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정치권이 '친환경 국회'를 외치며 개선 노력을 보이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최근 국회 의원회관 2층에는 디지털 게시판이 설치됐다. /박숙현 기자 |
'친환경' 노력 분위기 형성…인프라 개선 필요
[더팩트ㅣ박숙현 기자] "보좌진 후배들에게 내가 퇴직하면 국회에서 나오는 폐지 다 달라고 농담한다. 그만큼 국회가 쓰레기 관리가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국회가 '친환경'을 외치고 있다. 국회 사무처는 오는 2030년까지 '종이 없는 국회'를 실현하겠다는 장기 로드맵을 밝혔고, 각 의원실도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에 동참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전히 기존 관행을 따르려는 인식이 존재하고 친환경 인프라가 부족해 온전한 실천은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갈수록 늘어나는 국회 생활폐기물...2030년까지 '친환경 국회 조성' 목표
<더팩트>가 국회사무처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국회 생활폐기물의 연도별 처리량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11년 63t이었던 폐기물은 2020년 689.47t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국회 종사자 수가 늘어난 탓도 있지만, 연도별 직원 수로 나누어 살펴보아도 증가 추세는 여전하다. 지난 3월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공개한 '국회 자원·에너지 소비 현황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직원 1인당 생활폐기물 처리량은 2015년 121kg에서 2019년 147kg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또 2016년부터 2019년 국정감사 기간 피감기관이 종이 약 2400만 장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축구장 6.3배 면적에 해당하는 4.47헥타르(ha)의 산림이 사라지고 44억7500만 원의 인쇄비용이 소요된 것으로 분석됐다.
국회사무처는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2030년까지 친환경 국회 조성 완료를 목표로 '3단계 로드맵'을 추진한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단기(2022년 6월), 중기(2024년), 장기(2030년)별 실행방안과 목표를 정해 친환경 국회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청사 내 모든 공용 차량을 친환경 차량으로 전면 전환하고 디지털 기기를 통해 완전한 '종이 없는 국회'를 실현하는 등 친환경 인프라를 구축하겠다고 했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2021년 현재 국회의 친환경 차량(수소, 전기, 하이브리드, CNG)은 총 10대다. 국회 전체 공용차량(총 47대) 대비 친환경 차량 비율이 21%인 셈이다. 이와 관련 사무처 관계자는 "기존에 구매한 차량의 불용 기한이 도래하거나 임차한 차량의 임차 기한이 끝날 때마다 친환경 차량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지속 중"이라며 "업무상 필요한 사양의 차량(다인승 승합 등)이 수소차 또는 전기차 모델로 아직 시판되지 않은 경우가 있어 해당 모델이 출시되면 최대한 빠른 시한 내에 도입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답변했다.
사무처는 또 최근 국회 의원회관에 디지털 게시판도 설치했다. 기존에는 국회의원이 주최하는 토론회나 정책 세미나 등 의정활동 홍보를 위해 의원회관 층마다 설치된 게시판에 각종 포스터가 붙였다가 떼기를 반복했다. 사무처는 의원회관 20층 10개소에 디지털 게시판을 시범 운영한 뒤 148개소 전체로 확대할 방침이다. 국회사무처는 모든 게시판을 디지털 게시판으로 교체할 경우 연간 113만 장의 종이 포스터를 대체해 연간 약 440그루의 나무를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국회의원들도 '친환경 국회'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민주당 '2050탄소중립특별위원회' 자원순환분과 간사인 윤준병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회 일회용품 줄이기 실천 결의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일회용품 사용으로 인한 폐기물 발생과 자연훼손, 기후 온난화를 방지하고 일회용품 처리에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자는 취지다. 국회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나 의원 사무실에서 일회용 컵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각종 회의 문서를 전자문서로 대체하며, 종이 출력 시에는 이면지 사용이나 모아찍기 방식 등으로 종이 출력물량을 최대한 줄이자는 내용이 담겼다.
<더팩트>가 해당 결의안을 공동 발의한 17명(윤준병·양이원영·신정훈·오영환·안호영·김상희·윤미향·이용빈·김성주·임종성·이광재·김성환·신영대·비례 이수진·이소영·홍성국·송옥주 의원) 의원실의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실천 현황을 취재한 결과, 다수가 일회용 종이컵을 외부 손님 접대용 외에 사용하지 않고, 서면 보고 대신 SNS를 활용한 온라인 보고를 주로 한다고 밝혔다. 다만 자처해 '친환경' 노력을 실천한다는 의원실에서조차도 여전히 인프라나 인식 부족 등으로 애로사항을 겪고 있다고 답했다.
국회 일회용품 줄이기 실천 결의안을 대표 발의한 민주당 의원실에서는 모두 개인 컵이나 텀블러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만 외부 손님을 위해 종이컵 비치도 해놓았다. 왼쪽은 김성주 의원실이 사용하고 있는 친환경 종이컵. 오른쪽은 송옥주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사용하는 환경부 제공 컵. /박숙현 기자 |
◆"코로나 덕에 일회용품 사용 줄여...완전 비구매는 어려워"
의원실에 종이컵 사용 현황을 묻자 "요즘에 누가 종이컵 써요. 의원실에서 종이컵 쓰는 게 더 이상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만큼 국회에서는 의원을 비롯해 보좌진이 개인 컵이나 텀블러를 사용하는 분위기가 높다고 전했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의원실 오프라인 행사가 줄어들면서 '종이컵 줄이기'를 실천하기가 수월했다고 입을 모았다. 임종성 의원실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국회에서는 모임이 없으니까 못했고, 외부 행사 때도 방역수칙 때문에 생수를 제공하지 않는 곳도 많다. 제공하더라도 컵은 주지 않고 물병만 두는 식"이라고 했다.
종이컵을 줄이는 방식도 의원실마다 각양각색이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송옥주 의원실에서는 위원장실 입구에 '개인 컵 사용을 권장한다'는 안내 문구를 붙여놓고 부득이한 경우 라벨 없는 생수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국회 연구단체인 '기후위기그린뉴딜연구회'에서는 소속 의원실이 갹출해 텀블러를 40여 개 공동 구매 후 행사 때마다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종이컵 구매를 일절 하지 않는 의원실은 없었다. 김성주 의원실 관계자는 "아무래도 개인 컵이 여유롭게 있지 않아서 설거짓거리가 쌓이기도 하고, 그때그때 오는 손님들을 위해 종이컵을 아예 없애지는 못하고 있다"고 했다. 윤미향 의원실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우려해 외부 일정이 없을 때면 도시락을 싸 온다고 한다. 윤 의원실 관계자는 "우리는 줄이고 싶은데 생산단계에서부터 줄여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 조금 불편함이 있다"고 전했다.
국회 내 카페의 일회용 컵 사용 줄이기를 위한 노력도 추진 중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 탄소중립특별위원회는 지난 4월 20일 박병석 국회의장에 국회 내 전용 다회용컵 도입 방안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사무처는 <더팩트>에 "다회용 컵의 사용을 독려하기 위해서 국회 직영 카페에서 다회용 컵(텀블러)을 사용하는 경우 500원을 할인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또 중장기적으로는 다회용 컵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 컵을 사용하도록 하고 식기렌털 전문업체와의 계약을 통해 다회용 컵을 관리(배송, 사용, 수거, 세척 등)하도록 하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국회 내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도 환경단체로부터 꾸준히 지적받는 부분이다. 기존에는 의원실 단위의 분리수거함이 없어 일부 의원실을 제외하고는 종이, 플라스틱, 병·캔 등을 분리 배출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생활폐기물과 재활용폐기물을 혼합 배출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에 사무처는 올해 초 의원실별로는 폐지수거함, 의원회관 공용 공간 중심으로 일체형 분리수거함을 설치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재활용품 수거함이 층마다 있었지만 접근성이 안 좋아 직원들이 일반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는데 의원실마다 재활용품을 수거할 수 있게 돼서 조금 개선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사무처는 의원실별 분리수거함 설치도 확대할 방침이다. 사무처 관계자는 "사무실별로 분리수거함을 설치할 경우 현재까지는 '공간 부족으로 인한 거부감'이라는 문제가 있어 캠페인 등을 통해 구성원의 인식을 개선한 후 확대 설치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국회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쓰레기는 종이인 것으로 파악된다. 왼쪽은 오영환 의원실이 별도로 구매한 분리수거함, 오른쪽은 국회 사무처에서 제공한 폐지함. /박숙현 기자 |
◆"전자발의 확대했지만 시스템 개선 필요"
국회 폐기물 가운데 종이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회의 때마다 국회와 부처에서 생산한 대량의 문서와 발간물이 회의장에 비치됐다가 당일 폐기되는 경우가 관행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신정훈 의원실 A 보좌관은 "농담으로 후배들에게 국회에 계속 남아서 나중에 내가 퇴직하면 국회 폐지를 줍게 해달라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국회가 쓰레기 관리가 안 되는 곳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폐지 양을 줄이기 위해 '문서의 전자화'에 대한 요구는 커지고 있다. 윤준병 의원실 관계자는 "국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페이퍼를 전자화하자고 (사무처에) 의견을 냈다. 지금은 시스템이 구축돼 있지 않아서 가능하지 않다. 예를 들어 정부 부처에서 (의원실에 보고하러) 왔을 때 전자시스템을 통해 띄워서 보고 의원실도 파일을 받아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잘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전자발의도 대폭 확대되는 추세다. 이영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26일 국회사무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1대 국회 임기 시작(지난해 5월 31일) 직후인 지난해 6월부터 지난 21일까지 발의된 9394건의 법안 가운데 3166건이 전자 발의됐다. 전체 법안 수에서 전자 발의된 법안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6월과 7월 0%(0건)에서 꾸준히 늘어 5월 기준 80.4%(전체 405건 가운데 326건)로 집계됐다. 국회는 21대 국회 개원 이후 전자 발의 확대로 158만3000장의 종이를 절약한 것으로 추산했다. 그동안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려면 9명 이상 공동발의자의 서명을 얻기 위해 A4 5매 내외의 법안 출력물을 수십 곳 이상 의원실에 배포할 수밖에 없던 것에서 대폭 개선된 것이다.
전자발의의 확대 방향에는 모두 공감했지만 현 시스템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A 보좌관은 "빨리 법안을 발의하거나 많은 수를 공동 발의자로 올리려고 할 때 전자발의 시스템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 법안을 종이로 읽는 것과 모니터에서 읽는 게 다르다. 가져다주고 '좀 봐주세요' 하는 것보다 전자문서로 회람하는 게 더 어렵다. 시스템의 가시성과 접근성을 높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종성 의원실 관계자는 "전자발의로 과거보다 출력 양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느낀다. 다만 전자발의를 하더라도 최소한 열 군데 정도 (법안 출력물을) 보낸다. 법안을 왜 발의하게 됐고 무엇을 준비했는지, 관계기관으로부터는 어떤 의견을 들어서 어떻게 반영했는지 설명해주는 게 예의니까 그러려면 뽑아서 갈 수밖에 없다"며 "예의 이 부분만 거둬내면 (전자발의로 종이를) 줄일 수 있는 부분 같다"고 말했다.
오영환 의원실 보좌진은 "이전에는 전자발의가 번잡스럽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해보니까 종이보다 오히려 편하더라. 가끔 빨리하다 보면 다른 의원 서명란에 찍기도 하고, 의안과에서 수정 필요 의견을 줄 때가 있는데 전자발의로 하면 (후에 수정하는 부분이) 편하다"고 말했다.
'종이 제로 국회'를 위해서는 국회뿐만 아니라 부처나 기관의 노력도 함께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A 보좌관은 "상임위 회의장에 가면 모니터가 있는데도 부처나 정부에서 가져오는 자료집 양이 어마어마하다. 다 버려지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이광재 의원실 B 비서관도 "국회에서 제공되는 자료를 전자화하려면 함께 노력하는 지점이 분명히 필요하다. 한쪽에서 '종이 제로'를 선언하면 다른 쪽에서도 호응해줘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