시 단절)을 무리하게 추진하고, 대북 인도적 협력을 강조하면서 남북 관계가 곧 개선될 것처럼 홍보한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센 상황입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남북 통신 연락선 복원 시점에 정부가 (영변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그 정보 사안에 대해서는 저희가 일일이 확인해 드리기는 어렵다"며 "북한의 핵 활동, 미사일 동향은 한미 정보 당국이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어떤 조치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엔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가 지속되는 상황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북 관여가 그만큼 시급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라며 "한미 간 일치된 인식을 바탕으로 북한과 대화를 적극 모색해 나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청와대도 인정한 중대한 사안을 IAEA발로 국내에 알려진 이후에서야 해당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제한된 정보만 밝힌 것입니다. 당장 야당에선 "중요 사안은 국민에게 보고하겠다며 투명한 국정을 약속했던 대통령은 어디 갔나", "정부가 북한의 원자로 재가동 징후를 알고도 통신선 복원, 남북 지원 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다면 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포기한 것이다" 등 날 선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남북 통신선 일시 복원이라는 선택적 정보만 대대적으로 홍보했다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고 체면을 구긴 셈입니다.

지난 3월 2일 맥사 테크놀로지가 제공한 북한 평안북도 영변 핵 시설 단지 위성사진. /AP.뉴시스
지난 3월 2일 맥사 테크놀로지가 제공한 북한 평안북도 영변 핵 시설 단지 위성사진. /AP.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강행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관련해서도 당·정의 선택적 침묵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한 공문을 민주당은 당초 강행 처리를 예고했던 날인 지난달 30일까지 의원들에게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청와대는 유엔이 서한을 공개한 이후 "현재는 국회 논의 과정 중에 있고, 국회의 시간이고,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라며 "유엔의 서한에 대해서는 국회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 결과에 따라서 해당 부처와 협의해 답변할 것"이라고 말을 아꼈습니다.

이와 관련 언론중재법 협의체에 참여하는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유엔은 (당초 예고됐던 30일) 표결 전에 국회의원들에게 이 서한을 알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는데, 31일까지 감추다가 유엔이 공개하자 문체부에서 뒤늦게 저희 의원실에 원본을 보내주었다"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당·정·청이 언론중재법 강행에 대한 유엔의 우려를 최대한 감추려 한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선택적 정보 제공은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언론중재법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불신이 생기게 하는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권에 악재인 불리한 일에는 입을 닫고, 유리해 보이는 사안에만 입을 여는 행태는 계속 반복돼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불신으로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불신이 커져 음모론으로 발전할 때 쯤에는 "가짜 뉴스다"라는 반발이 정권 인사들 사이에서 나옵니다. 근거 없는 음모론과 가짜 뉴스가 문제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초기에 해소할 수 있었던 의혹이 점점 커져 '불신→음모론→가짜 뉴스'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선택적 소통의 문제는 없었는지는 한 번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반도에 평화를 이루고, 일부 잘못된 언론의 행태를 개혁하겠다는 대의에 반대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정당화 되기 어렵습니다. 불리한 정보는 감추고, 유리한 정보만을 제시하는 선택적 소통은 스스로 신뢰만 떨어뜨릴 뿐이라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sense83@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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