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젠더' 바람<상>] 게으른 정치, 갈 길 잃은 방향
입력: 2021.05.30 00:00 / 수정: 2021.05.30 19:33
4·7재보궐 선거 이후 정치권이 정치 지형의 새로운 변수로 젠더에 주목하고 있다. 왼쪽은 페미니스트 여성시장을 자처하며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했던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오른쪽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이새롬·이선화 기자
4·7재보궐 선거 이후 정치권이 정치 지형의 새로운 변수로 '젠더'에 주목하고 있다. 왼쪽은 '페미니스트 여성시장'을 자처하며 서울시장 후보에 출마했던 신지혜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오른쪽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 /이새롬·이선화 기자

4·7재·보궐 선거에서 '이대남(20대 남자)'의 특정 정당 지지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정치권에 '젠더' 바람이 불고 있다. 한쪽에선 각종 여성 우대 정책으로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남성들의 목소리를 정치권이 대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과잉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청년층의 근본적인 불만을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민감한 '젠더' 이슈에 대해 그동안 '모르쇠'로 일관해온 정치권이 논쟁을 시작했다는 점은 반길 만하다. 지역과 이념 갈등에 이어 정치 지형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른 '젠더'. 남녀 성 갈등 문제를 대하는 정치권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폭발하는 에너지를 동력 삼아 성평등 시대로 도약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男 역차별 불만 들어줘야" vs "근본 원인 해결해야"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이남자(20대 남자)' 중심으로 '역차별' 문제가 제기되면서 젠더 이슈가 뜨겁다. 이는 남녀 간 확연한 성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최근 조사에서도 2030 젊은 층에서 이런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6일 발표한 '성평등 국민의식 조사'에서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은 여자보다 남자가 더 크다', '여자들은 직장에서 옷차림, 화장 등 외모에 신경 써야 한다' 등 성평등 의식 관련 문항에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1점)∼'매우 그렇다'(6점)로 응답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결과, 20대 남성(3.51)과 20대 여성(2.41)의 성평등 의식 차이(1.10점)가 가장 컸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조사(지난해 10월 11월 기간, 만 19∼34세 6570명 대상)에서도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는 문항에 여성은 74.6%, 남성은 18.6%가 응답했고,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는 문항에 남성은 51.7%, 여성은 7.7%만 응답했다.

젠더 이슈는 지난 4·7 재보궐선거를 기점으로 정치권에서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젠더'에 소극적이었던 정치권이 활발한 논의의 장을 열었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청년의 일자리, 사회 불평등 등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뒤로 한 채 남녀 갈등을 부추기는 식의 게으른 정치는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이 20대 남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평가했다. 2020년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질의하는 김 의원. /이새롬 기자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이 20대 남성들의 목소리를 듣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평가했다. 2020년 10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질의하는 김 의원. /이새롬 기자

◆'이남자 현상'에 "남성 목소리에 소극적이었다" vs "확대 해석 NO"

4.7 재·보궐 선거에서 2030 남성 다수가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나자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옛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도 덩달아 "민주당의 여성우대 정책 기조가 선거 패배요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대남을 겨냥한 정책들도 꺼내 들었다. 전용기 의원은 공기업 승진 평가에 군 경력 반영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내놓았고, 김남국 의원도 전국 지자체 채용 시 군 전문 경력을 인정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을 공동 발의했다.

특히 김 의원은 젠더 논쟁에 적극 뛰어든 모양새다. 남성 경찰들의 역차별 문제 제기에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적극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화답하고, 여성가족부 폐지 공론화도 언급했다.

김 의원은 그동안 당이 젊은 남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을 소홀히 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저희가 반성해야 한다. (2030 남성들의 불만) 목소리가 굉장히 컸다. 과거 전략보고서에서도 나왔는데 거기에 대해 움직이지 않았고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며 "5060 세대는 그 이슈(젠더)를 민감하고 중요다고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19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 요인으로 "성별 할당제, 가산제 등 강화된 여성 '편익' 친화적 정부정책"을 지적하고, "페미니즘 편향적 교육 내용을 전반적으로 점검"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김 의원은 군 전문 경력 인정 법안에 대해서도 "국민이 선거를 통해 민의를 나타내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 (군 전문 경력 인정 요구는) 3, 4년 전부터 계속 이야기가 나왔는데도 정치권이 손을 놓고 있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여성표를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지역구 정치인에게는 좋은 이슈는 아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선배 (정치인)들이 관심을 안 갖기 때문에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 아젠다를 다루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젠더 이슈를 갈등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봐선 안 된다고 했다. 김 의원은 "20대 남성의 표심이 돌아선 이유를 젠더 갈등 하나만으로 볼 수는 없다. 공정이나 취업이 안 되는 문제, 부동산 문제 등도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갈등이 있는데도 없다고 회피하는 건 안 된다고 본다.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다만 한쪽으로 치우치니 남자 쪽 (입장을 대변) 해주자는 식의 방향으로 가면 안 되고, 청년세대 모두 공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누구나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로 적극 소통하면서 바뀐 모습들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이남자 현상에 대해 해결책이 없는 포퓰리스트적인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2020년 10월 7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질의는 권 의원. /이새롬 기자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이남자' 현상에 대해 "해결책이 없는 포퓰리스트적인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2020년 10월 7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질의는 권 의원. /이새롬 기자

반면 '이남자' 현상을 젠더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과잉 해석이며, 청년층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접근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을 역임했던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더팩트>에 "20대 남성을 단일한 집단으로 보려는 접근 방식은 굉장히 위험하다. 20대 남성은 계층적으로 분화돼 있을 뿐만 아니라 (남녀가) 공통적으로 겪는 취업 불안, 부의 접근 사다리가 없어지는 문제가 있고, 각자가 겪는 개인적 문제도 다양하다"며 "(젠더적 접근은) 갈등을 유발하려고 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젠더 이슈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결집해 문제를 지적하는 흐름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는 있는데 그게 모든 걸 대변하듯이 판단해 정치의미화하는 건 굉장히 잘못된 해석"이라며 "'그래서 어떻게 한다는 건가'. 해결책이 없는 포퓰리스트적인 접근 방식에 동의하고 있는 정치인에 대해선 심각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 지형의 새 변수 '젠더'..."청년 불만 근본 원인 살펴야"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 정치의 주요 변수로 '젠더'가 등장했고, 앞으로도 더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성적 자기결정권, 유리천장 격파 등을 요구하면서 이를 대변해줄 진보 진영으로 결집하고, 역차별에 불만이 있는 남성은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보수 진영으로 모이면서 새로운 정치 지형을 이룬다는 것이다.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구조사에서 20대 이하 남성은 72.5%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한 데 반해 20대 이하 여성 중 '제3후보'를 택한 비율이 15%를 넘긴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젠더'가 정치 지형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하면서 "투표에서 20대 남성과 여성이 차이 있는 부분도 있고, 젠더 갈등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등장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이전에는 젠더 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보궐 선거 이후 젠더 표심이 중요하다고 확실히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앞으로 이남자와 이여자(20대 여자) 갈등을 부추기면서 그에 상응하는 정책들이 나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어느 쪽 편을 드느냐에 따라 표심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며 "젠더 이슈를 젠더 갈등의 관점으로 끌고 가는 건 나쁜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는 정치권이 청년층의 근본적인 문제를 분석하는 대신 젠더 균열에 따른 표심 구애에 편승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20대에서 젠더 갈등이 심한데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많아 경쟁이 지금처럼 격화하지 않았으면 남녀 갈등 구도가 이렇게 생기진 않았을 것"이라며 "좋은 일자리가 적어지고 기회가 사라지자 남성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기보다 가시적으로 눈에 나타나는 경쟁자인 여성을 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여성도 코로나19 이후 일자리를 찾기 굉장히 어려운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급격한 사회·경제적 구조 변화에 따른 일자리 축소와 정치권의 미흡한 노력이 청년층 문제의 원인인데 젠더 갈등을 부각해 비판에서 비껴간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드러난 갈등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 정치권이 같이 노력해줬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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