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수위 약하다" 불만…유탄 맞는 입법부
입력: 2021.06.14 05:00 / 수정: 2021.06.14 05:00
여러 형사 사건에 대한 법원의 처벌이 약하다는 국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입법부인 국회도 손을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더팩트 DB
여러 형사 사건에 대한 법원의 처벌이 약하다는 국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입법부인 국회도 손을 놓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더팩트 DB

형량·법감정 괴리…각종 처벌 강화 법안 발의돼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1. 인천지법은 지난해 12월16일 인천 북항터널에서 술에 취한 채 졸음 운전을 하다 40대 여성을 숨지게 한 벤츠 운전자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징역 9년을 구형했다. 피해자 유족으로 추정되는 이는 지난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려 "윤창호법이 적용됐는데도 4년이라면 개보다도 못한 죽음"이라며 강력한 처벌을 호소했다.

#2. 술에 취한 대학원생 제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대학교수가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달 27일 준강간·강제추행 혐의로 구속기소 된 전 교수 이모(61) 씨의 선고공판을 열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도 명령했다.

여러 형사 사건에 대한 법원의 처벌이 약하다는 국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법원은 양형위원회가 정하는 양형기준른 법정형 범위 안에서 피고인의 형량을 정하고 있지만, 양형이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온라인상에서 사건 기사 댓글에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지난 9일 한 포털사이트에서 '인천 북항터널' 사건과 관련해 형량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한 누리꾼은 형량을 늘려야 운전자들이 경각심을 갖고 움주운전이 줄어들 것이라는 취지로 댓글을 썼다. 이 의견에 3000명 이상이 추천했다. 사형 또는 30년 이상 처벌하라는 주장도 있다.

지난달 14일 생후 16개월 된 '정인이'를 학대 끝에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모 장씨가 무기징역을, 양부 안씨가 징역 5년을 선고받자, 시민들은 처벌이 약하다며 분노했다. 2019년 12월 인천의 한 아파트에서 같은 중학교에 다니던 여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남학생 2명이 항소심에서 감형받은 것에도 불만이 터져나왔다.

이밖에도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스토킹'과 데이트 폭력, 동물학대 및 개물림 사고, 소년 범죄, 디지털 성범죄, 아동학대 등 여러 범죄에 대해서도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게 대다수 국민의 시각이다. 사법부 판결을 불신하는 정서가 팽배하다. 특히 피고인에게 심신미약이나 반성 등을 이유로 형량을 감경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더팩트>와 통화에서 "양형위원회가 양형기준을 만든 것은 판사가 일반 국민의 법 감정에 어긋나는, 예측할 수 없는 형량이 나오는 것을 막고, 건전한 법 감정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며 "하지만 (일부 재판부가) 국회의 입법권과 국민의 법 인식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9일 한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인천 북항터널 사건 기사에 달린 댓글들. 형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추천을 얻었다. 온라인상에서 재판부의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과 입법무가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네이트 갈무리
9일 한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인천 북항터널' 사건 기사에 달린 댓글들. 형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추천을 얻었다. 온라인상에서 재판부의 처벌이 약하다는 지적과 입법무가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네이트 갈무리

국민의 법 감정은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0월30일부터 나흘 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국민들이 느끼는 범죄 처벌에 대한 인식 조사를 진행했는데, 응답자의 66%가 법원 판결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한 법원에서 선고하는 범죄자에 대한 형벌이 판사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응답은 86%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그렇다 보니 사법부는 물론 입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것 아니냐며 유탄을 맞고 있다. 국회의원이 법을 강화하는 법안을 내 강력한 처벌의 근거를 만들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다. 일례로 n번방방지법, 조두순방지법 등을 국회가 내놨지만, 공군에서 발생한 이모 중사의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성범죄 사건에 대한 처벌을 더 강화하자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법조인 출신 한 민주당 의원은 <더팩트>와 통화에서 "법원의 형량 결정과 언론 보도로 이슈화된 사건 이외 다른 사건들의 형량 등 모두 종합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면서 "입법부인 국회도 무조건 처벌을 강화하는 쪽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보호하고 같이 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몇몇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현행 처벌수위보다 더 강화된 법안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검사 출신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영아살해 솜방망이 처벌 근절을 위해 영아살해죄 및 영아유기죄를 폐지하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달 24일 발의했다. 영아살해죄 및 영아유기죄가 폐지되면 영아살해·유기는 각각 형법상 보통살인죄·유기죄 규정의 적용을 받도록 했다.

지난 1월 자택에서 여아를 출산한 산모가 빌라 4층 창문 밖으로 아이를 던져 살해한 사건에서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이 참작돼 판결이 내려졌고, 3월에는 영아를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우려 한 친모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등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판결에 국민적 공분이 일었던 만큼 주목되는 법안이다.

미성년자의 강력범죄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을 추진되고 있다.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살인, 강간 등 특정강력범죄를 범한 소년 범죄자의 경우 소년부 보호사건의 심리대상에서 제외하고, 형량 상한을 높이는 '소년법개정안' 및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개정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이 의원은 "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미성년자들이 범죄의 중대성에도 경미한 처벌을 받는 것은 국민의 법 감정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소년범죄를 억제하지 못하면서 흉포화만 야기할 수 있다"며 "미성년자의 강력범죄에 한해 현재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형량 완화 특칙에서 제외해 엄정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승 연구위원은 "국회가 입법권을 행사하는 부분에 대해선 국회 나름대로 전문가 시각에서 형량을 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그것만이 범죄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동시에 법원도 종래에 가진 판사의 법 감정이 아니라 국회가 만들어놓은 입법권의 법 감정을 국민의 법 감정으로 생각하고 끊임없이 양형기준을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새로운 형태의 범죄에 대해서는 양형위원회와 국회가 신중하게 의견을 교환해서 입법권을 형성할 때 검사와 법원, 형사법 전문가들이 같이 논의할 수 있는 공청회를 통해 적정한 양형 기준·법정형 기준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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