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과열된 선거판, '생태탕'이 무슨 죄
입력: 2021.04.06 00:00 / 수정: 2021.04.06 00:00
박영선(왼쪽)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양천구 예총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토론회 시작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박영선(왼쪽)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5일 오후 서울 양천구 예총회관에서 열린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토론회 시작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정책 대결 실종…상호 비방 난무하는 4·7 재보궐 선거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과열 양상을 보이는 4·7 재보궐 선거를 지켜보면서 자꾸 한 영화가 떠오른다. 2010년 개봉했던 영화 '부당거래'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대국민 범인 조작 이벤트'라고 할 수 있다. 극 중 경찰은 연쇄살인 사건의 '가짜 범인'을 만들어 수사 종결을 시도한다. 대통령까지 나선 대형사건 수사에 진척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인상 깊은 대사가 나온다. 강 국장(천호진 분)이 최철기(황정민 분)에게 이렇게 말한다.

"무조건 범인이 있어야 해. 살아 팔딱거리는 놈이 우리 손에 탁 잡혀서 언론에 대문짝만 하게 실려야 된다고. 과정은 필요 없고, 결과! 잡고, 걸고, 재판 때리고, 집어넣고…."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이틀 앞둔 5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는 마지막 TV토론회에서 말 그대로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전형적인 무질서의 모습을 보였다. 토론 초반 서로 자기주장을 하느라 바빴다. 존중과 품격도 실종됐다. 상대 후보의 말을 자르는 일은 예사였다. 시종일관 말싸움과 상호 비방이 이어졌다. 결국 객관적인 정책 검증 등은 뒷전으로 밀렸다.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박 후보는 오 후보의 내곡동 땅 투기 의혹과 관련해 "거짓말 하는 후보가 시장이 되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발끈한 오 후보는 "박 후보의 존재 자체가 거짓말"이라며 되받아쳤다. 박 후보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며 얼굴을 붉혔다.

어디 후보들뿐일까. 이들을 돕는 동료 의원들도 가세해 소모적인 언쟁을 벌이고 있다. 선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태탕'이 주제다. 지난 2일 오 후보가 2005년 당시 내곡동 처가 땅 측량에 왔고, 이후 식사를 했다는 '생태탕 가게 주인'의 증언이 나오면서다. 하지만 식당 주인의 증언 번복 사실이 알려지자 '생태탕'과 관련한 유치한 말장난이 나왔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의 무차별적인 네거티브 공방으로 정책 대결이 실종됐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선관위 관계자들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선거공보물을 분류하는 모습. /임영무 기자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의 무차별적인 네거티브 공방으로 정책 대결이 실종됐다. 사진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선관위 관계자들이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선거공보물을 분류하는 모습. /임영무 기자

선거 막판, '생태탕'에 매몰된 느낌이 강하다. 생태탕집 주인 아들 A 씨는 5일 예정한 기자회견을 돌연 취소했다. 신변 안전에 위협을 느낀다며 기자회견을 보류한 것이다. 박 후보 캠프에서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진성준 의원은 경찰에 경호 대책을 강구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여야의 다툼에 '생태탕 식당'이 왠지 희생양처럼 느껴진다. 언론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기도 하지 않나.

여기에 도를 넘는 네거티브도 난무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4일 오 후보를 두고 "본인의 거짓말을 덮기 위해 서울의 미래를 도둑질할 후보"라고 했다. 과연 상대 후보를 '예비 도둑놈'으로 몰아가는 것은 적절한 것일까. 김영춘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를 향해 '성폭력 후계자'로 지칭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발언도 위험 수위를 넘은 듯하다. 전임 시장의 성폭력 사건으로 선거가 치러진다고는 하나, 지나친 인신공격이다. 꺾어야 할 상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지닌 존엄이 무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 특성상 진영 간 다툼은 불가피하다. 더구나 보궐선거가 끝난 이후 대선 정국이라는 점에서 여야는 '유효타'를 때리기 위해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일까. 편 가르기와 흑색선전, 현실성이 떨어지는 선심성 공약과 포퓰리즘, 막말과 인신공격의 정도가 매우 심하다. 정치권이 구태 정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선거도 과거처럼 오로지 결과만 좇는 모습이다. 물론 선거는 승자와 패자로 갈리기에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후보와 정당은 유불리 셈법에 따라 '그들만의 선거'에 몰두하고 있다. 미래 비전과 정책 대결은 실종됐다. 유권자로서는 후보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부실하다. 이는 정치와 투표를 외면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왜 정치권은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일까. 여과되지 않은 감정 표출과 비방으로 얼룩진 선거 과정이 씁쓸하고 안타깝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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