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낙태법' 국회 뒷짐에 여성·의료계 피해
입력: 2021.06.27 00:00 / 수정: 2021.06.27 00:00
헌법재판소가 2019년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지난해 12월31일까지 해당 법조항을 개정하라고 주문했지만, 아직까지 대체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가 직무유기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팩트 DB
헌법재판소가 2019년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지난해 12월31일까지 해당 법조항을 개정하라고 주문했지만, 아직까지 대체 입법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가 직무유기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팩트 DB

조속한 대체 입법 목소리 커…형법·모건법 표류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국회가 낙태죄 개정에 손을 놓으면서 의료계 혼란과 여성의 건강권·재생산권·자기결정권이 침해가 커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형법상 자기 낙태죄와 의사낙태죄 처벌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위헌으로 판단했다. 또한 임신 초기 3개월 이내 배아 낙태는 허용해야 한다면서 국회는 지난해 12월 31일까지 해당 법조항을 개정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시한 내 대체입법은 이뤄지지 않았고, 낙태죄 처벌조항은 효력을 잃었다. 때문에 올해부터 낙태죄와 관련한 형사처벌을 할 수 없게 됐다. 실제 지난 2월 대법원은 1·2심 판결을 뒤집고 낙태시술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산부인과 의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정부안 외에도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반영한 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2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고, 안전한 인공임신중단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6건 발의된 상태다.

일부 법안에서 구체적인 내용이 주목된다.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11월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태아의 심장박동 시점을 기준으로 임신 10주 이내 임신중지를 전면 허용하되, 예외적으로 임신의 지속이 태아와 여성의 건강에 중대한 위험이 되는 경우 임신 20주의 범위 내에서 낙태 시술을 인정하자 내용이 골자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고려한 방안이다.

바른인권여성연합은 "많은 국민이 최소한 심장박동을 근거로 생명을 인식하는 보편적 기준에도 부합하며, 여성이 자신의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간을 최대로 보장하고 있다"며 "특히 대한산부인과학회에서 권고하는 10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함으로써 여성의 건강권을 배려한 매우 합리적인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낙태죄를 형법에서 완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도 있다. 여성운동가 출신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낙태죄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낙태 처벌 및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제한하는 규정을 폐지하고, 수술과 약물 등에 의한 방법으로 인공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허용주수나 사유 제한 없이 충분한 정보 제공과 지원을 통해 임산부의 판단과 결정으로 의사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권 의원실 관계자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낙태죄가 있을 때도 이미 임신중절은 사문화된 상태였고 음지에서 많이 이뤄졌다"며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 하나의 의료서비스로 제공돼야 하는 측면에서 형법상 처벌 조항을 남길 이유가 없고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체 입법 부재로 의료계 혼란과 여성의 건강권·재생산권·자기결정권이 침해받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뒷짐만 지고 있는 모양새다. /남윤호 기자
대체 입법 부재로 의료계 혼란과 여성의 건강권·재생산권·자기결정권이 침해받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뒷짐만 지고 있는 모양새다. /남윤호 기자

여성 인권과 건강권을 보장하고 의료계 혼란을 줄이기 위해 낙태죄 폐지 후속 법안이 시급한 상황인데도 진전은 없다. 낙태죄 형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보건복지위원회 표류하고 있으며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법사위 측에 따르면 조만간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오른 형법 개정안을 다룰 계획이다.

그렇더라도 입법 공백은 장기화 흐름을 보인다. 헌재의 결정 이후 법적 공백에 따른 사회적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속히 관련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던 여야는 약속을 어긴 셈이다. 대체 입법 부재로 의료계 혼란과 여성의 건강권·재생산권·자기결정권이 침해받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뒷짐만 지고 있는 모양새다.

국회가 미적대는 배경에는 생명 윤리라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낙태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낙태 반대 측에선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존중이라는 우리 헌법의 정신에 입각하면, 낙태죄를 존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성계와 의료계 등 각계에서는 조속한 국회의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의료계 기준과 지침 등을 법률로 정해 안전한 의료시스템을 정비하는 한편 임신 초기 약물을 이용한 낙태 근절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입법 공백 상태가 지속되면서 국회와 정부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행동하는프로라이프 사무총장 연취현 변호사는 통화에서 "국회가 일부러 후속 입법에 손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라며 "사회적 지도층인 국회의원들이 국민적 (세부적인 개정 방향 등) 합의점을 찾아갈 수 있도록 같이 의논해야 하는데 이걸 피하고 있다. 국민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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