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3건의 차관, 수석 이상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는 신현수 전 민정수석, 김상조 전 정책실장 등 핵심 인사의 예상치 못한 사퇴, 행시 출신 관료의 부상, 청와대·기재부 자리 바꾸기 등이 주요 특징으로 꼽힌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청와대에서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
요직 장악한 '행시' 출신 관료들…청와대·기재부 돌려막기
[더팩트ㅣ청와대=허주열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차기 대선을 1년 앞둔 시점인 지난 3월 13건의 차관, 수석 이상급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달 인사는 지난 4년간 인사와 여러 면에서 차이점이 있다. 우선 예상치 못한 일로 갑자기 핵심 인사가 청와대를 나가게 되면서 연쇄 인사이동이 이뤄졌다.
신현수 전 민정수석과 김상조 전 정책실장이 대표적 사례다. 빈자리를 채우고, 그에 따라 생긴 새로운 빈자리를 채우는 과정에선 행시로 공직에 입문한 기획재정부 출신 관료의 부각이 두드러졌다. 또한 기재부와 청와대 간 자리 바꾸기, 내부 승진도 주요 특징이다.
문 대통령의 3월 인사는 신 전 수석 교체가 시작이었다. 지난 4일 문 대통령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검찰 인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빚으면서 사퇴 의사를 밝힌 신 전 수석의 사표를 수리하고, 신임 민정수석에 김진국 감사위원을 임명했다.
사법시험 29회 출신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던 김 신임 민정수석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당시 문 대통령이 민정수석·비서실장으로 있을 때 민정수석실 법무비서관으로 재직한 바 있다. 청와대를 나온 뒤에는 다시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문재인 대선 캠프에도 참여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부터 감사원 감사위원을 역임했다.
이로써 문 대통령의 집권 후 첫 검찰 출신 민정수석(신현수) 임명은 63일 만에 실패로 끝났고, 다시 비검찰 출신에 과거 인연이 있는 측근이 민정수석을 맡게 됐다.
지난달 4일 임명된 김진국 신임 청와대 민정수석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신현수 전 민정수석. /뉴시스 |
지난달 26일 문 대통령은 차관급 인사 8명에 대한 인사도 단행했다. △인사혁신처장에 김우호 인사혁신처 차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에 용홍택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 △과기정통부 제2차관에 조경식 대통령비서실 디지털혁신비서관 △통일부 차관에 최영준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국토교통부 제2차관에 황성규 국토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상임위원 △관세청장에 임재현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병무청장에 정석환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 △산림청장에 최병암 산림청 차장을 임명했다.
이들 중 김우호 인사혁신처장(행시 37회), 조경식 과기정통부 제2차관(행시 34회), 최영준 통일부 차관(행시 35회), 황성규 국토부 제2차관(행시 36회), 최병암 산림청장(행시 36회) 내부 승진, 용홍택 과기정통부 제1차관(기시 26회) 6명은 행시나 기시 출신에 내부 승진인사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김우호 인사혁신처장과 조경식 과기정통부 제2차관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근무 경험도 있다.
임재현 관세청장(행시 34회)은 내부 승진은 아니지만 행시, 기재부 출신이다. 정석환 병무청장은 공사 31기 출신으로 군에서 소장까지 역임한 군 전문가다. 해당 인사와 관련해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업무 전문성과 도덕성 등을 기준으로 해 고위공직자로 가장 적합한 인재를 선임했다"라며 "공직사회 내부 승진을 통해 조직을 안정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활력으로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성과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9일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사실상 경질되고 이호승 경제수석이 정책실장으로 영전했다. 김 전 실장은 문재인 정권에서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에 이어 정책실장까지 맡으면서 승승장구했으나, 지난해 7월 전월세상한제 도입 직전 자신이 보유한 강남 아파트 전세보증금을 대폭 인상(14.1%)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자 하루 만에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이에 문 대통령은 정권의 정책을 총괄하는 정책실장에 이 경제수석을 임명했다. 이 신임 정책실장은 행시 32회 출신으로 공직에 입문해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종합정책과장·기재부 제1차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실 행정관, 일자리기획비서관, 경제수석 등을 역임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와 기재부를 오가면서 요직을 맡아왔다.
이호승(오른쪽)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달 29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부동산 논란으로 청와대를 떠나게 된 김상조 전 정책실장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 /뉴시스 |
이 정책실장의 영전으로 공석이 된 경제수석에는 30일 안일환 기재부 제2차관이 임명됐다. 이 신임 경제수석은 행시 32회로 공직에 입문해 기재부에서 대변인·예산총괄심의관·사회예산심의관·예산실장·제2차관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이날 안 신임 경제수석 임명으로 공석이 된 기재부 제2차관에는 안도걸 기재부 예산실장이 임명됐다. 안 제2차관은 행시 33회 출신으로 보건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 기재부 경제예산심의관·예산총괄심의관·예산실장 등을 역임했다.
같은 날 기재부 제1차관에는 이억원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이 임명됐다. 이 제1차관은 행시 35회 출신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국내규제작업반 의장, 기재부 경제구조개혁국장, 경제정책국장 등을 역임했다. 이 제1차관이 맡았던 경제정책비서관에는 이형일 기재부 차관보(행시 36회)가 임명됐다.
갑작스러운 김 전 정책실장 경질로 정권 경제라인 고위직 인사가 연쇄적으로 단행된 것이다. 이로써 기재부 출신 관료들이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 경제 정책을 이끌게 됐다. 정책실장, 경제수석, 경제정책비서관 등이 모두 기재부 출신 관료들로 채워진 것은 이례적이다.
행시 출신 관료의 약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권 안팎에선 4·7 재·보궐선거 직후 차기 대선 출마를 저울질 중인 정세균 국무총리, 자의 반 타의 반 역대 최장수 부총리로 재직 중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로 사퇴가 예정된 변창흠 국토부 장관 등에 대한 인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의 빈자리도 관료들이 채울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지금부터 임명되는 사람은 순장조인데, 최근 인사는 순장조로 마땅한 사람을 고르는 게 힘들었거나,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또 (인사나 정책을) 밀어붙이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제는 관료와 같은 전문가를 중용해야 겠다고 방향을 틀었다고 볼 수도 있다"라며 "관료들의 경우엔 안정성이 있고, 예측이 가능하다. 예측이 가능하지 않은 게 이 정권의 문제였는데 안정감을 주기 위한 인사로 본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향후 진행될 인사와 관련해선 "장관들의 경우 의원 출신들을 선호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의원들의 경우엔 문 대통령 임기 이후 선거를 또 해야 하는데,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질수록 이미지가 겹치면 손해라는 생각을 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과 함께하려 했던 이들 중 등을 돌리는 인사들이 나오면서 순장조로 들어갈 인사가 적어진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앞으로 관료들이 더 부각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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