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재보궐 선거 이후 외쳐온 '쇄신' 목소리가 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의 등장으로 빛바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감지된다.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는 송영길 민주당 대표(왼쪽). /국회=이선화 기자 |
"청년 정치인 공간 확대, '강성 친문' 중심 당 문화 개선해야"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파격 행보에 더불어민주당의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그나마 우위를 점했던 '변화와 혁신' 타이틀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감지된다. 당 내부에선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혁신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지만, 86세대(1980년대 학번·1960년대 출생) 운동권 출신이 주류인 당 조직부터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 정치인들의 목소리를 누르는 당내 강성 지지층 중심의 당 문화도 바꿔나가야 할 과제로 꼽힌다.
이 대표는 14일 임기 첫날, 보수정당 대표로 '보수 불모지' 광주를 찾아 중도확장 행보를 보였다. 전날(13일) 취임 후 국회 첫 출근길에는 '따릉이'를 타고 등장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대표는 이번 주 대변인단 선출을 위한 '토론배틀'을 추진하고, 내년 지방선거 공천에 자격시험을 전면 도입하기로 했다. 경력과 인맥 중심의 기존 관행을 깨고 공정경쟁 시스템으로 젊은 세대의 당직 활동과 정치활동 공간을 열어주겠다는 의도다. 국민의힘 지지율도 '이준석 효과'에 힘입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대표는 첫 공식 일정으로 광주를 방문하고, 대변인 선출을 위한 '토론배틀'을 추진하는 등 파격 행보를 보이고 있다. 13일 오전 따릉이를 타고 서울 여의도 국회로 출근하고 있는 이 대표. /국회사진취재단 |
위기감을 느낀 민주당은 당장 공식 당 회의에서 우선발언권부터 청년 정치인에게 넘겨줬다. 14일 회의에서 이동학 청년 최고위원이 송 대표와 윤호중 원내대표에 이어 세 번째로 모두발언을 하게 된 것이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늘 (전당대회) 당선 서열대로 발언을 했는데, 가끔씩 변화를 도모할 계획"이라며 "청년 입장을 우선해서 듣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를 잡은 이 최고위원은 지방선거 공천 개혁을 요구했다. 그는 "민주당도 질 수 없다. 개혁 경쟁은 불가피하다"며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지역위원장이 사실상 후보를 낙점하는 현 관행을 깨기 위해 당원 배심원제, 정책토론회 생중계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민주당은 또, 젊은 세대 중심으로 대선기획단을 꾸리는 방안을 강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고 수석대변인은 "논의해 방향을 잡을 생각"이라며 "모든 게 다 열려있다"고 가능성을 시사했다. 당초 대선기획단장으로는 4선 중진이자 586그룹의 대표 격인 우상호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하지만 국민권익위원회의 부동산 거래 전수조사로 농지법 관련 의혹이 불거졌고, 이 대표 선출로 '세대교체'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당이 고심하고 있다. 우 의원을 대신해 대선기획단 단장에는 이동학 청년최고위원과 '미스터 쓴소리' 김해영 전 의원이 거론된다.
단장 선임은 아니더라도 대선기획단에 2030 초선의원들이 전면에 배치될 가능성은 높다는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선 이준석 돌풍에 휩쓸려 당의 명운을 좌지우지할 대선 경선 관리라는 주요한 위치에 청년들을 배치하는 것만이 해법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이날 KBS 라디오에 출연한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상대 당에 청년이 나왔으니 이쪽도 청년 맞수로 놓는 것이 방법이냐. 이게 또 하수일 수도 있다"고 했다.
민주당은 '고위급 청년당정협의회'를 추진해 청년 정책과 예산 확대를 강화할 계획도 검토 중이다. 청년대변인과 당 대표 직속 청년특보단도 조만간 구성해 당 정책 결정 과정에서 청년층 목소리를 키운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대선 경선을 관리할 대선기획단에 청년 정치인들을 전면 배치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은 이동학 민주당 청년 최고위원, 오른쪽은 김해영 전 의원. /이선화 기자 |
하지만 여전히 86그룹이 당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강성 친문 지지층 중심으로 운영되는 당 문화 속에서 쇄신 바람은 금세 사그라들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당의 주요 정책 결정권을 쥐고 있는 송 대표도 연세대 총확생회장을 지낸 운동권 출신이고,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조국 사과문'을 냈던 오영환·이소영·장경태·장철민·전용기 의원 등 초선 5인은 강성 지지층의 강한 반발에 목소리를 감췄다.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민주당에 이준석 대표처럼 청년 정치인이 성장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국민의힘은 원래 주요 정치인들 연령대가 높아서 호혜적 입장에서라도 젊은이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 같다. 반면 민주당은 본인들이 아직 젊다고 생각해 후배 양성에 대한 인식이 적었던 것 같다. 또, 당내 문화가 워낙 강성 친문 위주로 짜여 있다는 점도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이유"라고 분석했다.
이어 "(혁신하려면) 일단 위에서부터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현실적으로 청년 한 두 명이 밑에서 바꾸자고 해서 바뀔 수 있는 건 아니며 주도하는 몇몇 정치인들과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국민의힘과의 혁신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선 당 지도부 차원의 파격적인 결단과 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동산 세제 완화와 부동산 의혹을 받는 의원들의 탈당 권유 등 당면한 현안에 대해 지지부진한 모습이 이어질 경우, 국민의힘에 비해 '쇄신과 변화'의 모습이 빛바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민주당 지도부는 두 가지 현안을 놓고 당내 반발에 부딪혀 전전긍긍하고 있다. 탈당 권고 대상인 12명 가운데 현재 6명만 탈당계를 제출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상 중 한 명인 김회재 민주당 의원은 이날도 불법 명의신탁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문자내역을 근거로 들며 탈당 불복 입장을 고수했다. 지도부가 마련한 '상위 2% 종부세 부과'와 '1가구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기준 12억 원으로 상향' 등 부동산 세제 개편안도 친문 주축인 민주주의4.0 연구원, 진보·개혁성향 모임 더좋은미래,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 소속 의원 60여 명의 집단 반대로 난관에 부딪힌 상황이다. 세제 개편 논의를 위한 민주당 정책 의총은 오는 16일~17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 이후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