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31일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극적 합의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날 국회의장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의사일정에 합의한 후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는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국회사진취재단 |
文대통령 부담·대선 경선 흥행 부진 우려 작용한 듯…'출구' 전략 분석도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다음 달 27일 본회의에 상정, 처리하기로 합의하면서 국회 정상화의 물꼬를 텄다. 강하게 대치하던 여야가 이날 극적 합의를 이룬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는 31일 양당 의원 각 2명과 각 당이 추천한 언론계, 관계 전문가 2명씩 총 8명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구성해 관련 법안 내용을 논의하기로 했다. 이 기간에 합의안을 도출하면 다음 달 27일 본회의에 상정,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극적 타결의 배경으로는 강경론을 주도했던 민주당 지도부의 입장 선회가 가장 컸던 것으로 보인다.
당 지도부는 언론중재법 '8월 내 처리' 방침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송영길 대표는 지난 30일 민주당 인사들과 만난 자리에서 "언론중재법을 포함한 모든 결정은 내년 대선에, 또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 상임고문은 물론 민변⋅민언련⋅정의당 관계자도 잇따라 면담했다. 언론계, 국제사회는 물론 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이어지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해 임대차 3법 강행 처리 등 '입법 폭주'가 4·7재보궐 선거 참패 요인으로 분석된 만큼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중도층 확장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상임고문인 유인태 전 의원은 30일 송 대표를 만나 "4·7 재보선 참패의 원인이 뭐냐. 180석의 위력을 과시하고 독주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심판받은 것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속도조절론'에 대한 청와대의 암묵적 동의 분위기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전날(30일) 여야가 대치하는 가운데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국회를 찾아 윤호중 원내대표와 의견을 나눴다. 정치권에서는 '언론중재법' 처리 방안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전하러 온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날 여야 합의문 발표 후 문 대통령은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이고, 국민의 알 권리와 함께 특별히 보호받아야 한다"며 "여야가 추가적 검토를 위해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역시 각계와 소통을 통해 합의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힘을 실은 것이다. 민주당이 언론중재법을 강행 처리할 경우 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야권과 언론계가 압박한 점도 부담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31일 여야가 '언론중재법' 관련해 극적 합의하면서 본회의가 개의됐다.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신임 정무위원장으로 선출된 윤재옥 국민의힘 의원이 인사말 하는 모습. /국회=남윤호 기자 |
이번 합의로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9월 정기 국회 협상 과정에서 야당과 대화를 넓힐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5선 중진 이상민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문 대통령 임기가 대선까지) 6~7개월 정도 남았다. 아무래도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며 "문재인 정부로서는 이번 (정기국회를) 잘 마무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 것이다. 만약 예산국회가 파행되면 여당이 다수 의석이니까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겠지만 다음 정부에 파열음을 이어받게 하는 요인도 될 수 있다"고 했다.
7개월 앞으로 다가온 내년 대선을 앞두고 '언론중재법'에 대한 관심으로 뒤덮이면서 여야 모두 대선 경선 흥행 부진에 대한 고민도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야권 입장에서는 '언론개혁'에 대한 국민 열망이 있는 만큼 대안 없는 '발목잡기'로는 당에도 득이 될 것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고진동 정치평론가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대선 국면에서 정면충돌을 피한 것이다. 경선 흥행을 일으켜야 하는데 언론중재법이 발목을 잡는 형국이니 본말이 전도되는 상황이다. 야당 역시 국민이 언론개혁을 바라고 있는데 무조건 반대하면 생떼 쓰는 모습이라 이익이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계산, 경선 흥행 등을 고려했을 것이다. 이 같은 양쪽의 이해가 맞물려 일단 확전을 피하고 휴전기에 여론 추이를 보자는 것으로 합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번 합의는 임시 타결일 뿐 협의 과정에서 언론중재법에 대한 여야 견해차가 커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에서는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라는 출구 전략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상정을 예고한) 한 달 뒤는 대선 후보 윤곽이 잡히고 국정감사 기간에 돌입하면서 지금보다 여야가 더 대치할 것이다. 지금 지도부의 강한 의지로도 추진이 안 되는데 대치 국면에서 이 문제를 돌파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다만 문 대통령이 강하게 요청하거나 '언론개혁'에 대한 여론이 조성되는 등 새로운 변수가 나오면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