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오른쪽) 국민의힘 선거관리위원장은 "경준위 안을 전부 다시 검토하겠다"며 '역선택 방지' 조항을 포함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시사했다. 그러나 당내 주요 후보들이 정 위원장이 특정 후보를 위해 룰을 손대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선화 기자 |
유승민 "경선 판 깰거면 선관위원장 사퇴하라"
[더팩트ㅣ곽현서 기자] 국민의힘 대선 경선 버스에 제동이 걸렸다. 경선 여론조사에서 여권 지지층이 야권 후보를 선택하는 '역선택 방지조항' 도입 여부를 놓고 당 대선주자 간 의견이 엇갈리면서다. 경선 룰 갈등은 당 선거관리위원회 공정성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새롭게 선관위원장을 맡은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기존 경준위와 달리 역선택 방지 조항 도입을 시사하면서 내홍이 번지고 있다. 정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경준위가 준비한 안은 하나의 안에 불과하다"며 "선관위는 경준위 안을 전부 다시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앞서 서병수 국민의힘 경준위원장은 역선택 방지 조항을 도입하지 않기로 해 당 최고위의 추인을 받았었다.
그러자 유승민 전 의원과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경준위 룰을 수정하지 말라며 엄포하고 나섰다. 유 전 의원은 "대선 여론조사에 '역선택 방지'를 운운하는 건 정권 교체를 포기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역선택 방지를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윤석열 후보 측"이라며 "의심받고 싶지 않다면 경준위가 결정하고 최고위가 추인한 경선 룰에 손대지 마십시오"라고 선관위에 경고했다. 정치권에서 정 위원장이 윤 후보를 지지한다는 파문이 일자 이를 꼬집은 것이다. 홍 의원은 "경선위가 어떻게 하면 특정 후보에 유리한지 시뮬레이션하는데 힘을 쏟지 마라"며 "상식에 어긋나는 반쪽 국민 여론조사 도입 시도는 이제 그만 두라"고 말했다.
반대로 최 전 원장 측은 꾸준히 역선택 방지조항 도입을 주장해 왔다. 최 전 원장 캠프의 이규양 언론 특보는 지난달 31일 논평을 발표해 "국민의힘 경선에는 이미 강성 친문 세력이 뛰어들어 경선 열차가 출발도 하기 전에 경선 판도의 지축을 흔들어 놓고 있다"며 역선택 방지는 원칙의 문제이자 당위"라고 주장했다.
최 전 원장 캠프 기획총괄본부장인 박대출 의원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언급되는 역선택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여론조사 수치에서 역선택 현상이 점점 강하게 의심되고 있다"며 "역선택 방지 조항은 본선에서 확실히 이길 수 있는 후보를 고르는 필승의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하게 역선택 방지조항을 주장하는 최 전 원장 측과 달리 윤 전 총장은 역선택 방지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입장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윤 전 총장은 지난달 28일 "(경선)룰에 관해선 위원회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하지만 선관위가 역선택 방지조항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여론은 사실상 윤 전 총장도 이에 동의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는 순간 공정한 경선은 끝난다"며 정 위원장을 향해 "경선판을 깨겠다면 선관위원장을 사퇴하라"고 비판했다. /이선화 기자 |
대선주자 간 신경전이 가열되는 배경에는 각 후보들이 여론조사에서 실시하는 '역선택'을 두고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역선택'이란 경쟁 정당 지지자들이 다른 정당 선거에 참여해 투표 결과를 왜곡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윤 전 총장과 최 전 원장 측은 현재 국민의힘 경선 룰엔 역선택 방지 조항이 없어 민주당 지지자들이 개입해 공정한 경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어 '역선택 방지조항'을 경선 룰에 포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윤 전 총장 지지자들은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홍 의원이 호남권에서 윤 전 총장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자 "호남권에서 장난질한 것"이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홍 의원의 호남 우위론은 범여권 색이 짙은 호남권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후보인 홍 의원에 응답했다는 주장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TBS 의뢰로 지난달 27~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5명을 상대로 조사한 '범보수권 대선 후보 적합도' 결과, 윤 전 총장 지지율은 25.9%, 홍 의원은 21.7%를 기록했다. 윤 전 총장은 전 주 대비 약 2.5%p 하락한 반면, 홍 의원은 약 1.2%p 상승하며 턱 끝까지 추격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광주/전라 호남 지지율에서 윤 전 총장은 11%, 홍 의원은 25.2%를 기록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나 한국사회연구소 누리집 참조).
이러한 지적에 홍 의원은 지난달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어이없는 논쟁"이라며 "대선 투표는 우리끼리 하는 것이 아니다. 호남 우위론에 대한 비판은 경선판을 깨고 대선판을 망치려는 이적 행위에 불과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역선택이 여론조사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홍 의원의 지지율 상승세가 정말 역선택의 영향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실제 지지율 상승에서 역선택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다른 후보들도 역선택 효과를 받은 것을 과소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은영 휴먼앤데이터 소장은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가 등장하는 시점부터 호남권에서 국민의힘 지지자가 늘어나는 양상을 보인다"며 "특히 호남권 내 젊은 지지층들 사이에서 윤 전 총장보다 홍 의원을 지지하는 세력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역선택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지만 이것은 범죄 행위이며 실제로 경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한편 1일 오후 국민의힘 선관위는 쟁점이 되고 있는 '역선택' 조항을 두고 찬성 측과 반대 측의 입장을 청취하겠다며 각 후보 측 대리인들을 소집했다. 여론조사 '역선택 방지 조항'을 찬성하는 측에는 윤석열·최재형·황교안 3개 캠프 대리인이, 반대 측에는 홍준표·유승민·하태경·장성민·장기표·박찬주·안상수·박진 8개 캠프 대리인이 1시간 30분의 시간 차를 두고 참석했다. 원희룡 후보 측은 선관위 결정에 따르겠다며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