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1년 만에 법안 1만 건 쌓였다…과잉 입법 여전
입력: 2021.07.01 05:00 / 수정: 2021.07.01 05:00
21대 국회 개원 1년 만에 국회의원의 대표발의 법안 수가 1만 건을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본회의장. /남윤호 기자
21대 국회 개원 1년 만에 국회의원의 대표발의 법안 수가 1만 건을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본회의장. /남윤호 기자

"입법 과시, 불신 정치의 뒷면…신뢰 회복이 근본 해결책"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21대 국회 개원 1년 만에 국회의원의 대표발의 법안 건수가 1만 건을 돌파했다. '일하는 국회'를 외치더니 '열일(열심히 일하다)'의 결과물인 걸까. 자세히 들여다보면 쪼개기, 양치기(기존 법안에서 자구수정, 용어 등 약간만 바꾼 후 재발의 해 양을 늘리는 모습) 법안도 적지 않다. '양보단 질'. 입법의 질을 높이려면 과다 발의를 자제해야 한다는 비판 목소리에도 '입법 공장'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의원 대표발의 건수 1만145건...20대 국회 대비 51% 증가

16대 국회부터 법안 발의 건수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20대 국회의 법안 발의 건수는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21대 국회는 이 기록을 가뿐히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달 2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12개월(2020년 5월 30일~2021년 6월 24일) 동안 제출된 의원 대표 발의 법안은 총 1만145건으로 집계됐다. 20대 국회가 같은 기간 6682건 제출한 법률안과 비교하면 51% 늘었다.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의원 대표발의 법안 전체 수(1만1191건)에 육박한다.

<더팩트>가 21대 국회 개원 이후부터 지난달 24일까지 국회에 제출된 의원 1인당 대표 발의 법안 건수를 자체 분석한 결과, 상위 10인은 △민형배(140건) △정청래(137건)△송옥주(121건) △정춘숙(118건) △이용우(94건) △윤준병(93건) △서영교·이종성(88건) △임오경(86건) △강기윤(84건) 의원 순이다. 하위 10인은 △박병석·김웅(0건) △이낙연(1건)△김의겸(3건) △김태년·윤건영(3건) △조수진·이상직(5건) △김진애·홍영표(6건) 의원 등이다.

국회 본회의 처리 법안 수는 △송옥주(35건) △임오경(33건) △임이자(27건) △서영교(26건) △이용우(23건) 순이며, 발의 법안 수 대비 본회의 가결률은 △이낙연(100%) △천준호(75%) △고용진(55%) △박덕흠(52%)△배현진(50%) 의원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대표발의 상위권인 일부 의원들의 법안 중에는 한글화 법안, 이른바 복붙 법안도 다수 있었다.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는 정청래 의원. /남윤호 기자
대표발의 상위권인 일부 의원들의 법안 중에는 '한글화' 법안, 이른바 '복붙' 법안도 다수 있었다.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는 정청래 의원. /남윤호 기자

하지만 입법 '양'이 '질'을 담보한다고 보긴 어렵다. 법안을 뜯어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의 경우, 같은 내용을 여러 관련법에 걸쳐 적용하는 이른바 '복붙(복사해 붙이기)' 법안이 16건인 것으로 파악된다. 코로나19 관련 질병 또는 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 시설이 취해야 할 대응 조치와 지자체 보고 등을 의무 규정한다는 동일한 내용을 장애인, 영유아, 노인 등 각 시설별로 적용하는 식이다. 또, 법안의 일본식 용어를 '한글화'하는 법안이 12건이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한글화' 법안도 25건이었다. '감안'을 '고려'로, '입회'를 '참관'으로, '지불'을 '지급'으로 바꾸는 식이다. 일본식 한자어나 어려운 용어를 바꾸는 법 개정도 의미 있다. 하지만 이미 지난해 10월 국회 법제처와 국립국어원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별로 일괄 개정한다는 추진 계획을 밝힌 바 있어 개별 의원들의 '한글화' 개정안은 '입법 실적 채우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을 제외하고 법안을 대표 발의하지 않은 유일한 의원이다. 그는 실적내기 식 법안을 남발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이달 중 '정보경찰 폐지법안'을 1호 법안으로 발의할 예정이다. 정보 경찰을 폐지하고, 국무총리실 소속 관련 부서를 신설해 관련 업무를 담당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가안전정보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다. 김 의원실 관계자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고 후폭풍 우려가 있어 발의가 쉽지 않다. 그만큼 의미가 있어 1호 법안으로서 무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21대 국회 개원 이후 대표 발의한 법안이 아직 없다. /이선화 기자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21대 국회 개원 이후 대표 발의한 법안이 아직 없다. /이선화 기자

◆"정당·언론·시민단체 '정량평가' 자제해야...정치 신뢰 회복 우선"

과잉 입법이 지속하는 이유는 입법 성과가 의원의 의정활동 평가에 반영된다는 점이 가장 크다. 특히 정당 내에서 대표 발의 건수는 공천 심사 과정 등에서 의정활동 평가 기준으로 활용된다. 실제로 21대 총선 전 실시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평가 시행세칙'에 따르면 의정활동평가 항목에 대표발의 법안 수, 대표발의 법안 입법완료 수, 대표발의 법안 당론법안 채택 수를 지표로 평가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의힘도 법안 발의 수가 의원 평가에 반영된다.

국민의힘 소속 한 보좌진은 "조직국에서 당무감사할 때 법안 발의 수를 본다. 또 (공천 때) 공천관리위원회가 구성돼 의원이나 원외위원장을 평가할 때 계량화해 보는 걸로 안다"고 했다. 다만 정의당은 중앙당의 의원 평가가 따로 없다. 박원석 정의당 사무총장은 "법안은 기본적으로 의원들의 자율적인 영역이고 책임이자 권한이다. 원내 활동을 당 차원에서 지원하고 소통하는 의정지원단은 있지만 (법안 발의 수를) 당이 따로 평가하는 건 없고 공천 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정당 외에 언론, 시민단체 등이 의원을 평가할 때도 법안 발의 수, 처리 법안 수 등 '정량평가'는 단골 기준이다. 정성평가로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정량평가' 해오던 국회 사무처는 과잉 입법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시도 중이다. 법안이 폭증해 국회 입법 시스템상 제대로 심사를 받지 못하면 졸속 법안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부터 '입법 및 정책개발 우수 국회의원' 평가 과정에 법안 가결건수 및 회의출석률 등 양적 기준을 집계하는 정량평가 항목을 폐지했다.

과잉 입법을 자제하기 위한 의원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19대 국회에서 당시 새누리당 이한구 의원은 국회에 규제를 신설·강화하는 법안을 제출할 경우 규제사전검토서를 첨부하고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해당 법안을 심사할 때 규제영향평가를 거치도록 한다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도 제출했지만, 아직 소관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민주당도 21대 국회 1호 당론으로 추진한 '일하는 국회법'에 법안 발의 시 입법영향분석서를 제출토록 한다는 내용을 담았지만, 역시 "의원 입법권을 침해한다"는 목소리가 커 무산됐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해 5월 발간한 '입법영향분석을 통한 더 좋은 법률 만들기'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이미 '사전입법영향평가 분석제도'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의원들의 입법 과시는 국민의 정치 불신에서 비롯됐기에 신뢰 회복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상훈 국회 미래연구원 거버넌스그룹장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가장 먼저 서로 다른 차이와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 기능이 복원돼야 한다. 법안 폭증으로 입법 성과를 과시하는 것은 정치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의 뒷면이다. 정치에서 꼭 필요한 협력이나 조정이 약해지고 법안 숫자 경쟁만 하게 되는 것"이라며 "또 정성평가 등으로 인위적으로 (법안 수를) 줄이려고 하면 부작용을 만들 수 있다. 평가하는 순간 딜레마에 빠진다. 정당 내에서 누구에게나 객관화가 가능한 공정한 평가가 가능할까. 국회는 입법 공장이 아니다. 다양한 의견이 숙의되고 심의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법안 수나 가결을 너무 중시하면 안 된다. 정치는 책임 있게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 정량적 경쟁이나 과도한 평가는 자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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