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차별 찬성하는 사회', 이준석과 박성민은 다르다
입력: 2021.06.27 00:00 / 수정: 2021.06.27 00:00
박성민(오른쪽) 청와대 청년비서관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2030 여론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당선 때와는 달리 분노와 박탈감을 토로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국회사진취재단
박성민(오른쪽) 청와대 청년비서관을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2030 여론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당선 때와는 달리 분노와 박탈감을 토로하고 있다. /이선화 기자·국회사진취재단

정치권이 풀어나가야 할 '차별 공정의 문제'

[더팩트|국회=문혜현 기자] "벼락 승진이 공정한가."

청와대의 박성민 청년비서관 임명을 향한 세간의 시선이 차갑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2030 청년 세대에서도 평범한 박 비서관이 '깜짝 발탁' 되는 바람에 '벼락 백수'가 됐다는 반응이 다수다. 그의 임명에는 '박탈감'이라는 거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정치권엔 최근 '젊은 바람'이 불고 있다. 30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당선으로 '파격', '세대교체'는 정치권의 과제이자 지향점이 되어가고 있다. 이 대표는 '선출직'으로 공정한 선거를 통해 뽑혔다. 2030세대의 열렬한 지지가 터져나왔고, 이는 국민의힘 당원 가입으로 이어졌다.

박 비서관을 비판하는 여론은 대학생 신분으로 1급 상당 고위직에 발탁돼 '자격 미달'이라고 지적한다. 청와대가 보수 진영 변화에 위기감을 느껴 '젊은 바람'을 따라가고자 박 비서관을 임명했다는 성토가 이어졌다. 하지만 박 비서관은 민주당 공개 오디션을 통해 청년 대변인에 발탁됐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제에서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일했다.

비판이 쇄도하자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야권의 이준석 대표를 내세워 박 비서관을 높이 평가했다고 엄호했다. 그는 지난 24일 JTBC '썰전'에 출연해 "이 대표도 사담으로 편하게 주고받을 때, 이른바 여권에 속해 있는 청년 인사들 중에 여성으로는 박성민이라는 사람이 '괜찮다', '훌륭하다고 본다'라고 했다"며 "우리가 보는 눈도 크게 다르지 않구나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이 수석은 "청년들이 갈증을 느끼고 '우리가 하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워낙 강했다"며 "청년들의 목소리에 호응하기 위해서 당사자를 (비서관) 지위에 앉힌 거고, 또 박 비서관은 정치권에서 다양하게 활동하며 검증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26살이라는 나이에 너무 일찍 고위직으로 간 것 아니냐는 비판도 겸허히 듣겠다"면서도 "당분간만이라도 지켜보고 그 친구가 (비서관을) 시킬 만한 사람인지 제대로 보고 평가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주시면 좋겠다. 그때 만일 실망시켜드리면 제가 책임지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자격과 스펙이 판치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박성민(사진) 벼락 승진 이슈로 정치권은 2030 세대의 차별적 공정론과 맞닥뜨렸다. 이제는 정치권이 답할 차례다. /청와대 제공
자격과 스펙이 판치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박성민(사진) 벼락 승진' 이슈로 정치권은 2030 세대의 '차별적 공정론'과 맞닥뜨렸다. 이제는 정치권이 답할 차례다. /청와대 제공

이 수석의 해명에도 박 비서관을 향한 차가운 여론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5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박 비서관의 해임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공무원 준비에 나선 청년이라고 밝힌 A 씨는 '박성민 청년비서관 해임을 청원합니다'란 제목의 청원에서 "평범한 청년으로서 그 뉴스를 보고 가장 주되게 느꼈던 감정은 박탈감, 회의감, 무력감, 허무함이었다"며 "공무원이라는 체계가 계급체계인 만큼 한 급수씩 올라갈 때마다 상당히 긴 시간과 노력, 실력이 뒷받침되어야하는 시스템이고 이를 규정하는 엄연한 규칙들이 있는데 정부의 이번 결정은 이러한 모든 체계들을 무시한 처사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런데 어떠한 시험도, 어떠한 공정하고 공개적인 실력 검증도 없이 공무원으로서 경험이 전무하고 당에서 2년 남짓 활동을 한 게 전부인 전 박성민 최고위원이 공무원 최고 급수인 1급 자리에 놓인 것은 매우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박 비서관을 둘러싼 자격 논란을 보며 오래 전 읽으며 무릎을 쳤던 책이 하나 기억났다. 사회학자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는 무한 경쟁 시대에 내몰린 청년들의 자화상을 다각도로 비추고 탐구한다.

출판사 서평에선 오늘날 20대들을 "자신이 투자한 노력과 시간을 기준으로, 그보다 노력이 부족한 이들을 가혹하게 평가한다. 나보다 '덜' 노력한 사람은 나보다 전적으로 부족한 존재이며, 당연히 '덜' 대우받아야 한다. 심지어 인격적으로(게으르고 개념 없다는 등) 모욕하기까지 한다. 이는 누구든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경쟁 사회에서 비교우위를 얻기 위한 방편이자, 끝이 보이지 않는 괴로운 자기계발 과정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행위이기도 하다"고 서술했다.

2013년 책 출간 당시 대학생 혹은 수험생이던 이들은 2021년 취준생 혹은 공시생, 직장인이 되어 박 비서관 임명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에게 '자격'은 자격이라는 말 자체의 뜻보다 더 절박하고 엄중한 의미다. 정치권은 비로소 자신을 향한 2030세대의 '공정론'을 마주했다. 입시·취업난·주거 빈곤 등 무한 경쟁 사회가 만든 2030세대의 분노는 정치권으로 거칠게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내로라 하는 중견 정치인들과 대결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당당하게 승리를 거둔 이준석 대표와 단숨에 1급 비서관에 오른 박성민은 질적으로 다르다. 적어도 청년들에게는 그렇게 비친다. "한번 지켜봐달라"라는 부탁으로는 이들의 분노를 잠재우기에 부족하다. 이번 논란 이면에 있는 2030세대의 양극화 분노를 직시해야 한다. 차별을 찬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감지했다면 정치권의 고민이 더욱더 깊어지길 바란다.

moon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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