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스테판 반셀 모더나사 CEO와 화상 통화하고 있다. 당시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모더나 백신 2000만 명분을 확보했고, 2021년 2분기부터 국내에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
지켜지지 않는 약속, 말 바꾸기에 커지는 불안감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스테판 반셀 모더나사 CEO가 27분간의 통화에서 우리나라에 2000만 명 분량인 4000만 도스의 백신을 공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중략) 백신 공급 시기도 앞당기기도 했습니다. 모더나는 당초 내년 3분기부터 물량을 공급키로 했으나 2분기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정부와 모더나는 공급 시기를 더 앞당기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을 하기로 했습니다."
백신 확보 및 접종에 대한 우려가 컸던 지난해 12월 29일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2000만 명분의 모더나 백신을 확보했고, 올 2분기부터 국내에 공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분기까지 국내에 들어온 모더나 백신은 11만1000회분에 그쳤다. 이후 7월 말까지 들어온 물량은 104만 회분으로 문 대통령이 약속한 4000만 회분의 3%도 안 되는 수준이다.
모더나발 백신 수급 혼란은 진행형이다. 방역당국은 지난 19일 7월 셋째 주에 공급받기로 한 모더나 백신이 7월 마지막 주로 연기됐다고 밝히면서 7월 공급 물량 자체에는 변동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27일 "모더나사 측에서 7월 공급 예정이던 백신 물량 생산 차질로 공급일정 조정을 '통보'했다"라며 "7월 말 공급 예정 물량을 8월로 조정됐다"고 말을 바꿨다.
이에 따라 당초 7월 26일부터 모더나를 접종받을 예정이었던 55~59세 가운데 수도권 접종자는 화이자로 백신이 바뀌었다. 8월 초 접종자들도 화이자를 접종받을 예정이다. 정부는 8월 구체적 접종 계획은 오는 30일 발표할 예정이다.
모더나 수급 불안을 화이자가 메우게 되면서 화이자는 2차 접종 간격을 3주에서 4주로 늦추기도 했다. 화이자와 함께 3분기 백신 접종 계획의 두 축 중 하나인 모더나 공급을 둘러싼 혼란이 지속되면서 정부가 예고한 11월 집단면역 달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1, 2차 백신 접종 간격이 바뀐 것은 화이자가 처음이 아니다. 방역당국은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 간격을 당초 8주로 정했다가, 1주일 뒤 10주 간격으로 바꿨고, 2분기 백신 부족 현상이 심각해지자 다시 12주로 늘렸다.
또한 방역당국은 백신 수급 불안, 혈소판 감소성 혈전증 발생 우려 등을 7월 이후 AZ 2차 접종을 받을 예정이었던 50세 미만(161만5000명)에는 화이자 교차접종으로 바꾸기도 했다. 바른의료연구소에 따르면 교차접종은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국가들이 주로 채택하고 있다.
'고3 학생 및 고교 교직원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 19일 서울 양천구 해누리 타운에서 일반접종 대상자들과 고3학생 교직원들이 접종을 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
이 가운데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모더나 백신 공급 지연에 대한 국민 우려를 안심시키려다가 비밀유지협약을 어겼다는 논란까지 제기됐다.
송 대표는 28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모더나 백신 공급 지연에 대해 유럽 생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설명하면서 "25일 75만 회분, 31일 121만~196만 회분을 받기로 한 게 연기됐다"라며 "어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모더나 측과 긴급 영상회의를 해서 다음 주에 일단 130만~140만 회분을 제공받는 것으로 이야기됐다. 8월 850만 회분은 예정대로 들어온다"고 밝혔다.
이같은 구체적 백신 도입 수량에 대한 정보는 송 대표가 처음 언급한 것이다. 이에 대해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부분이 다른 경로로 공개된 것에 대해 다소 유감을 표한다"며 "기본적으로 계약물량의 구체적 물량을 밝힐 수 없다는 부분에서 비밀유지협약 대상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보고 있다. 이 물량을 섣부르게 공개하는 것에 따른 페널티 위험 등을 고려할 때 현재 확정적으로 공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손 반장은 비밀유지협약을 위반했을 때 한국 정부가 받는 페널티에 대해 "공급 일정을 제약사와 재조정하거나, 공급 물량을 조정할 수 있게 돼 있다"며 "(제약사가) 공급을 아예 중단할 수도 있고, 공급을 중단한다 하더라도 (백신) 대금을 그대로 지불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고 했다. 여당 대표의 발언을 모더나 측에서 협약 위반으로 판단할 경우 돈은 주고 백신 공급은 못 받거나, 공급 중단 및 연기될 수도 있는 셈이다.
백신 공급 혼선, 계획 변경 등이 있을 때마다 방역당국은 9월 내 1차 접종률 70% 및 11월 집단면역 달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임박해서 발표되는 접종 계획 일정과 잦은 계획 변경 등으로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고강도 거리두기와 조속한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백신 통계상 아직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신규 확진자가 역대 최다를 기록한 28일 0시 기준 접종 누적 1차 접종자는 1790만2938명, 2차 접종자는 697만2670명으로 인구 대비 접종률은 각각 34.9%, 13.6%다. 한 달 전(6월 29일 0시)과 비교하면 누적 1차 접종률은 5.1%, 2차 접종률은 4.3% 늘어나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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