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수술실 CCTV 설치와 관련된 의료기기법 일부개정안 등을 논의하는 법안소위가 열리고 있다. 이날 CCTV 설치 위치와 의무화 등을 두고 여야 간 의견이 갈렸다. /이선화 기자 |
CCTV 설치 위치·의무화 이견…법안 처리 무산 위기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최근 수술실 CCTV 설치 문제가 화두다. 각종 의료사고를 대비하고 대리·음주수술 등 불법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대책으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자는 요구가 거세다.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수술실에서 어떠한 불법 의료 행위가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이 큰 이유다.
정치권은 이 부분에 대해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의료법상 무자격자의 의료 행위가 반복되면서 수술실 내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2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여야는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하지만 CCTV 설치 위치와 의무화 등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 더불어민주당은 '수술 내 CCTV 설치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수술실 입구에 설치하고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견을 좁히지 못해 수술실 CCTV 설치 법안 처리가 또다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2015년 1월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높거나 환자가 희망할 경우 수술 장면을 CCTV로 촬영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이후 본격적으로 논쟁에 불이 붙었다. 환자단체는 환자의 안전과 의료사고에 대비해야 한다며 CCTV 법안 처리를 요구하고 있고, 의료계는 과도한 의료행위 감시라며 반발하고 있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수술실에 CCTV가 있다면 대리 수술이나 성범죄, 의료사고에 대한 조직적인 은폐를 예방할 수 있겠다. 반대로 의료계의 주장처럼, 의사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돼 오히려 환자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만 되풀이하며 소모적 논쟁으로만 그치고 있다.
정치권에서 수술실 CCTV 설치 문제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5일 국회 정문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의료사고 피해자 고 권대희 씨 유가족인 이나금 의료정의실천연대 대표를 만나 대화하는 모습. /이선화 기자 |
수술실 CCTV 설치법이 처음 발의된 지 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에도 부산에서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불법 대리수술을 저지르는 등 여전히 무자격자의 대리수술과 의료진의 성범죄가 지속되고 있다. 전국 병원의 60%엔 수술실 입구에 CCTV가 설치돼 있어도 범죄 행위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의료계는 '극소수'라고 항변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피해를 보는 환자가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64개월 동안 적발된 유령수술 사례가 112건에 달한다. 경찰청의 2019 범죄통계에 따르면 의사들의 성범죄(강간·유사강간·강제추행) 건수는 136건이다.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선 안 된다. 다만 이러한 통계와 현실을 고려하면 의료윤리에 대한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대해 국민 80%가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의료계에 대한 불신이 크다. 왜 국민 여론이 압도적인지 의료계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따지고 보면 무조건 CCTV 설치 의무화가 환자 쪽에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의료진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위험도가 높은 수술에서 최선의 의료행위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신체 접촉에 대해서도 성범죄의 시시비비를 가릴 수 있는 객관적 증거 자료로 쓰일 수도 있겠다. 의료계에 대한 불신을 줄일 수도 있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의 취지가 불법 행위의 예방에 맞춰진 만큼 의료진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개인정보 보호 조치를 강화하고 영상정보 유출 등에 대한 제도적 보완도 동반돼야 한다. 어디 까지나 범죄 예방 차원에서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이 시대의 요구가 아닌가 싶다. 이제는 국회가 결단을 내려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