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년 전 대리인을 통해 '모욕죄'로 고소한 30대 남성이 오랜 경찰 수사 끝에 최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것을 두고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처벌의사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제공 |
미리 밝혀둡니다. 이 글은 낙서 내지 끄적임에 가깝습니다. '일기는 집에 가서 쓰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쓰냐고요? '청.와.대(靑瓦臺)'. 세 글자에 답이 있습니다. '대통령이 생활하는 저곳, 어떤 곳일까'란 단순한 궁금증에서 출발합니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靑.春일기'는 청와대와 '가깝고도 먼' 춘추관에서(春秋館)에서 바라본 청춘기자의 '평범한 시선'입니다. <편집자 주>
사상 초유의 대통령 '국민 고소' 사태 일단락의 이면
[더팩트ㅣ청와대=허주열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4일 '모욕죄'로 고소했던 국민에 대한 처벌의사를 철회했습니다. 2019년 7월 30대 남성 김모 씨가 문 대통령을 비판, 조롱하는 전단을 뿌린 것을 두고 대리인을 통해 고소를 진행한 사건을 경찰이 2년가량의 수사 끝에 모욕죄 혐의로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지 6일 만입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이 2019년 전단 배포 모욕죄와 관련해 처벌의사를 철회하도록 지시했다"를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모욕죄로 고소하는 초유의 사건은 실제 처벌까지 이어지지 않고 일단락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번 사건에 대한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처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습니다.
문 대통령에게 고소를 당한 김 씨는 지난해 6월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이 정말 모욕적이라고 느꼈다면 공개적으로 사과하겠다"라며 "정작 본인은 구중궁궐에 숨어 있고 경찰이 하명 수사를 하듯 국민을 괴롭히고 있다. 당신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반대한 군사정부와 뭐가 다른가"라고 반문했습니다.
또한 "첫 조사를 받을 때 경찰이 '해당 사안이 VIP(대통령)에게 보고됐다. '북조선의 개'라는 표현이 심각하다. 이건 꼭 처벌을 원한다'는 취지로 말했다"라며 "북한에서 문 대통령에게 '삶은 소대가리'라고 말해도 가만히 있으면서 왜 국민에게만 이러냐고 말했다. '북조선의 개'는 내가 만든 표현이 아니라 일본 잡지사에서 사용한 표현을 번역한 것"이라고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문 대통령을 향해 "미국산 앵무새", "철면피", "정신이 잘못된 것 아닌가" 등의 모욕적인 발언을 수차례 했습니다. 다른 북한 고위 인사도 문 대통령을 겨냥해 "보기 드물게 뻔뻔한 사람",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 등의 조롱 섞인 발언을 했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대응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이번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휴대 전화를 포렌식한다는 명목으로 석달간 압수당했고, 경찰에 10여 차례 출석해 추궁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을 비판하는 국민과 북한에 대한 대처가 달랐던 이 사건은 잊히는 듯했지만, 지난달 28일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긴 게 보도되면서 다시 논란이 됐습니다. 하지만 전날(3일)까지만 해도 청와대에선 "2년 전부터 수사가 진행된 사건으로 (검찰로) 송치된 일 외에 변화는 없다"라며 고소 취하나 처벌의사 철회 등을 요청할 계획은 없다는 기류였습니다.
심지어 청와대는 당초 모욕죄 고소 상황과 관련해 문 대통령이 직접 개인 변호사를 고용해 고소를 지시했는지, 민정수석실 산하 법무비서관을 통해서 진행한 것인지도 명확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처벌의사 철회 지시가 나온 이후에도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지금 처벌 의사 철회를 하는 마당에 그걸 어디에서 언제 검토했는지 묻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취하의 뜻에 주목해 달라"고만 했습니다.
하루 사이에 달라진 것은 문 대통령의 '대통령 모욕'에 대한 관대했던 과거 발언과 문재인 정권 핵심 인사들의 과거 '모욕죄 폐지 법안' 발의 등을 근거로 한 언행 불일치, 앞과 뒤가 다른 모습을 비판하는 기사들이 쏟아진 것뿐입니다.
실제 문 대통령은 2017년 2월 대선후보 시절 JTBC '썰전'에 출연해 진행자의 "대통령이 되었을 때 승복할 수 없는 비판, 비난에도 참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참아야죠,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죠. 그래서 국민이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닌가요"라고 답했습니다. 또 지난해 8월 한 한국 교회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간담회에선 "정부를 비난하거나 대통령을 모욕하는 정도는 표현의 범주로 허용해도 된다"라며 "대통령을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은 2013년 '모욕죄 폐지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고, 문 대통령의 아픈 손가락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같은 해 논문에서 "대통령에 대한 모욕은 사회상규성이 인정된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모욕죄 고소는 애초부터 유례가 없는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쏟아진 비판이나 풍자에 대해 고소를 취했던 적이 없으며, 현 정권이 '적폐'라고 규정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쥐', '닭', '누드화' 등 수많은 풍자에도 국민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의 사례, 문 대통령과 정권 핵심 인사의 과거 발언만 봐도 2년 전 고소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아무런 문제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가, 막상 대통령이 고소한 국민이 처벌받을 시기가 다가오면서 이를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자 뒤늦게 철회를 결정한 배경에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은 국민으로 보지도 않는다는 인식이 깔린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나아가 청와대가 추가 국민 고소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도 아쉽습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앞으로 명백한 허위사실을 유포해 신뢰를 훼손할 경우 다시 (국민을) 고소할 수도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유사한 사안에 대해서 신중하게 판단해서 결정할 것"이라면서도 "결론적으로 단정적으로 말하기를 어렵지만, 앞으로 그 사안의 경중이나 정도에 따라서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최근 청와대로 출퇴근하는 길에 자신의 차량에 문 대통령을 비판·조롱하고, 이승만·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을 추켜세우는 포스터를 붙이고, 확성기로 문 대통령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면서 광화문 대로를 계속 달리는 한 남성을 본 적이 있습니다. 청와대의 태도를 보면 이 국민도 대통령으로부터 모욕죄와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를 당할 가능성이 있는 셈입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문 대통령의 취임 초 약속이 국민을 고소하는 형태로도 지켜질 것이라고 예상한 국민이 얼마나 될까요. 이런 것까지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는 국민이 있다는 것은 이번 일로 충분히 알게 됐을 것입니다. 불편하겠지만, 그 목소리도 존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