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 전성시대-<상>] '유령 당원'은 옛말…당, 들었다 놨다
입력: 2021.05.10 05:00 / 수정: 2021.05.10 05:00
정치권에서 당심과 민심 논쟁이 한창이다. 당심을 민심에 얼마나 가깝게 모으느냐에 따라 집권 세력이 되거나 되지 못한다. 2020년 9월 18일 창당 65주년 기념일을 맞아 백년당원들에게 꽃다발을 증정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당시 당 지도부. /이새롬 기자
정치권에서 당심과 민심 논쟁이 한창이다. 당심을 민심에 얼마나 가깝게 모으느냐에 따라 집권 세력이 되거나 되지 못한다. 2020년 9월 18일 창당 65주년 기념일을 맞아 백년당원들에게 꽃다발을 증정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당시 당 지도부. /이새롬 기자

우리나라 인구수(51,849,861명) 대비 16.7%, 선거인 수(43,362,250명) 대비 20%, 즉 유권자 10명 중 2명은 정당 당원이다.(2019년 기준) 당내민주주의가 발전해가면서 이들이 소속 정당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도 커졌다. 4·7 재·보궐 선거를 계기로 '당심과 민심' 논쟁은 정치권 화두로 떠올랐다. 당원들의 목소리를 잘 모으면 민심에도 가까워지는 걸까. 당원의 총의가 잘 반영되고 있기는 한 걸까. <더팩트>는 당원들의 역할과 권한의 확대 과정을 살피고, 각 당이 당원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절차를 비교분석 했다. 또, 당심과 민심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편집자 주>

'집단 행동'으로 여론 주도…지도부 선출에도 영향력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

2017년 4월 당내 경선 승리 후 문재인 당시 대통령 후보는 강성 당원의 상대 후보 문자폭탄과 비방 댓글 행위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로부터 4년,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일 민주당 전당대회 축사에서 "서로 배제하고 상처 주는 토론이 아니라 포용하고 배려하는 토론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있으나 마나 '유령 당원' 신세였던 당원들은 대통령이 자중을 당부할 정도로 활발하게 당의 의사결정에 관여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총당원 수(865만7559명) 가운데 각 당 당원수는 더불어민주당 406만5408명(47%)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347만5372명(40.1%), 바른미래당 36만1171명(4.2%), 정의당 5만9243명(0.7%)이다. 갈수록 당원 가입자는 늘고 있다. 최근 10년간 인구수 대비 당원 비율은 2009년 8.3%에서 2012년 잠시 내려앉은 것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당원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발달하고, 온라인상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면서 입김이 세졌다. 4·7재·보궐 선거가 끝난 후 집권당에서 제기된 '당심과 민심' 논쟁 또한 정당 내 의사결정 과정이 당원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문제다. 각 정당은 다양한 당원들 의견 수렴을 위해 온라인 플랫폼을 출범하거나 인선을 당원들이 직접 선출토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놓았다. 하지만 과도하게 집단 행동하는 당원들이 큰 목소리를 내면서 당심과 민심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온라인으로 무대 이동...지도부 당락 결정하는 당원들

1997년 이전까지 당원은 당 지도부가 의사결정을 내리면 따르는 추종자 수준이었다. 당 지도부가 정당조직을 좌지우지했다. 반세기 동안 중앙당과 '제왕적 총재'가 전권을 휘두르는 하향식 공천방식이 유지되면서 당원이 당 주요 결정 과정에 참여할 틈이 없었다. 1997년 이후 신한국당이 대선후보 선출 과정에서 경선제를 처음 도입하면서 비로소 대의원이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원의 위상과 지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 시점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이 선거인단 수를 대폭 늘린 '국민참여경선제'를 도입하면서다. 당시 거대야당이었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도 이를 받아들였다. 구체적인 시행 방식은 국민선거인단 공모, 여론조사, 모바일 투표, 결선투표제 방식 등 다양했지만, 각종 후보 선출 과정에서 국민참여경선제는 한국 주요 정당의 기본 제도로 정착했다.

정당법 개정으로 온라인으로도 입당원서를 제출할 수 있게 되면서 당원의 위상은 또 올라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12월 온라인 당원 가입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정치권에선 이때 입당했던 이들이 현재 친문 성향 당원의 주축을 이룬다고 본다. 이는 당시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을 탈당했지만, 문재인 대표 체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뒷받침한 것은 물론, 대통령에까지 당선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문제는 일부가 온라인상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확산, 한쪽으로 기우는 여론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최근 이들은 4·7재·보궐 선거 패인으로 '조국 사태'를 꼽은 민주당 20·30 초선 의원들에게 '문자 폭탄'을 쏟아냈고, 당내 소장파 박용진·이상민·조응천 의원 등이 문재인 정부에 쓴소리하면 전화나 문자, 댓글로 항의했다.

민주당 한 초선 A 의원은 <더팩트>에 "(이들은) 인터넷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을 도와주자고 시작했다. 문 대통령을 당대표 후보로, 대통령 후보로, 대통령으로 만들어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와 다르게 지켜주자면서 (집단행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거대한 집단화가 된 건데 그중 일부가 집단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 관계자 B 씨는 강성 당원 논란에 대해 "통제가 안 되고 소수도 아니다. 2000명인지 3000명인지도 모른다"며 "의원들은 이들이 SNS 활동이 활발하거나 선거에 반대하는 식으로 본인한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무서워하는 것이다)"이라며 "공포"라고 표현했다.

민주당 권리당원은 당 지도부 선출 과정에 40%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기념촬영하는 송영길 대표, 윤호중 비대위원장, 전혜숙 최고위원. /남윤호 기자
민주당 권리당원은 당 지도부 선출 과정에 40%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기념촬영하는 송영길 대표, 윤호중 비대위원장, 전혜숙 최고위원. /남윤호 기자

◆지도부에 권한 집중...'과대 대표성' 문제

정당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각 정당 당헌·당규에서도 당원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당원은 당 대표와 최고위원 등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외에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당 조직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당 처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 △선출직 당직자 소환 권리 등이 있다.

다만 당비를 꾸준히 납부하는 진성당원에게만 투표권한이 주어지는데, 아쉽게도 우리나라 정당에서 진성당원 비율은 높지 않다. 선관위의 '2019년 정당의 활동개황 및 회계보고'에 따르면 당비 납부 당원은 민주당이 25.3%, 자유한국당이 10.7%, 바른미래당이 8.7%이다. 정의당만 71.9%으로 과반 이상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서 권리당원은 당 지도부 선출 과정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친다. 민주당의 경우 당 대표와 최고위원 등 지도부 선출 시 40% 권리,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및 지방자치단체장 국민참여경선 시에는 50% 권한을 행사한다. 지난해 8월 최고위원 경선에서 대의원 득표율 1위를 기록했던 이원욱 의원이 권리당원 득표에서 7위를 하면서 최종 탈락하고, 반면 대의원 득표에서 4위였던 '친문' 성향의 김종민 의원이 권리당원 득표에서 압도적 1위로 수석최고위원 자리에 오른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일단 선출된 당 지도부는 막강한 권한으로 당의 주요 정책 결정을 좌우할 수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국가주요정책이나 입법안 등 당론을 의원총회 의결로 결정하지만, 의원총회 위임이나 긴급한 사유가 있을 경우 최고위원회의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사무총장, 전략기획부총장, 조직부총장, 홍보본부장, 대변인 등도 최고위와 당대표가 임명한다. 당내 각종 위원회 위원장도 최고위원회의의 의결이나 협의를 거쳐 당대표가 임명하는 방식이다.

그렇다 보니 당 지도부 선출에 성공한 '집단 행동파' 진성당원의 영향력은 강해지고, 당 지도부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당 주요 정책을 반영하는 악순환이 지속될 가능성이 커진다.

민주당은 온라인 플랫폼을 정당 사상 최초로 도입했다. 2019년 6월 28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특별당규제정 권리당원전원투표를 독려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는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국회사진취재단
민주당은 '온라인 플랫폼'을 정당 사상 최초로 도입했다. 2019년 6월 28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특별당규제정 권리당원전원투표를 독려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는 이해찬 대표, 이인영 원내대표. /국회사진취재단

◆당원 의견 수렴 절차는? 민주당 "신속성" 정의당 "당원 참여도 높아"

당 지도부에 권한이 집중된 정당 구조에서 당내민주주의 확대를 위해 당원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고 반영하는 절차는 필수적이다.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 체제 때인 2019년 6월 정당 최초로 60만 명 권리당원 대상 온라인 플랫폼을 가동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총선 공천룰 확정과 비례위성정당 참여 여부, 4·7재·보궐 선거 당헌 개정 여부 등을 투표에 부쳐 권리당원의 의견을 모았다. 이에 대해 민주당 관계자 B 씨는 "온라인 당원 중심으로 돼 있어서 뚝딱하면 투표 결과가 바로 나온다. 전 당원의 의사를 빨리 수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당 지도부가 전당원 투표를 책임 전가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예로 민주당은 전당원 투표를 실시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공천 방침을 확정했다. 투표율이 26.4%에 그쳤고, 당헌·당규의 유효투표 기준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밀어붙였고 선거에서 패했다.

국민의힘은 후보 선출 과정에서 일반 국민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4·7재·보궐 선거도 당내 예비경선 과정에서도 100% 일반시민 여론조사를 적용했고, 본 경선은 여론조사 80%, 당원 투표 20% 방침을 정해 승리를 이끌었다. 국민의힘 측은 당원 구성의 지역 편중이 심해 당 외부 인사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본다. 당직자 근무경력이 있는 국민의힘 권리당원 C 씨는 "우리 당 자체가 영남당으로서의 구실이 너무 깊다. 아무래도 당원들이 영남권에서 80~90%로 편차가 심하다. 전당대회를 통해 당원들이 (지도부를) 뽑는데 누가 될지 짐작이 가는 지경"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원 의견 수렴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C 씨는 "우리 당이 집권을 오래해 무사안일주의가 있다. 열심히 하려는 마음만 있을 뿐 표출을 안 한다. 과거에 너무 빠져 있다. 초선들이 의견을 모아도 공천 시스템 때문에 다선 의원 눈치를 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의당은 거대 양당과 달리 당직과 공직 선출을 당원이 직접 선출한다. 당비도 1만 원으로 상대적으로 비싸다. 지난해 4월 심상정 대표와 정의당 총선 후보자들 및 당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음란물 유포 사건(n번방) 방지 관련 조치를 촉구하는 모습. /뉴시스
정의당은 거대 양당과 달리 당직과 공직 선출을 당원이 직접 선출한다. 당비도 1만 원으로 상대적으로 비싸다. 지난해 4월 심상정 대표와 정의당 총선 후보자들 및 당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음란물 유포 사건(n번방) 방지 관련 조치를 촉구하는 모습. /뉴시스

정의당은 거대 양당과 달리 공직과 당직 선출을 모두 당원이 직접 선출하며 대표 중심체제다. 사무총장과 정책위의장 교육연수원장, 각 위원회 위원장을 모두 당대표가 전국위원회 인준을 거쳐야 임명할 수 있다. 또, 최고위원회의가 아닌 당대회가 최고의결기관이며, 당원 총투표로 확정된 사안은 당대회 의결보다 우선시 하기에 당원의 권한과 책임이 강하다.

박원석 정의당 사무총장은 "최고위원제에 비해선 대표에 힘이 쏠리지만, 당내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모든 의사결정을 전국위에서 하고 있다. 당무를 집행하고 전국위에 안건을 제출하는 게 대표단 권한이지 대표가 마음대로 하는 할 수 있는 체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정의당은 진성당원제로 운영된다. 월 당비도 거대 양당(1000원)보다 열 배 비싼 1만 원이다. 박 사무총장은 "당 재정이 어려운 면도 있고 당원도 권리를 행사하는 것만큼 의무와 책임도 다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만큼 정의당 당원들은 책임성이 높고 당 의사결정에 참여가 높다. 지역위 활동당원 비중도 전체 당원에 비했을 때 다른 당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당원 중심'을 표방하는 정의당도 2019년 조국 사태 때 당심에 어긋난 결정을 내려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에 대해 박 사무총장은 "대표 책임하에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판단이 잘못됐고 지탄을 받았다고 당대표가 사과도 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지도부가 곤란해지면 당원을 소환해 기존 입장을 번복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무조건 당원을 소환한다고 그게 민주주의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권 세력이 되기 위해 민심과 당심을 좁히는 문제는 정의당이 풀어야 할 과제다. 그는 이에 수긍하면서도 "정당이기 때문에 민심에 따라서만 결정할 수 없는 게 있다. 무조건 여론만 추종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원칙과 관점과 대안을 가지고 입장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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