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오전 전월세상한제 도입 직전 전셋값을 대폭 인상해 논란이 제기된 김상조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의 사표를 수리한 뒤 이날 오후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른바 '부동산 반성문'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
野 "김상조 논란 반성 없는 '부패척결', 힘이 실릴 리가 없다"
[더팩트ㅣ청와대=허주열 기자] "우리는 국민들의 분노와 질책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공직자와 공공기관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는 국민들의 내 집 마련의 소박한 꿈과 공평한 기회라는 기본적인 요구를 짓밟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더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국민의 기대도 무너뜨렸습니다…(중략). 국민들의 분노는 드러난 공직자들의 투기행위를 넘어 더 근본적인 문제까지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막대한 부동산 불로소득, 갈수록 커지는 자산 격차, 멀어지는 내 집 마련의 꿈, 부동산으로 나뉘는 인생과 새로운 신분 사회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손대지 못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주재한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 모두 발언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공직자·공공기관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태로 민심이 악화되자, 사실상의 '부동산 반성문'을 국민께 고한 것이다. 임기말 중요한 선거(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최대 국정 이슈로 떠오른 LH 사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승부수로 풀이된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 근절 및 재발방지 대책', '이해충돌방지 등 반부패·공정성 강화 대책', '부동산 투기 발본색원을 위한 범정부 총력 대응체제 가동' 등을 논의하기 위해 문 대통령이 직접 소집한 반부패정책협의회를 하루 앞둔 지난 28일 김상조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의 수상한 전셋값 대폭 상승 계약 소식이 전해지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전자관보에 따르면 김 실장은 전월세상한제가 시행되기 이틀 전인 지난해 7월 29일 자신이 보유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신오페라하우스 2차 아파트의 전세금을 기존 8억5000만 원에서 9억7000만 원으로 14.1% 올렸다. 이를 두고 부동산 정책을 총괄한 정책실장은 전셋값을 대폭 올리면서 남들은 5% 이상 못 올리게 했다는 '내로남불' 비판이 나왔다.
김상조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은 29일 오전 이임사에서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이 엄중한 시점에 국민들께 크나큰 실망을 드리게 된 점 죄송하기 그지없다"고 사과했다. /뉴시스 |
청와대에 따르면 해당 보도가 나온 날 밤 김 실장은 유영민 비서실장에게 사임의 뜻을 전했고, 29일 아침 문 대통령에게 직접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를 문 대통령이 곧바로 수용하면서, 김 실장은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후임으로 이호승 경제수석이 임명됐는데, 이 수석의 기존 자리는 후임자도 찾지 못한 채 급박하게 이뤄진 인사였다.
이와 관련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부동산과 관련된 상황이 굉장히 엄중한 그런 상황을 감안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라며 "본인이 이런 (전월세상한제 도입 전 전셋값 대폭 인상) 지적을 받는 상태에서 오늘 (반부패정책) 협의를 시작해서 이 일을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는 강력한 사임 의사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그간 LH 사태와 관련한 여러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이번 사태가 현 정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예전부터 이어져 온 '적폐'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이날 반부패정책협의회는 그간의 메시지를 종합한 결과물로 국면 전환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었지만, 김 전 실장 논란으로 빛이 바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반부패정책협의회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뼈를 깎는 반성을 통해 부동산 부패를 완전히 뿌리 뽑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깨끗한 공직사회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이를 위해 오늘 대통령 주재 반부패정책협의회를 개최해 '예방-적발-처벌-환수' 전 단계에 걸친 강력한 불법투기 근절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수사 인력을 2000명 이상으로 대폭 확대해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 사범 철저한 색출 △검·경 간 긴밀한 협조하에 부동산 투기 사범 법정 최고형 구형 및 범죄수익 전액 환수 △검찰 직접 수사 및 기존 부동산 부패 사건 재검토 △모든 공직자 대상 재산등록을 의무화 및 부동산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공직자 직무 관련 지역의 신규 부동산 취득 제한 △이해충돌 방지제도 대폭 강화 등이 포함됐다.
정세균 국무총리(왼쪽)는 29일 오후 반부패정책협의회 직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부는 뼈를 깎는 반성을 통해 부동산 부패를 완전히 뿌리 뽑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깨끗한 공직사회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정 총리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 참석을 위해 입장하는 모습. /청와대 제공 |
반부패정책협의회를 거쳐 LH발 부동산 투기 사태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대처가 발표됐지만, 야권은 김 전 실장 전셋값 대폭 상승에 주목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선거를 9일 앞두고 문재인 정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제 와 검찰 동원령을 내리고, '아픈 매'라며 엎드린다"라며 "박영선 후보가 검찰 탓을 하며 특검만 고집한 게 불과 보름 전이다. 수사를 시키고 싶어도, 수사권 조정 때문에 직접수사를 못한다는 레퍼토리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검찰 해체에 골몰했던 정권인데, 선거가 불리해질 듯하니, 갑자기 수백 명의 검사를 투입한다고 한다"고 꼬집었다.
김 대변인은 이어 "버티고 버티다가 증거인멸 시간만 벌어준 문재인 정권은 투기 공범이나 다름없다"라며 "법치가 사라진 윗물은 맑지 않다. 흐린 윗물에 대통령도 말이 없다. '야단맞을 것은 맞겠다'면서도 김 실장에 대해선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대변인은 "국민에겐 전·월세 올리지 말라면서 청와대 실세는 기막힌 타이밍으로 전셋값 올리는 '치고 빠지기'를 했다"며 "서민들을 임대차 3법(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계약갱신청구권제)으로 막다른 길에 내몰고, 본인은 뒤로 잇속을 챙겼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장문의 모두 발언을 통해 '오랜 적폐' 탓, '공무원' 탓만 한다. 반성 없는 '부패척결', 힘이 실릴 리가 없다. 문 대통령이 밝힌 부동산 부패의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문재인 정권'"이라고 강조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소위 부동산 임대차 3법 문제점들을 우리가 그렇게 지적할 때 외면하고 (당·정·청이) 밀어붙였는데, 그 책임자가 김상조였다"라며 "그 법이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고 잘못된 법인지 여실히 증명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가운데 문 대통령은 일단 반부패정책협의회 결과물로 LH 사태 정면돌파를 계속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협의회 마무리 발언에서 "부동산 투기는 결국은 들키지 않는다는 믿음, 만에 하나 들켜도 불이익보다 투기로 얻는 이익이 더 클 것이라는 기대, 이로 인해 생긴 부동산 불패 신화를 무너뜨리는 것이 부동산 대책의 출발"이라며 "정부 대책은 반드시 실행되고, 결국에는 부동산 투기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부동산 부패를 척결하는 가장 빠른 길이자 전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의지가 지속될 것이란 믿음을 드려야, 국민의 분노에 응답하면서, 분노를 기대로 바꿔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오늘 중요하고 좋은 대책 감사드린다. 실천만 된다면 부동산 부패를 척결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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