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박형준 승리, MB계 '중도·개혁보수' 재조명 [TF초점]
입력: 2021.04.12 00:00 / 수정: 2021.04.12 00:45
국민의힘 오세훈·박형준 후보가 서울·부산시장에 당선됨으로써 MB계의 중도·개혁보수가 재평가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의 당선은 국민의힘 차기 지도부 역시 강성 보수가 아닌 중도·개혁보수 성향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8일 국민의힘 시-도당위원장 회의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과 박형준 부산시장. /남윤호 기자
국민의힘 오세훈·박형준 후보가 서울·부산시장에 당선됨으로써 MB계의 중도·개혁보수가 재평가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의 당선은 국민의힘 차기 지도부 역시 강성 보수가 아닌 중도·개혁보수 성향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8일 국민의힘 시-도당위원장 회의에 참석한 오세훈 서울시장(오른쪽)과 박형준 부산시장. /남윤호 기자

'MB'와 선 그은 안철수, 오히려 보수층 입지 좁아져

[더팩트ㅣ이철영 기자] 'MB 아바타'로 공격을 받던 오세훈·박형준 국민의힘 후보가 4·7 재·보궐선거에서 서울과 부산시장에 당선됨으로써 오히려 이명박 정권 시절 중도·개혁 보수 성향 인사들이 입지를 넓히며 재조명을 받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과 함께 중도 보수, 개혁 보수를 지향하며 박근혜 대표의 친박 여당과 대척점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고도 친이계라는 그늘에 가려있었으나 이번 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는 평가다.

11일 야권의 한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오세훈 박형준이 승리를 함으로써 여러 가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보수라는 이름으로 통째로 묶여 평가절하됐던 중도, 개혁 보수가 비로소 재평가를 받은 점은 높이 살 만하다"면서 "오세훈 박형준 시장은 MB정부 시절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등과 함께 중도적 정책노선을 내세워 내부 노선 투쟁을 벌였다. 민주당의 'MB아바타' 'MB 시즌2'라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승리한 것은 결국 시민들이 본질을 꿰뚫어 본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오세훈 박형준 시장은 당시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와 함께 정책 노선을 함께하며 약자 보호를 위한 휴먼 뉴딜, 사교육과의 전쟁, 따뜻한시장경제,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등 중도 실용 정책으로 당시 친박 여당과 대척점을 이뤘다. 오히려 야당에서 이들의 정책을 지지했을 정도였다.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은 MB정부 시절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 등과 함께 중도 개혁 보수 노선으로 친박 여당과 대척점을 이루며 실용주의를 표방했다./더팩트DB
곽승준 전 미래기획위원장은 MB정부 시절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 등과 함께 중도 개혁 보수 노선으로 친박 여당과 대척점을 이루며 실용주의를 표방했다./더팩트DB

하지만 오세훈·박형준 서울·부산시장은 선거 내내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MB아바타' 'MB 시즌2'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보궐선거 내내 김태년 당시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오 시장과 박 시장을 향해 "교묘한 사익추구와 거짓말로 국민을 우롱한다는 점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오세훈 후보의 내곡동, 박형준 후보의 엘시티는 똑 닮았다"고 MB 프레임을 씌워 공격했다.

결과는 오세훈·박형준 후보의 압승이었다. 오세훈 박형준 후보는 박영선·김영춘 후보를 각각 18.32%포인트, 28.25%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20대 여성과 40대 남성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가 국민의힘을 선택했다. 중도, 개혁보수를 극우보수로 묶은 공격이 오히려 유권자들에게는 고리타분한 정쟁, 네편 내편을 가리는 '프레임 정쟁'으로 비쳤다는 분석이다.

유권자들은 '말보다 행동', '진영 논리보다 실리'를 더 우선적으로 평가하며 중도, 개혁 보수 진영에 다시 설 자리를 마련해준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당장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선출할 예정인 가운데 현재 거론되는 인물 면면을 보면 MB계라 할 수 있는 후보군이 상당하다. 주호영(5선)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정진석(5선) 의원 등은 각각 이명박 정부에서 각각 특임장관과 청와대 정무수석(차관급)을 역임했다. 원내대표 후보군인 권성동(4선)·김기현(4선) 의원도 과거 친이계로 분류된 인사들이다.

여기에 당권주자 5선 조경태·서병수 의원, 4선의 권영세 의원, 3선의 윤영석 의원의 이름이 거론된다. 또, 원내대표에는 장제원·유의동·김도읍 의원 등이 거론되는 데 이들 중 일부는 친이명박계로 분류된다.

반대로 'MB아바타'를 노골적으로 거부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친이계의 승리와 함께 은근한 대권 의지 표명으로 오히려 설 자리가 더 좁아졌다는 평가다. 안 대표는 지난 8일 오 당선인을 축하하며 "야권의 승리"라고 했다. 향후 국민의힘과의 합당, 그리고 내년 대선을 고려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당선이 확실해 진 후 발언을 하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남윤호 기자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당선이 확실해 진 후 발언을 하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남윤호 기자

당장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1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해 "그 정도 수준 정치인밖에 안 된다고 확신했다"고 혹평했다. 김 위원장은 "어떻게 건방지게 그런 말을 하나. 자기가 이번 승리를 가져왔다는 건가. 유권자들은 ‘국민의힘 오세훈’을 찍었다. 안철수는 ‘국민의힘 승리’를 축하해야 했다"고 말했다.

김 전 위원장은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역시 사람을 잘 알아봤다’ 했다. 그 정도 수준의 정치인밖에 안 된다고 확신했다. 안철수는 지금 국민의힘과 합당해서 대선 후보가 되겠다는 욕심이 딱 보인다. 서울시장에 출마하면서 대선은 포기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사람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또 엉망이 된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대표의 오락가락 행보를 김 전 위원장이 냉정하게 짚은 것이다. 안 대표는 MB정부 시절 미래기획위원회 비상임 민간위원을 맡아 활동했으나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자기 정치를 위해 "내가 MB 아바타입니까?"라며 MB와 선을 긋는 등 유불리에 따라 행동을 달리 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장관급인 미래기획위원장 아래 민간 위원들은 대통령에게 직접 임명장을 수여 받는 중요 비상임 정무직임에도 불구하고 안 대표는 MB와 별다른 관계가 없는 것처럼 선을 그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안철수 대표는 적극적으로 오세훈 후보를 도우며 이미지 개선에 상당 부분 도움을 받았으나 중도, 개혁 보수성향의 인사들에게는 설 땅을 잃었다. 'MB아바타' 공격을 정면으로 돌파한 오세훈 박형준 시장과 달리 MB와 인연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향후 정치 여정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편,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번 선거 분석을 놓고 MB계의 부활이 아닌 오세훈·박형준 시장과 곽승준 전 위원장이 지향한 중도·개혁보수의 가치를 제고하는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국민의힘 내 초선 의원들이 이번 선거 결과와 함께 "특정 지역 정당이라는 지적과 한계를 극복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cuba20@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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